아동학대 대응체계 개편과 과제
2020년 11월 02일(월) 06:00

최 은 혜 전남중부권 아동보호전문기관 아동학대조사팀장

지난 9월에 발생했던 ‘인천 라면 화재’ 사건의 초등학생 형제 중 동생이 결국 사망했다는 기사를 접하였다. 아동보호 전문기관에 종사하는 필자는 보호자의 방임으로 고통 받은 형제에 대해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아동학대 현장조사를 통해 판단한 초기 보호 조치는 아동의 생존과 직결되는 매우 중요한 과업이다. 이토록 막중한 임무를 불과 얼마 전까지 민간 영역인 아동보호 전문기관에서 감당해 왔으나, 지난 5월 정부가 ‘포용국가 아동정책’을 통해 아동학대 조사업무를 지방자치단체에서 수행하도록 하는 아동학대 대응체계 개편방안을 발표했다. 시군구에 배치된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이 아동학대 현장조사를 수행하여 학대 판단, 초기 조치를 결정하고, 기존 아동보호 전문기관은 재학대 방지를 위한 치료·교육·상담 등을 담당하는 심층사례 관리기관으로 역할과 기능을 개편했다.

그러나 이러한 체계 개편에도 아동학대 현장 종사자들은 마냥 반가워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정부의 아동학대 근절을 위한 대책을 실효성 있게 집행하기 위해선 여전히 많은 과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첫째는 아동보호 전문기관이 여전한 역할 갈등과 과중한 업무로 아동학대 대응체계의 순기능을 적절하게 수행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필자가 근무하는 전남중부권 아동보호 전문기관은 8개 시군을 관할하고 있는데 그중 조사 업무 공공화에 따라 전담 공무원이 배치된 4개 지역은 그동안 쌓아 온 전문성을 바탕으로 조사 지원·동행 역할을 부여받았다. 반면, 전담 공무원이 배치되지 않은 4개 지역은 조사원의 역할을 지속적으로 수행한다. 또한 심층사례 관리기관으로 역할을 개편하면서 아동학대 가정의 전문성 있는 사례 관리자로서 중책을 수행해야 하는 기대와 부담을 안게 됐다. 때문에 하루빨리 전국의 모든 지자체에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이 배치되어 민관이 각자가 맡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둘째, 아동학대 현장의 관련 예산은 충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불안정하기까지 하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0년 아동학대 관련 예산 체계를 살펴보면 일반 회계는 11억 7000만 원, 범죄 피해자 보호기금이 225억 8000만 원, 복권 기금은 59억 1000만 원가량이다. 전체 예산 중 보건복지부 일반 회계는 3.9%에 불과하며, 법무부 예산인 범죄 피해자 보호기금이 76%, 기획재정부의 복권 기금에서 20%를 충당한다. 범죄 피해자 보호기금이나 복권 기금으로 운영되는 예산은 언제든 축소되고 변동될 수 있다는 불안정성을 가지고 있다. 안정적으로 아동보호 전문기관이 운영되고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선 전체 예산을 보건복지부 일반 회계로 전환하여 고정적인 예산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셋째, 아동보호 전문기관의 심층적인 사례 관리 역량 강화를 위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아동학대가 발생한 가정은 복합적인 문제와 가족 기능이 약화된 경우가 많아 가정의 기능을 다시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표준적이고 전문화된 서비스 마련이 필요하나 공공 차원의 노력은 사실상 부재하다. 민간단체인 굿네이버스는 2014년부터 가족 기능 회복과 효과적인 아동학대 예방을 위해 ‘아동보호 통합지원 전문 서비스’를 개발하여 현장에 적용하고 있다. 효과적인 아동학대 사례 관리를 위해서는 민관 협력을 통해 표준화되고 전문적인 아동학대 사례 관리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아동보호 전문기관의 인프라를 확대해야 한다. 현재 아동보호 전문기관은 266개 지자체의 26% 수준에 불과하며, 전남중부권 아동보호 전문기관만 해도 사례 관리 상담원 한 명당 62.5명의 아동 보호를 담당하고 있어 촘촘한 사례 관리 서비스를 제공하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또한 아동보호 전문기관 종사자에 대한 처우는 지난해 사회복지시설 인건비 가이드라인의 86.7%에 불과한 수준이다. 이처럼 열악한 처우와 강도 높은 업무로 인해 지난해 전국 아동보호 전문기관 종사자의 이직률은 28.5%, 근속 기간은 평균 3.3년으로 전문성 있는 상담원을 배치하기 어려운 상황이다.부디 정부는 아동학대 현장을 외면하지 말고 실효성 있는 대안을 마련해 더 많은 상담원이 현장의 자리를 지켜 낼 수 있게 해 주길 바란다. 아동학대 대응체계 개편이 더 많은 아이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실질적인 대책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방안을 마련해 주길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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