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비를 위한 제문을 읽으며
2020년 10월 27일(화) 05:00

송 혁 기 고려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너는 평생 부지런히 상전을 받들었으니 내가 실로 너의 덕을 많이 보았다. 내 이를 어찌 차마 잊을 수 있겠느냐? 너의 자식이 불초하기에 내가 일찍이 훈계하였건만, 아니나 다를까 살 곳을 잃고 떠나서는 아비 무덤에 풀이 우거져도 벌초할 생각조차 않는구나. 살아서는 일하느라 고생만 했는데 귀신이 되어서도 굶주리고 있으니 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내 우연히 이곳을 지나다가 가엾고 애달픈 마음에 떡과 과일을 약간 준비하여 너의 외손을 시켜서 가지고 가서 술을 부어 제를 올리고 급히 쓴 몇 마디 말을 무덤 곁에서 고하게 하노라. 너는 문자를 알지 못하지만 감통하는 귀신의 이치로 지극한 정성을 반드시 느낄 수 있으리라. 네가 흠향하기를 바란다.”

성호(星湖) 이익(李瀷)이 여러 해 전에 죽은 노비를 위해 지은 ‘제노문’(祭奴文)의 일부이다. 이 글의 서두에서 이익은 노비를 박대하면서 충성을 강요하는 현실을 비판하였다. 주인은 노비에게 추위와 배고픔을 벗어나게 해 주지도 못하면서 고생이란 고생은 다 시키며, 성이 나서 벌을 내리기만 할 뿐 잘한다고 상을 내리는 법은 없다. 주인을 위해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걸핏하면 매 맞고 욕먹기 일쑤이니 노비에게 주인은 원수와 다름이 없는데도, 주인이 죽으면 노비는 머리를 풀고 애도해야 한다.

반면 노비가 죽으면 주인은 슬퍼하기는커녕 제사상에 술 한 잔 부어 주는 일이 없다고 개탄하였다. 제문을 마무리하면서 이익은 이렇게 덧붙인다. “이 일을 보면 다들 나를 비웃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정(情)이 여기에 있으니 이렇게 하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평생 자신을 섬긴 노비를 위해 제사상 차려 주고 제문을 지어 주는 일이 어떻게 비웃음을 살 일인지 지금 우리의 가치관으로는 납득하기 어렵다.

하지만 노비를 사적 재산으로 여겼던 시대에는 이익의 이런 행동이 오히려 이례적인 일이었다. 귀천의 구분이 당연할 뿐 아니라 무너지면 안 되는 질서라고 생각한 양반들에게 있어서 노비제도의 존속에 대한 문제 제기는 애당초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 점에 관한 한 이익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남들의 손가락질을 감수하고 연민의 감정에 충실하여 자신의 목소리를 냈다는 점은 그것대로 소중하다.

근래 들어 택배 노동자들의 과로사와 극단적 선택이 이어지고 있다. 이분들이 감당해야 했던 엄청난 노동시간과 열악한 근무 여건이 알려지면서 많은 이들이 공감과 분노의 의견을 쏟아 내고 있다. 물론 택배회사의 선의를 기대하거나 정부에 정책을 촉구함으로써 간단히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특수 형태 근로 종사자라는 고용 형태에 대한 법적 기준을 만드는 일로부터 배송 이전의 분류 작업을 노동시간에 포함시키고 산업재해보상법의 적용 대상이 되도록 조치하는 일 등 간단치 않은 선결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만시지탄의 안타까움이 크고, 개선에 이르는 동안 또 다른 희생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되긴 하지만, 그래도 대책을 강구하는 단계로 나아간 것은 다행스럽다. 그런데 이러한 사각지대가 택배 노동자뿐일까? 우리가 더 저렴한 가격과 더 편리한 서비스를 당연한 선택 기준으로 여기는 한, 이런 문제는 앞으로도 끊이지 않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한때는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졌다. 조선 양반들의 문제만이 아니다. 유럽과 미국에서 아프리카인을 노예로 매매하는 일이 성행할 때, 사회경제적 필요성과 인종 및 문명의 우월감에 기반을 둔 합리화 논리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오랫동안 견지되었다. 지금 우리가 당연시하고 자신도 모르게 신봉하고 있는 무언가도, 바로 이와 같을지 모른다. 효율적인 비용으로 신속하게 처리할 수만 있다면 그 수단과 과정이 어떠해도 무방하다는 관념 또한 그 한 사례가 될 것이다.

당연한 가치로 추구되는 풍요와 행복 역시, 거기에 우리의 눈과 귀가 가려질 때 소중한 다른 것이 간과될 수 있다. 공감과 분노의 여론만으로 택배 노동자 처우 개선의 구체적인 대책을 제시하지는 못하겠지만, 그 추진의 원동력은 될 수 있다. 당연한 인식에 균열을 일으키는 것은 마음 깊은 곳의 움직임에 충실한 한 사람 한 사람의 성찰과 발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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