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필·안경 등 우리 삶과 밀접한 이름 소환
2020년 10월 16일(금) 00:00
명사의 초대
김경집 지음
‘고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인문학의 밥이다’ 등을 통해 독자와 만나온 인문학자 김경집이 이번에는 우리 생활과 밀접한 ‘명사’(名詞)를 호명했다. 그의 새 책 ‘명사의 초대-이름을 불러 삶을 묻는다’는 흔히 그냥 스쳐간 명사들에 말을 걸고 들은 다양한 이야기를 담은 산문집이다.

저자는 “사물의 이름은 단순히 명사의 일부가 아니라 나와 관계를 맺고 내 삶에 작용하며, 앞으로도 내 삶과 세상을 이어줄 소중한 이름들”이라고 말하며 47개의 명사를 초대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명사는 우리가 언어를 처음 배울 때도, 일상생활을 할 때도 가장 많이 쓰는 품사다. 우리는 명사를 통해 언어의 세계에 발을 내디디며, 명사를 기반으로 삼아 다른 품사로 언어의 세계를 확장하는 셈이다. 그가 들려주는 명사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 삶에 대한 이야기이고, 우리 삶에 던지는 소소한 질문이기도 하다.

책은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첫 장에서는 고개만 돌리면 쉽사리 마주치는 ‘이곳(近)’의 명사를 초대한다. 만년필, 종이, 컴퓨터, 신용카드, 달력, 도장, 리모컨 등이다. 다음 장에서는 창문, 의자, 접시, 액자, 샴푸, 일회용밴드, 립밤 등 집안을 채우고 있는 ‘여기內’의 명사들을 둘러본다. 마지막 장에서는 우리와 다소 떨어진 거리에 있는 ‘그곳遠’의 명사를 밖에서 만난다. 신호등, 광장, 우체통, 가로, 고속도로 휴게소, 화폐 등이다.

저자가 소개한 어떤 것들은 과거부터 만나왔고, 어떤 것들은 어느 틈에 서서히 사라진 탓에 미처 작별 인사도 나누지 못한 채 멀어지기도 했다. 반면 어떤 것들은 지금도 부지런히 쓰고 있고, 또 어떤 것들은 새로 나타난 명사들인데 마치 오래전부터 알았던 것처럼 일상에 깊숙하게 들어왔다.

저자는 각각의 명사가 어디서 비롯됐는지, 그 이름은 어떻게 지어졌는지, 시간을 관통하면서 그 모습과 쓰임새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등을 살펴보면서 우리가 살아온 삶을 묻는다. 현대인의 필수품이 되어버린 ‘신용카드’가 불과 1950년에 우연한 계기로 시작된 사연과 한국에서 한때 ‘신용카드’가 사회적 위치를 과시하는 수단이었던 까닭을 파헤친다.

또한 제2의 몸이라고 불러도 무방한 ‘안경’을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끈 정조도 썼으며, 불과 20∼30년 전만 해도 택시 첫 손님으로 ‘안경’ 쓴 사람을 피할 정도로 안경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한편 이제는 서서히 퇴장을 준비하는 명사의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물성을 지닌 사물의 퇴장이 아닌, 거기에 담겼던 한 사람의 시간과 추억도 함께 기억의 건너편으로 물러나는 것이라고, 그렇기에 우리는 그 뒷모습을 바라봐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우체통’이 바로 그 대표적 예이다. <교유서가·1만5000원>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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