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로운 수확기를 기다리며
2020년 09월 29일(화) 00:00

[김석기 농협중앙회 전남지역본부장]

자연에 많은 것을 의지하는 농업에 어느 해라고 힘들지 않았던 적이 없었겠지만, 지난 30년의 농협 생활 중 올해만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한꺼번에 마주친 적은 처음이었다. 사람이 통제할 수 없는 자연재해와 전염병의 대유행은 국민들의 삶을 어렵게 했을 뿐만 아니라 먹거리를 책임지고 있는 농업 분야에도 상상 이상의 큰 피해를 입혀 농업인들에게 소득 감소와 농작물 생산 관리 어려움이라는 이중고를 안겨 줬다.

유난히도 따뜻했던 지난겨울은 자발적인 재배 면적 감소에도 불구하고 우리 지역 대파 생산량을 늘려 가격을 폭락시켰고, 마늘에 싹이 다시 나는 봄철 2차 생장을 가져와 못쓰게 됐다. 감자는 표면이 갈라지고 울퉁불퉁한 열개 피해를 입어 태반이 버려졌다. 4월 초 이상 저온 현상은 과수나무의 꽃잎을 얼어 죽게 만들어 정상적인 과일 수정에 어려움을 겪었다.

역대 가장 길었던 장마는 일조량 부족과 강수량 과다로 생육 장해와 탄저병과 같은 질병을 야기했다. 8월의 집중 호우는 구례와 곡성 등지에 농경지 침수와 주택·비닐하우스·축사 등 시설물 파손과 함께 수확 및 출하를 앞두고 있었던 멜론 등 수많은 농작물과 한우 등 축산물을 잃게 했다. 강한 비바람을 동반해 연달아 찾아온 세 개의 태풍은 냉해 피해 이후 어렵게 수정시킨 사과·배 등을 낙과시키고, 벼를 쓰러뜨렸다.

코로나19는 또 다른 생채기를 남겼다. 졸업식과 입학식은 취소되고 결혼식은 연기돼 많은 화훼 농가들이 꽃 판매처를 잃게 됐다. 학교 개학이 연기되면서 계약 재배한 친환경 농산물은 갈 곳이 없어졌다. 외국인 근로자들의 입국이 어려워져 농촌에 일 할 사람이 부족해지고 인건비가 올랐다. 임금은 오르고 그마저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모임과 회식 축소는 식당에 공급하는 농산물 수요도 줄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돼지에게 치명적인 치사율을 보이는 아프리카 돼지열병(ASF) 바이러스의 위협은 코로나19와 함께 엎친데 덮친 격으로 소비를 침체시켜 생산비도 못 건지게 만들었다.

하지만 위기 속에서도 희망의 불빛을 찾을 수 있었다. 어려움이 생기면 서로 돕는 것은 오랜 기간 농경 생활을 해 온 우리나라 민중들의 몸속에 깊이 박힌 ‘협동 정신 DNA’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하는 일들이 연달아 일어났다. 정부와 지자체, 교육청이 앞장서고 군부대, 공공기관, 기업들이 적극 호응해 줬다. 많은 국민들이 농업인의 어려움을 함께 이해하고 국산 농산물 소비와 농촌 일손 돕기에 동참해줬다. 꽃 소비 촉진 챌린지, 드라이브 스루 농산물 판매, 대형 유통업체 릴레이 판촉 행사, 친환경 농산물 꾸러미 구매, 마늘·양파 수확 및 적과 작업 돕기, 수해 및 태풍 피해 현장 복구 지원 등 연초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의도치는 않았지만 식구들과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가정에서 밥을 먹는 기회가 많아지다 보니 믿을 수 있는 국내산 농축산물의 구매가 늘어났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렸다. 언제나 믿을 수 있는 먹거리를 생산에 온 힘을 쏟고 있었던 준비된 농업인들에게는 이번의 위기가 또 다른 기회가 되기도 했다.

전남 농협도 친환경 농산물 꾸러미 어플인 ‘친꾸’를 개발하고, 농산물 온라인 거래소를 통해 양파와 깐 마늘 시범 거래를 시작했다. 또한 농촌에 필요한 인력을 적기에 지원하기 위해 ‘일손돕기 119 기동대’를 운영해 8월 말 현재 1만 532명이 참여했으며 수확기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미래 농업을 이끌어 나갈 청년 농업인을 육성하기 위한 ‘청년 농부 사관학교’에도 전 시군지부에서 한 명 이상을 입학시키고, 졸업생들의 안정적인 정착을 돕기 위해 그들의 어려움을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 나가고 있다. 농업 생산비를 절감하는 벼 직파 재배는 6362㏊로 전국을 선도하고, 미래 먹거리로 망고 등 아열대 농산물 생산 농가를 조직화하고 판매처도 확대해 나가고 있다. 농업인들의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작지만 도움을 드리고자 노력하고 있다.

농촌 현장에 다닐 일이 많다 보니 계절 변화와 함께 농작물의 성장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들판과 익어가는 벼를 보면 본격적인 수확기가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한다. 수확의 계절에 더 이상의 재해가 없고 땀 흘려 소중하게 생산된 농산물이 소비자들에게 안정적으로 공급돼 농업인과 국민이 모두 함께 웃을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마지막으로 국민들의 식(食 )을 책임진다는 일념으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좋은 농산물을 생산하고 있는 농업인들에게 힘찬 응원을 보내 주면 좋겠다. 소중한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에 국내산 농산물을 애용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격려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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