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절한 시인들의 치열한 삶과 빛나는 시
2020년 09월 11일(금) 17:00
비극에 몸을 데인 시인들
우대식 지음
1989년 5월 30일 발행된 ‘입 속의 검은 잎’이라는 시집이 있다. 이 시집이 문청들에게 던진 충격파는 대단했다. “이 땅의 문학적 풍토에서 어떻게 저 같은 시들을 쓸 수 있었는가”하는 경이로움이었다. 바로 시인 기형도의 유고시집이다.

기형도(1960~1989). 부친 기우민 씨와 모친 장옥순 씨 사이의 3남 4녀 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요절한 천재시인이었다. 황해도 벽성군이 고향인 부친은 6·25때 연평도로 이주했으며 이후 섬에서 공무원 생활을 했다. 부친이 중풍으로 쓰러지고 어머니가 생계를 책임지면서 가난은 늘 그를 따랐다.

중앙일보 기자로 근무 중이었던 19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안개’가 당선돼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1989년 3월 6일 심야극장에서 주검으로 발견된다. 사인은 뇌졸중으로 추정된다는 것이 담당의사 소견이었다.

천재는 요절한다는 말이 있다. 아마도 시인 기형도를 두고 하는 말인 듯하다. 기형도 외에도 많은 시인들이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아마도 그들에게 시는 ‘생의 환희이며 살아가는 이유’였을 터다.

요절한 시인들을 조명한 우대식 시인의 책 ‘비극에 몸을 데인 시인들’을 읽는다는 것은 쓸쓸하다. ‘요절한 천재 시인들을 찾아서’라는 부제부터 무겁게 다가온다. ‘현대시학’으로 등단해 여러 편의 시집을 내고 현재 숭실대 문예창작과 강사로 있는 저자는 요절 시인들의 고향과 인연이 있는 공간을 찾아 1만km에 이르는 여정을 펼쳤다.

“사람살이가 늘 상처투성이임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마는 시인들만큼 미늘의 바늘로 상처를 낚아채는 사람들도 드물 것이다. 빛나는 죽음의 촉수들이 향하는 행로를 지켜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죽은 시인과 죽지 않은 시를 동시에 만나는 순간의 벅찬 ‘어처구니’가 나를 더더욱 이 작업 안으로 몰아붙였다.”

저자는 기형도 시인 외에도 여림·이경록·김민부·김용직·원희석·임홍재·송유하·박석수·이현우 시인 등을 불러낸다. 책을 쓰기 위해 비무장지대 가까운 파주의 통일동산에서부터 땅끝 완도까지 곳곳을 누비는 여정을 감행했다.

이들 시인들의 죽음의 이유와 원인은 각기 다르다. 그럼에도 공통점이 있다. “자신의 삶을 창조적 에너지로 밀어올려 결국 휘어 부러뜨렸다”는 것이다. 또한 자신의 삶이 생각만큼 길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예견이라도 하듯 짧은 시간 치열하게 창작에 매달렸다.

저자는 우리가 미처 몰랐던 시인들이지만 이들의 작품 수준은 매우 높았다고 본다. 39세에 타계한 군산 출신 이연주 시인의 눈빛은 아픔과 처연함을 준다. 그녀를 추억할 수 있는 뿔테 안경을 쓴 사진과 “지독한 삶의 냄새로부터/ 쉬고 싶다”라는 시가 주는 울림은 쓸쓸하다 못해 폐부를 찌른다.

199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던 여림 시인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간경화로 세상을 떠난 그에게선 바다가 보이는 고향 장승포의 이미지가 어른거린다. 그럼에도 따스하다. “포장을 걷으면 환하고 따뜻한 길/ 좀 전에 내린 것은 눈이 아니라 별이었구나/ 옷자락에 묻어나는 별들의 사금파리/ 멀리 집의 불빛이 소혹성처럼 둥글다”

요절한 시인들의 시는 그렇게 평범한 일상을 돌아보게 하는 힘을 갖고 있다. 정호승 시인은 추천사에서 “죽음의 언저리를 산책했던 예민한 영혼들의 치열했던 삶과 빛나는 시는, 오늘날 우리의 일상을 돌아보게 하기에 충분하다”고 평한다.

<새움·1만4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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