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시험’ 제도 변화를 제안한다
2020년 09월 03일(목) 00:00

이정선 전 광주교대 총장

개인의 지위와 역할을 결정하기 위해서 사회는 그 나름의 선발 방식을 가지고 있다. 대학 입학 수학 능력 시험(수능)이 대표적인 예이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수능과 관련해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희소재를 분배하는 방식이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지금까지는 지원자가 합격자보다 훨씬 많아서 일부 지원자들을 불가피하게 선별해 탈락시키지 않으면 안 되었다. 따라서 선발 방식의 공정성과 선발 주체에 대한 신뢰 여부가 정부 주도의 거의 획일적인 선발을 가능하도록 해 왔다.

그런 수능의 부작용은 수험생은 물론이고 학부모의 과도한 심적 부담 그리고 교육 체제와 학교 교육 운영 방식의 왜곡, 사교육비 부담, 심지어는 사회 전반에 걸쳐 소위 ‘검은 엔진’(dark engine·부정적)으로 역할을 해 왔다. 단 한 차례 평가를 통해 개인의 운명을 결정짓는다는 잔인함부터 창의성을 살리지 못하고 정답 찾기식 암기 학습을 가져왔다는 지적까지, 그 비판도 다양하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수험생들과 학부모의 걱정과 고통이 더 크다고 한다. 특별히 지난 6월 수능 모의고사 결과 분석에서 보는 것처럼 중간층이 사라지고 저소득층이나 취약계층 학생들이 더 불리해졌다.

이러한 역기능을 소위 순기능(blue engine)으로 바꿀 방법은 없는가. 일단은 몇 가지 상황 변화에 주목해 보자. 무엇보다도 기존의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가까운 장래에 수험생보다 대학 입학 정원이 훨씬 많아진다.

교육부 추산 통계를 보면 2030년이 되면 수능생은 40만 명 정도로 대학 입학 정원인 49만 명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현재도 상당수 대학은 입학 정원을 다 채우지 못하고 있다. 물론 우수 대학으로의 쏠림 현상은 풀어야 할 과제이다. 하지만 산술적으로 보면 수요 과잉으로 인해 수험생이 대학을 골라가도 되기 때문에 과거와 같은 획일적인 표준화 선별 장치의 의미가 많이 약화될 것은 분명하다.

게다가 장기적으로는 내가 꿈꾸는 학생 맞춤형 교육(진로 수요 맞춤 교육)을 위해 고등학교를 다양하게 개편하고, 학생의 자기주도적 선택형 교육과정(DIY 교육과정) 운영과 함께 고교 학점제를 시행하면 학생들은 자신의 적성과 특기에 맞추어 진로와 진학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대학 지원자도 줄 것이고, 그러면 대학 입시에서 수능이 차지하는 비중과 중요도는 훨씬 약화될 것이다.

조심스럽긴 하지만 이제는 학생 선발권을 대학에 위임해도 될 만큼 시민 의식이 성숙해졌고 사회도 투명해졌다. 더불어 교육부의 체계적인 관리와 시민사회단체의 견제가 가능해져서 최소 수준의 안전장치는 갖추어졌다. 창의성은 다양성을 기초로 가능하다. 대학과 학과마다 거의 획일적인 잣대로 선발해 오던 방식을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요구와 학교 및 학과의 특성에 따라 다양한 맞춤형으로 전환한다 해도 사회적 합의를 전제로 한다면 수험생들과 학부모들도 수용하지 않을까 한다.

그렇다고 대학이 일시에 예측 불가능 할 만큼 선발 방식을 다양화하는 것은 수험생들과 학부모의 혼란을 가중시킬 것이라는 점에서, 또한 수능이 지금까지 어느 정도 공정성을 확보하고 있는 선발 제도라는 점에서 수능을 일시에 폐지하기보다는 기능의 변화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는 것도 좋을 것이다.

즉 선발 고사가 아니라 학생 개개인의 학습 수준 진단용이나 대학 입시의 참고용으로 하되, 선발 방식을 정답 찾기식이 아니라 프랑스의 문제 해결이나 창의성 신장을 위한 논술 방식으로 하면 어떨까 싶다. 1회 평가로 판가름 할 것이 아니라 미국의 SAT와 같이 상시 평가 체제를 갖추면 좋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제도를 위한 세부적인 준비 사항과 필요한 부대 비용은 더 따져보아야 할 부분이다.

요약하자면 선발의 주체를 대학으로, 수능 시험은 기능·내용·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수능으로 인한 사회적 부담을 확실하게 줄이고 창의성을 신장시키는 방향으로 나가자는 것이다.

수능은 많은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달려있는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충분한 논의 과정과 합의가 선행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렇지 않아도 힘든 시기인데 코로나로 인해 이중 삼중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수험생들과 학부모들에게 힘내라는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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