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하도 선착장에 판옥선을 띄우자
2020년 07월 17일(금) 00:00

목포해양대 해군사관학부 고광섭 교수

최근 목포는 근대역사 문화공간 조성, 해상 케이블카 연결 등에 이어 전국 4대 관광 거점도시로 선정되면서 관광 도시로 발전하기 위한 기반이 조성되고 있다. 목포시는 맛과 흥의 도시를 강조하는 홍보에도 열중이다. 지금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먹고 사는 문제가 분명할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 더 멀리 보면 관광객을 유인하는 데 ‘맛과 흥’을 중심으로 하는 콘텐츠에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시대에 따라 맛과 흥이 달라지고, 전국적으로 맛과 흥을 콘텐츠로 하는 관광지가 수없이 출현하고 있어 장기적으로 보면 경쟁력에서도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또 맛과 흥은 있되 혼이 없는 관광 콘텐츠가 지역 사회의 대명사가 되지 않을까 우려되기도 한다.

유명 관광지의 경우 국내외를 막론하고 자연환경이 뛰어나거나 역사적 유적지 등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특히 국가나 지역의 유적지나 유물은 선대가 물려준 문화유산으로서 국가와 지역의 가치를 높이고, 국민이나 지역민에게 자부심과 함께 혼을 심어 줄 수 있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맛과 자연환경 및 역사·문화가 융합된 관광 콘텐츠가 필요한 이유이다.

몇 년 전 목포 원도심 근대역사 문화공간 조성이 전국적인 이슈가 될 때나 최근 관광 거점도시 선포 행사에서도 일제가 남긴 근대문화 유산은 그 가치를 평가받았으나 고하도에 있는 420여 년 전의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유적지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해전 지역 포구가 역사적으로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오류로 보이는 역사적 기록의 흔적을 이유로 자신들이 관할하는 구역의 포구라고 수년 동안 주장하며 이순신 장군에 대한 기념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다른 도 모 지자체의 경우와는 대조적이다.

고하도는 6·25 참전 용사인 해군 예비역 최영섭 옹이 그의 저서 ‘민족성지 고하도’에서 우리 민족의 성지로 부를 만큼 역사적 의미를 갖고 있다.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의 직위를 유지하고 체류했던 수군진은 주둔 기간의 차이는 있으나, 시대순으로 보면 여수의 전라좌수영, 통영의 통제영, 안편도(현 안좌도, 구 기좌도), 목포의 고하도, 완도의 고금도 등이었다.

고하도는 이순신 장군이 고하도를 떠난 지 420여 년이 지난 오늘날 어떠한 모습일까? 이순신 장군의 조선 수군 재건과 애국 충혼을 기리기 위한 흔적은 1708년 제 82대 수군통제사 오중주가 발의한 이래 14년 후인 1722년 8월 이순신의 5대 손인 제94대 수군통제사 이봉상이 세운 유허비가 유일하다. 이순신이 고하도를 떠난 지 124년 후의 일이다. 이 유허비는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부식이 심한 상태로 읽기도 어려운 상태로 고하도 모충각 안에 보존되어 있다.

1974년 9월 24일 모충각을 포함한 큰산 일대는 ‘이충무공 유적지’로 도 지정 기념물 제 10호로 지정된 바 있으나 이순신 장군과 조선 수군 주둔 시기 장군의 일기에도 기록되어 있는 사령부 건물, 선창, 선소(전선 정박지) 등 당시의 삼도수군통제영의 수군진의 형체나 규모 등을 가늠할 수 있는 상징물 하나 없다. 과거 해군 관계관과 최영섭 옹 등이 진터로 추정되는 곳에 최초로 세운 팻말 자리에 목포시장과 3함대 사령관 공동명의로 표기된 입간판 하나만 덩그러니 세워져 있을 뿐이다. 이 충무공 유적지에 대한 시각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목포는 천혜의 자연환경과 맛과 흥, 낭만은 물론 이순신 장군의 혼이 있는 관광 도시로 발전할 수 있는 기반 자원이 충분하다. 이순신 장군이 목포 고하도를 떠난 지 420여 년이 지났지만, 여태껏 전시 삼도수군통제영이 있었던 고하도 수군진을 대표하는 상징물 하나 없는 현실이다. 아직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목포시는 삼도수군통제영 고하도 수군진에 대한 적극적인 콘텐츠 개발로 맛과 멋은 물론 호남 지역 구국의 혼을 융합한, 미래 지향적인 한반도 서남해역 관광 거점도시로 성장을 꾀해야 한다. 목포 고하도에 조선수군 통제영 막사가 세워지고 선착장에 조선 수군 판옥선이 뜰 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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