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억한다 지난 여름 네가 한 말을
2020년 07월 14일(화) 00:00

[최 성 훈 육군보병학교 교관]

‘타격은 일본 기업에’(打擊は日本企業に)

지난 6월 23일 일본 도쿄신문에 실린 서울 특파원의 칼럼 제목으로, 수출 규제 조치 이후 한일 양국 기업의 현 상황을 조명했다.

1년 전 한국 경제에 큰 타격을 주려고 시작했던 일본의 수출 규제가 오히려 일본 기업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 ‘기술 독립’을 이루고, 한국인들의 불매 운동으로 닛산자동차와 유니클로 계열의 패션 브랜드 지유(GU)가 한국 시장에서 철수하는 사태로 이어져 거꾸로 일본 기업이 타격을 받고 있다는 것이 기사의 주요 내용이다.

이런 일본의 자기 반성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5월 20일 일본의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고순도 불화수소로 세계 시장의 70%를 점유하고 있는 일본 기업의 2019년 회계연도 당기 순이익이 전년 대비 18% 감소했다고 밝히면서, “미중 무역 분쟁과 더불어 일본 정부의 한국 수출 규제가 오히려 한국 기업의 첨단 소재 국산화를 앞당겨 일본 기업에게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일본이 수출 규제를 강행할 때만 해도 반도체와 디스플레이가 한국의 중요 수출 상품이라는 점에서 한국 경제의 가장 아픈 곳을 건드렸다는 평가와 함께 최악의 경우 한국의 반도체 생산 라인이 3개월 안에 멈출 수도 있다는 우려까지 나왔다. 일본 정부가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를 시행한 지 1년이 지난 지금, 일본은 한국의 급소를 제대로 공략했을까? 이로 인해 한국은 얼마나 많은 피해를 입었을까?

일본의 대한국 수출 규제 조치 이후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는 물론 자동차·기계금속·전기전자·기초화학 등 6개 산업군에서 소재·부품·장비의 국산화와 기술 개발 바람이 거세게 일면서 ‘탈(脫)일본’을 통한 기술 독립이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우리 기업들이 일본제를 선호했던 가장 큰 이유는 고품질에 안정적인 공급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불량품 발생을 최소화하기 위해 고가의 가격이라도 제품의 질을 높이기 위해 일본제를 써왔던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런 관행을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가 막아섰다. 우리 기업들은 이제 일본 제품을 위기로 인식하기 시작했고, 반도체의 안정적인 생산을 위해 생산 공정의 일부에 국내 조달이 가능한 저순도 불화수소를 쓰기 시작했다. 이제 수출 규제 이전으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한번 대체된 재료는 다시 일본제를 쓸 수 없게 된 것이다.

일본에 의한 수출 규제는 아베 총리의 생각과는 달리 잠자고 있던 한국을 깨웠고, 국산화와 수입 다변화를 통해 반도체 핵심 소재의 ‘탈일본’을 가속화하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었다. 실제로 일본 수출 규제 3대 소재 중 가장 큰 타격이 우려됐던 불화수소는 지난해 7월부터 올해 5월까지 일본산 수입액이 전년 같은 기간보다 89.4%나 줄었고, 수입 비중은 42.4%에서 9.5%로 줄었다.

특히 소재·부품·장비의 국산화가 늘어나고 일본 제품에 대한 불매 운동의 영향으로 자동차, 맥주 등 소비재 수입까지 줄면서 일본과의 교역에서 가장 큰 문제였던 무역 적자도 큰 폭으로 개선되었다. 지난해 대일 무역 적자는 191억 6300만 달러로 2004년 이후 16년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지난해 무더위와 함께 수출 규제가 시작될 당시 국내에서 쏟아지던 말들을 떠올려 보자. ‘감정만 앞세운 불매 운동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일본의 경제를 아직 한국이 감당할 수 없다’는 등의 표현에는 일본이 경제 전쟁을 선포했지만 어차피 우리는 안되니까 일본의 감정을 자극하지 말고 작은 이익이라도 가져와야 한다는 뜻이 숨어 있었다. 실리로 포장됐지만 항복해야 한다는 말이나 다름 없었다.

그러나 항상 그래왔듯이 위기 극복의 순간에는 수많은 우리들이 있었다. IMF 위기 때에는 장롱에 넣어둔 금을 꺼내 놓은 우리가, 수출 규제에는 자발적인 불매 운동으로 대응한 우리가 있었다.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위험에 처해 있을 때는 K-방역이라는 세계의 표준을 만들어 낸 우리가 있었다.

우리는 1년 전 누가 이런 말들을 했는지 기억해 두어야 한다. 미래에 또 다른 위기가 우리에게 닥칠 때, 그들의 말대로 하면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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