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복수했어요?
2020년 07월 13일(월) 00:00 가가
제주 4·3과 광주 5·18 항쟁의 참뜻을 어떻게 후세들에게 가르칠 것인가? 이 문제를 고민하기 위해 해마다 제주교육청과 광주교육청은 교류를 한다.
지난해에는 제주교육청에서 광주교육청을 방문하여 ‘평화 인권 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놓고 포럼을 가졌다. 포럼이 끝나고 뒷풀이 자리에서 있었던 일이다. 머리가 희끗한 4·3 유족회 어르신이 4·3 명예교사로 일선 학교에 가서 아이들과 대화하면서 당황했던 얘기를 꺼내셨다.
어느 중학교에 가서 처참했던 당시의 상황과 교도소에 끌려다니다가 돌아가신 부모님의 얘기를 하고 있을 때였다. 맨 뒷좌석에 있던 한 놈이 “할아버지!”하면서 손을 번쩍 들더라는 것이다. 그러더니 큰 소리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할아버지, 그놈들한테 복수했어요? 제가 보복해 드릴게요!”
어르신은 그때 그 학생의 눈빛을 잊을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금방이라도 총을 들고 달려 나갈 듯한 그 눈빛 때문에 한동안 가슴이 먹먹했다고 하셨다. 그 어르신은 우리가 학생들에게 보복과 복수를 가르치기 위해 이렇게 교육을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하시면서 우리 교육의 방향이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 끝을 흐리셨다. 잠깐의 정적이 흘렀고 모두가 순간의 고민에 빠졌다.
폴란드 아우슈비츠 유태인 학살의 수용소를 기억할 때 우리는 종종 ‘용서하라! 그러나 잊지는 마라!’ 라는 글귀를 생각하곤 한다. 나는 젊은 날 전두환 군사 독재 시절 5·18 학살의 진실에 다가설 때 마다 참을 수 없는 분노를 감출 수가 없었다. 내 젊은 혈기로는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었다. 부모 형제를 죽인 원수를 어떻게 용서한다는 말인가? 그 용서는 진정한 용서인가? 40년 전 그때 그 시절의 ‘군사 독재 타도!’의 분노는 시대적 양심이었고, 분노하지 못하는 젊은이는 비겁한 자 였다. 아름다운 분노는 존재하는가?
그 ‘분노’는 세월과 함께 희석되어, 일부는 사회 변화의 자양분이 되고, 일부는 가해자 처벌을 포함하여 미완의 역사 바로 세우기 과제로 남아 있다. 다시, 손을 번쩍 들고 분노로 이글거리는 한 중학생의 마음으로 돌아가 보자. 그 까까머리 중학생은 우리의 역사 속에 늘 그렇게 손을 들고 있었다. 붉은 피 선연했던 지리산 계곡에도, 학살의 들불이 번지던 한라산 오름 동굴에도, 여순의 군인들 가슴에도, 보도연맹의 완장에도, 서북청년단의 죽창에도, 26살 제주 김달삼의 가슴에도 그 분노가 있었다.
나는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어리다고 하여, 그 ‘분노’를 불온시하거나, 불순한 감정으로 대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 누구에게나 ‘분노’는 두 눈 부릅뜨고 냉철한 이성으로 직시해야 할 정확한 감정이지만, 조심스러운 ‘감정’이다. 다만, 그 분노가 보복이나 화풀이가 되지 않고, 그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는 곳을 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평화·인권 교육이라고 명명하고, 즉자적 분노를 넘어서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제주와 광주교육청은 모든 학교에 평화 인권 교육 주간을 설정하고, 매년 약 5억 원의 예산을 투입하고 있고, 산증인들을 모셔서 명예 교사로 위촉하고, 역사 교육을 바로 하기 위해 전국에 4·3과 5·18 교육자료를 보내고, 전국의 교원들을 매년 1천 명 가까이 초대하여 연수를 실시하고 있다. 진실을 보고, 분노하라! 그러나 다시는 이 비극의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게 보복과 복수가 아닌, 평화와 인권의 역량이 차고 넘치게 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는 후세들을 배고픔과 냉전의 분노에 빠지지 않게 하자는 것이다.
지난해에는 제주교육청에서 광주교육청을 방문하여 ‘평화 인권 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놓고 포럼을 가졌다. 포럼이 끝나고 뒷풀이 자리에서 있었던 일이다. 머리가 희끗한 4·3 유족회 어르신이 4·3 명예교사로 일선 학교에 가서 아이들과 대화하면서 당황했던 얘기를 꺼내셨다.
“할아버지, 그놈들한테 복수했어요? 제가 보복해 드릴게요!”
그 ‘분노’는 세월과 함께 희석되어, 일부는 사회 변화의 자양분이 되고, 일부는 가해자 처벌을 포함하여 미완의 역사 바로 세우기 과제로 남아 있다. 다시, 손을 번쩍 들고 분노로 이글거리는 한 중학생의 마음으로 돌아가 보자. 그 까까머리 중학생은 우리의 역사 속에 늘 그렇게 손을 들고 있었다. 붉은 피 선연했던 지리산 계곡에도, 학살의 들불이 번지던 한라산 오름 동굴에도, 여순의 군인들 가슴에도, 보도연맹의 완장에도, 서북청년단의 죽창에도, 26살 제주 김달삼의 가슴에도 그 분노가 있었다.
나는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어리다고 하여, 그 ‘분노’를 불온시하거나, 불순한 감정으로 대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 누구에게나 ‘분노’는 두 눈 부릅뜨고 냉철한 이성으로 직시해야 할 정확한 감정이지만, 조심스러운 ‘감정’이다. 다만, 그 분노가 보복이나 화풀이가 되지 않고, 그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는 곳을 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평화·인권 교육이라고 명명하고, 즉자적 분노를 넘어서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제주와 광주교육청은 모든 학교에 평화 인권 교육 주간을 설정하고, 매년 약 5억 원의 예산을 투입하고 있고, 산증인들을 모셔서 명예 교사로 위촉하고, 역사 교육을 바로 하기 위해 전국에 4·3과 5·18 교육자료를 보내고, 전국의 교원들을 매년 1천 명 가까이 초대하여 연수를 실시하고 있다. 진실을 보고, 분노하라! 그러나 다시는 이 비극의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게 보복과 복수가 아닌, 평화와 인권의 역량이 차고 넘치게 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는 후세들을 배고픔과 냉전의 분노에 빠지지 않게 하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