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 정치
2020년 06월 22일(월) 00:00 가가
조선의 여성 성리학자 가운데 임윤지당(1721~1793)이라는 인물이 있다. 그녀는 8세 때 아버지를 여읜 데다 출가해서도 일찍 남편이 사망하는 불운을 겪었다. 그러나 학문에 매진해 ‘대학’ ‘중용’ 등을 재해석하고 성리학 이론을 설파할 수 있을 정도로 당대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가 남성 중심 유교사회에서도 학문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오빠 임성주의 영향 때문이었다. 조선 10대 성리학자에 들 만큼 뛰어난 학자였던 임성주는 배움에 있어 성차별을 두지 않았다.
조선 중기의 여류 시인 허난설헌(1563~1589)은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의 누이다. 뛰어난 문재로 한 시대를 풍미했지만 안타깝게도 27세에 요절했다. 사후 허균에 의해 간행된 ‘난설헌집’은 중국은 물론 일본에까지 그의 이름을 떨치게 했다. 이들 남매가 학문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것은 이달이라는 스승의 가르침 때문이었다. 비록 당대에는 배격을 당했지만, 절치부심했던 남매로 인해 우리 문학사는 풍요로울 수 있었다.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남매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지난 13일 김여정이 “멀지 않아 쓸모없는 북남공동연락사무소가 형체도 없이 무너져 내리는 비참한 광경을 보게 될 것”이라고 예고한 지 3일 만에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폭파돼 버렸다. ‘남북 소통의 상징’이었던 연락사무소 파괴는 군사적 긴장은 물론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되돌린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2011년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 장례식장에서 눈물짓던 김여정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평창올림픽을 참관하며 ‘평화의 전도사’ 같은 행보를 하던 모습도 생생하다. 그뿐인가. 혹자는 두 남매가 해외 유학파라는 사실을 상기하며 선대와는 다른 과감한 개혁·개방을 할 것으로 기대하기도 했었다.
불현듯 학창 시절 배웠던 월명사의 ‘제망매가’라는 시(향가)가 떠오른다. 죽은 누이를 추모하기 위해 지은 작품으로, 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남매도 연이 다하면 헤어진다는 인식론적 깨달음을 담고 있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다. 후일 역사는 김정은·김여정의 ‘남매 정치’를 어떻게 평가할까.
/박성천 문화부 부장skypark@kwangju.co.kr
불현듯 학창 시절 배웠던 월명사의 ‘제망매가’라는 시(향가)가 떠오른다. 죽은 누이를 추모하기 위해 지은 작품으로, 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남매도 연이 다하면 헤어진다는 인식론적 깨달음을 담고 있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다. 후일 역사는 김정은·김여정의 ‘남매 정치’를 어떻게 평가할까.
/박성천 문화부 부장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