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강 신르네상스 시대가 도래하다
2020년 06월 15일(월) 00:00

이진영 ㈜화이건설·해솔아스콘 부회장

고대 이래 영산강 유역에서 농사 짓는 농부들은 봄에는 씨앗을 뿌려 여름에 키우고, 가을에 수확을 했다. 사람이 할 일을 끝낸 뒤 하늘에만 모든 것을 맡긴 시대였지만, 영산강은 삶의 터전이었다. 세월은 흘러 60년대만 해도 호남의 젖줄 영산강은 비가 오면 하천의 범람으로 농작물이 침수되고, 홍수가 나면 상류에서 소·돼지 등 가축과 가재도구들이 떠내려 오는 등 막대한 재난 피해를 안기곤 했다.

이와 같은 수해 상습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국가가 영산강 유역권에 농업용수용 댐을 막고, 제방 둑을 구축하는 등 치수 사업을 하였다. 이를 발판 삼아 강변도로 보충 공사에 나서 총 길이 51.9㎞ 중 나주 영산에서 무안 몽탄까지 34㎞ 구간이 지난 3월 처음 개통됐으니 참으로 반갑고 가슴 뿌듯한 일이다.

또 하나 경사스러운 것은 지난 5월 20일 ‘역사문화정비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영산강 유역에 자리 잡고 있었던 마한 문화권이 폭넓게 연구되고 개발될 기회를 맞게 된 것이다. 마한 시대는 문자 활용이 없었던 시기라 그 문화를 알기 위해선 고분군 발굴 조사 연구가 필수이지만 예산 확보에 어려움이 있었다. 한데 특별법을 통해 연구 개발 복원 사업에 대한 국비 지원의 법률적 근거가 확보된 것이다. 그동안 흔히들 고대 마한과 가야를 배제한 채 삼국시대로 부르는 잘못된 역사 인식도 바로 잡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호남의 고대 역사의 뿌리가 영산강 유역의 마한에서 태동해 오늘날의 대한민국으로 이어지고 있는 중요성에 비추어 보면 그 중심지에 대한 접근이 쉬워지도록 교통 인프라를 개선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이를 위해 이 지역을 관통하고 있는 지방도 801호선 중 일정 구간의 격(格)을 높여 국지도로로 승격시키고 이와 연계해 영산강 일대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 용호 고분이 있는 나주 공산~다시 간 끊겨진 도로와 교량을 가설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인접지인 영암 시종 내동리의 독특한 쌍무덤과 그 주변에 있는 20개의 고분군에 대한 연구 조사도 필요하다. 그동안 국가 지원의 법적 근거가 미흡하여 연구 개발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지만, 이제는 전문가 충원과 장단기 계획으로 체계적인 연구와 사업 추진이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물이 흐르는 곳에 사람이 모여 산다는 말이 있듯이 대다수 세계 도시는 강, 호수, 바다를 끼고 있다. 영산강은 총 길이 203.53㎞, 유역 면적은 3563㎢에 달한다. 지금으로부터 1000여 년 전인 고려 6대 왕인 성종(983년) 때 나주목(牧)으로 지정된 이후 나주는 전국 12목 가운데 호남의 정치·문화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조선을 거쳐 일제 강점기까지 해냈다. 조선 건국의 설계자 삼봉 정도전은 저서 유부노서(諭父老書)에서 나주는 ‘부흥의 땅’이라고 했다. 그 예언이 적중하듯 혁신 도시가 영산강변에 들어섰고 한전공대 설립 등으로 도약의 전기를 맞고 있다.

이집트 문명은 나일강과 함께 이룩되었고, 중국 문화권 역시 황하의 덕이다. 강을 끼고 있는 세계 도시 중 수변 공간을 잘 이용하여 세계 명물로 만든 대표적인 지역은 파리(센강), 런던(템즈강), 뉴욕(허드슨강) 등을 꼽고 싶다. 한국도 번영의 상징 서울에 한강이 있었기에 수도 역할까지 하고 있다.

호남의 문명 역시 영산강의 영향으로 이룩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제부터라도 영산강의 수변 경관과 강변 도로 관리에 힘쓰는 한편 마한 문화에 대한 연구 개발을 서둘러 세계적인 명소로 가꾸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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