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관리청 시대의 지방 공공보건 조직
2020년 06월 02일(화) 00:00

[박형철 예방의학 전문의·전 국립소록도병원장]

조선시대 전라도 관찰사 관할 하에 제주목(濟州牧)이 있었다. 제주시 소재 ‘제주목 역사관’에 가면 제주목 600년의 역사가 오롯이 기록되어 있다. ‘제주목사, 선정을 베풀다’ 코너에는 12명의 목사(牧使), 그중 제일 앞에 기건(奇虔) 목사가 위치해 있다. 세종 25년∼27년까지 재임한 기 목사는 청백리로 칭송되고, 이어지는 동영상에는 당시 제주 일대에 나타난 나질(한센병)로 고통받은 주민들을 어떻게 사랑으로 돌봤는지 그리고 있다.

지금의 의학으로 보면 한센병은 치료 가능한, 조기 발견과 치료로 후유 장애 없이 낫는 감염성 질환이다. 질병의 원인이나 증상, 예후가 달라 직접 비교는 어렵지만 당시 한센병은 요즘 코로나19 버금가는 질환이었을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제주목은 공공의료 시설격인 구질막(救疾幕, 치료소)을 만들고 감독과 치료에 전념하게 하였다. 전문 인력이라 할 수 있는 의생 등으로 하여금 치료에 전념케 하는 등 시설, 인력, 조직 모두를 갖추었음이 분명하다. 인도주의, 공공의 접근이 바탕이었으며 조선 특히 세종시대의 혜안이 돋보이는, 현대에 견주어도 결코 뒤지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 국가 차원의 기구를 보면 건강을 보건사회부, 보건복지부 등이 맡았고 명칭이나 실제에서 보듯이 사회적 접근, 복지적 접근이 주류를 차지하였다. 지금 코로나 극복의 최고 기구인 질병관리본부도 전신인 국립보건원에서 사스 발생 전후 질병관리본부(1급), 메르스 발생 후 차관급 조직으로 승격했다.

지방 조직의 현주소는 어떨까? 감염병의 최전선에서 활약 중인 시·군·구 보건(지)소는 진료 의사도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진료 의사도 구하지 못하는데 감염병, 만성병 대처를 위한 공공의료 의료인을 구하기는 언감생심이다.

광역시 조직을 보면 복지건강국이라는 조직 아래 건강정책과, 1개 과에 불과하다. 위상도 복지나 여성, 인구의 부수 조직을 면치 못하고 있다. 분야 책임자도 보건이 아닌 복지나 행정이 담당하고 있어 소통이나 적기 의사결정이 더딜 수도 있다. 전문성 측면에서 교수나 전문가 머리를 빌리는 정도가 전부로 보인다. 민관학 협력을 나무라는 것이 아니다. 파트너십은 분명히 필요하다. 오랜 법적 근거의 전문 방역관 한 명도, 예방 의학이나 공중보건을 전공한 의사 한 명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일부 직렬을 제외하곤 준전문인력이 보충하고 있다.

열악한 가운데 이번 코로나 정국에서 광주광역시의 성과는 돋보인다. 공공의료원 설립 계획도 비교적 시의적절해 보인다.

국내외 전문가 일부는 코로나의 일상화 가능성을 내비쳤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문적이고 독립적인 질병관리청(가칭) 출범을 목전에 둔 광역 시도는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보건 조직의 한두 자리 보강이 아닌 큰 그림을 그려야 하고 이를 위한 혁신 사고와 행동이 필요하다. 조직과 기구, 시스템 및 전문 인력 삼박자가 긴요하다.

얼마 전 대통령의 질병관리청(가칭) 승격 발표가 있었다. 새로운 감염병 등 건강 문제에 현재 질병관리본부 정도의 조직으론 감내해 낼 수 없겠다는 판단 하에 새로운 비전과 미션을 제시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각 매체에서는 바뀌어질 ‘청’ 조직에 대한 분석 기사를 싣고 있다. 조직의 확대, 전문인력 확충, 독립성과 전문성 강화와 함께 지방 조직의 구축을 예상하는 기사도 눈에 띄었다. 보건환경연구원이나 지방 보건 업무의 최일선에서 시군구 보건소 조직의 중앙 편입도 일부에서 거론되고 있다. 바람직하지 않지만 지방 조직의 말단으로서 한계와 소외감을 느끼고 있는 일부 지역 보건 전문가 내지 보건 업무 종사자들의 속마음에서는 변화를 바라는 그룹이 없다고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소방 조직처럼 말이다.

사스 방역에 성공한 노무현 정부가, 코로나 방역에서 ‘K-방역’이라는 글로벌 리더십을 발휘했다고 추앙받는 문재인 정부가 성과에 만족하지 않고 질병관리 기관을 대폭 확충하듯이 광역 시도도 이번 성과에 만족하지 말고 또 다른 진화된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그래야 다음 번에도 활약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몇 년 전 비슷한 길을 걷던 서울시가 시민건강국을 설치하고 공중보건 전문가인 예방의학 전문의를 영입하여 실질적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여 코로나 극복에 큰 도움을 받고 있는 사례를 참조하시길 조언한다. 바람직한 미래지향형 지방 공공보건 조직 혁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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