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광가속기 구축 사업’ 재평가돼야 한다
2020년 05월 27일(수) 00:00

홍성출 전북대학교 의대 교수

평등은 모든 현대 민주주의 국가들이 기본 헌법 개념으로 규정하고 있다. 민주주의 국가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공산주의 국가들조차도 평등을 그 국가의 틀이 되는 기본 헌법 개념으로 채택하고 있을 정도다. 우리나라는 헌법 11조 1항에서 평등의 원칙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지구상 모든 현대 국가의 근간이자 대한민국 헌법에서조차 명확히 규정되어 있는 평등권을 그동안 철저히 무시해 왔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정치 사회 경제의 모든 면이 국토의 특정 지역에 집중되어 있고, 이러한 지역 불균형은 대한민국 미래에 재를 뿌려 왔다.

대한민국 지역 불균형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어서, 문재인 정부도 이의 해결을 핵심 대선 공약으로 제시했었다. 굳이 대선 공약과 대한민국 헌법이 아니더라도, 정부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지역 불균형 문제는 어떻게든 반드시 해결해야 할 국가 절대 당면 과제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지역 균형 발전의 당위성에 대해 온 국민들에게 구구절절하게 공약으로 제시하면서 표를 호소했던 문재인 정부는 출범 3주년이나 지난 현 시점까지 지역 불균형 문제 해결을 위한 어떠한 해결책도 내놓지 않고, 논의조차도 하지 않고 있다. 아니 오히려 지역 불균형을 더 악화시키는 방향으로 정부 정책을 펴고 있다. 정권 초기에는 중소기업 기술개발 지원사업에서 호남권 기업들을 철저하게 배제시키더니, 최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1조 원 규모의 대형 국책 사업인 ’차세대 다목적 방사광가속기 구축 사업’을 청주에 줘 버렸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행정 행위를 할 때 반드시 준수해야 하는 법령인 ‘국가 연구개발 사업의 관리 등에 관한 규정’ 제7조 제4항은 연구개발 소외지역을 정부가 우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동안 정부는 충청권과 수도권에 모든 국가 시설을 몰아줬다. 심지어 중소기업 기술개발 지원 사업조차 수도권과 충청권에만 집중되다 보니, ‘국가 연구개발 사업의 관리 등에 관한 규정’ 제7조 제4항과 같은 법 조항이 신설된 것이다. 하지만 이 법 조항조차 지난 정부에서 신설된 것이다. 지난 정부에서는 수도권과 충청권에만 국가 시설을 몰아준 것에 대한 최소한의 문제의식이라도 있었기 때문에 이 법 조항이 신설되었을 것이다.

대선 및 총선과 같은 선거 공약은 웃자고 하는 농담이 아니라, 국민에 대한 엄중한 약속이다. 민주당은 지난 총선에서 ‘차세대 다목적 방사광가속기 구축 사업’ 나주 유치를 당 대표가 공약까지 했었다. 그런데 총선이 끝나자마자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문재인 정부는 자신의 공약과는 정반대로 ‘차세대 다목적 방사광가속기 구축 사업’을 청주로 결정함으로써 국가 불균형을 해결하기는커녕 더욱 심화시켰다. 이러한 문재인 정부의 행위는 자신의 대선 및 총선 공약과는 정확하게 반대되는 행위로, 국민을 우롱하는 비도덕적인 행태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차세대 다목적 방사광가속기 구축 사업’ 선정 과정에서 헌법이 규정한 평등권과 ‘국가 연구개발 사업의 관리 등에 관한 규정’ 제7조 제4항을 정면으로 위반하였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이 사업이 청주에 유치되도록 하기 위해, 수도권 접근성이라는 평가 지표를 만들었다. 이처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위법하게 ‘차세대 다목적 방사광가속기 구축 사업‘ 대상지를 선정하였으므로, 이 사업 평가 결과는 당연히 원천 무효가 된다. 따라서 처음부터 평가를 다시 하는 것이 마땅한 이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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