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기억
2020년 05월 15일(금) 00:00 가가
오월이 되면 광주에는 이팝나무가 지천으로 얼굴을 밝힌다. 가장 슬픈 날을 가장 화려하게 장식하려는 듯 초록 나뭇잎 사이로 흰쌀밥 같은 이팝나무 꽃이 흐드러진다. 망월동 국립 5·18 민주묘지로 향하는 민주로 길가에 늘어선 이팝나무 꽃잎들은 80년 오월 당시, 민주화를 외치며 절규하던 광주 시민들의 함성으로 피어나는 듯하다. 올해로 민주와 인권, 정의의 횃불을 높이 들었던 5·18 민주화운동이 40주년이 되었다. 5·18이 청년기를 거쳐 이제 더욱 성숙한 장년기에 접어든 것이다.
계엄군 진군을 앞두고 전남도청을 사수하던 윤상원 열사는 “오늘 우리는 패배할 것입니다. 그러나 내일의 역사는 우리를 승리자로 만들 것입니다”라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 열사가 내다보았듯 5·18과 5·18에 참여한 모든 이들은 역사적으로 승리자가 되었다. 1980년 이후 5·18은 한동안 ‘광주 사태’로 불리어졌지만 마침내 5·18 민주화운동이라는 합당한 이름을 찾았다. 1997년 대법원에서는 전두환을 비롯한 진압군 수뇌부를 반란죄와 내란죄로 단죄하였다. 2002년에는 5·18 민주화 유공자 예우법이 제정되었고, 국립 5·18 민주묘지가 조성되었다.
80년 5월 광주는 대한민국의 역사를 새로 썼다. 광주에서 타오른 자유와 정의, 민주화의 불꽃은 꺼지지 않는 횃불이 되었고, 87년 6월 항쟁으로, 마침내 2017년 촛불혁명으로 다시 불타올랐다. 이제 5월 광주는 대한민국을 너머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를 염원하는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영감과 희망의 원천으로 자리잡았다.
그렇지만 40년이 지난 아직도 5·18의 진실은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이 죽었는데도 책임자는 없다. 사회 일각에서는 5·18을 부정하고 5·18 유공자와 유가족, 그리고 국민들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이들은 개인정보보호법상 공개할 수 없는 유공자 명단을 공개하라고 억지를 쓴다. 심지어 5·18 유공자 특혜 때문에 공무원 시험 합격이 불가능하다는 가짜 뉴스도 퍼뜨린다. 이들은 ‘2018년도 국가직 공무원 7급과 9급 합격자 5826명 가운데 5·18 민주유공자는 0.1%인 9명’이라는 사실을 제시해도 외면한다. 평화와 인권 그리고 민주주의의 표상이 된 5·18의 역사를 부정한다.
윤상원 열사에게 역사의 신비를 꿰뚫어 보는 남다른 능력이 있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역사는 스스로 기억하거나 판단하는 행위 주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선택의 순간을 피하지 않고 온몸을 실은 결정을 내리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그러한 선택에 이름과 의미를 주는 것도 역사가 아니라 공동체 내의 지난한 싸움을 수반한 의사 결정 과정이다. 5·18 민주화운동은 수많은 시민들의 뒤이은 투쟁으로 수십 년이 지나서야 올바른 이름과 의미를 찾았다.
5·18에 대한 법률적, 역사적 평가는 결코 완결된 것이 아니다. 남은 진실을 규명하고, 5·18을 왜곡하고 폄훼하려는 시도에 맞서는 일은 우리의 몫이다. 윤상원 열사는 살아남은 이들에게 “우리들의 항쟁을 잊지 말고 후세에도 이어가기를 바란다”고 부탁하였다. 열사는 역사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믿었고, 이에 헌신하는 사람들을 믿었다. 이들이 더 나은 민주주의, 더 큰 대한민국을 건설해 나가리라 기대하였다. 그럼으로써 5·18을 온몸으로 겪고 싸웠던 이들을 승리자로 기록할 것을 소망하였다.
국가보훈처는 금년 5·18 40주년을 맞아 5·18의 자유와 민주, 나눔과 공동체 정신을 되새기는 정성스럽고 의미 있는 기념식을 준비하고 있다. 5·18 항쟁을 기억하는 자리이다. 앞서간 이들의 뜻을 이어 보다 나은 공동체를 이루어 나가겠다는 다짐을 새롭게 하여야겠다.
윤상원 열사에게 역사의 신비를 꿰뚫어 보는 남다른 능력이 있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역사는 스스로 기억하거나 판단하는 행위 주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선택의 순간을 피하지 않고 온몸을 실은 결정을 내리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그러한 선택에 이름과 의미를 주는 것도 역사가 아니라 공동체 내의 지난한 싸움을 수반한 의사 결정 과정이다. 5·18 민주화운동은 수많은 시민들의 뒤이은 투쟁으로 수십 년이 지나서야 올바른 이름과 의미를 찾았다.
5·18에 대한 법률적, 역사적 평가는 결코 완결된 것이 아니다. 남은 진실을 규명하고, 5·18을 왜곡하고 폄훼하려는 시도에 맞서는 일은 우리의 몫이다. 윤상원 열사는 살아남은 이들에게 “우리들의 항쟁을 잊지 말고 후세에도 이어가기를 바란다”고 부탁하였다. 열사는 역사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믿었고, 이에 헌신하는 사람들을 믿었다. 이들이 더 나은 민주주의, 더 큰 대한민국을 건설해 나가리라 기대하였다. 그럼으로써 5·18을 온몸으로 겪고 싸웠던 이들을 승리자로 기록할 것을 소망하였다.
국가보훈처는 금년 5·18 40주년을 맞아 5·18의 자유와 민주, 나눔과 공동체 정신을 되새기는 정성스럽고 의미 있는 기념식을 준비하고 있다. 5·18 항쟁을 기억하는 자리이다. 앞서간 이들의 뜻을 이어 보다 나은 공동체를 이루어 나가겠다는 다짐을 새롭게 하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