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의 숨결 스민 광주 ‘백화마을’
2020년 04월 27일(월) 00:00

[장 선 미 광주백범기념관 기획실장]

광주 백범기념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별명이 ‘문지기’이다. 김구 선생이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문을 두드리며 ‘가장 낮은 역할인 문지기’를 자청한 것이 별명을 짓게 된 배경이 됐다.

6명의 문지기들에게는 포부가 있다. ‘인간 내비게이션’이라고 하는 택시 기사들이 광주 백범기념관의 위치를 모두 알게 하는 것과 지역민들이 천안에 독립기념관이 있다면 광주에는 백범기념관이 있다고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올해 개관 5주년을 맞은 광주 백범기념관을 두고, 광주에 ‘왜’ 백범기념관이 있는지 의아해 하는 분들이 많다. 김구 선생의 고향이 ‘광주’라고 말하는 분, 독립운동을 광주에서 하셨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보았다. 하지만 그것은 아니다.

광주와 김구 선생은 인연이 있다. 김구 선생은 광주를 두 번 방문했다. 1898년과 1946년이다.

김구 선생이 처음으로 광주를 방문한 때는 1898년이었다. 김구 선생은 1896년 명성황후 시해에 대한 복수로 일본인 쓰치다를 처단하였고, 이로 인해 인천 감옥에 투옥되어 사형 선고를 받았다. 1898년 3월 탈옥하여 정처 없는 도망자의 길을 떠났는데, 이때 잠행했던 곳이 전라도였다. 특히 보성 쇠실마을에서는 40여 일을 은신하였다. 현재 보성 쇠실마을에는 1898년에 김구 선생이 은거하셨던 ‘김광언 집’이 보존되어 있고, 그 옆으로 ‘백범 김구 은거기념관’이 아담하게 자리잡고 있다.

1898년 잠행 중에 광주를 들렀다. 백범일지에 ‘광주 역말이란 동네에 들어가니 시골 동네에 몇 백 호인지를 모르나 동장이 7명이나 일을 본다 하는데… 광주·나주·순천·대명 도처에는 대나무 숲이 있는데…’라고 기록되어 있다. 아쉬운 점은 1898년 광주 방문 때의 구체적이고 어떤 특별한 일화가 없다는 것이다.

김구 선생은 1946년 두 번째로 광주를 방문하였고 ‘백화마을’을 출현시켰다. 광주 대성초등학교에서 열린 환영 강연회에서 당시 서민호(독립운동가) 광주시장이 귀국 동포 전재민(전쟁으로 재난을 입은 사람)들의 어려운 처지를 말했다. 김구 선생은 여러 곳에서 받은 선물·해산물·육산물·금품 등을 모두 전재민을 위해 사용해 달라고 기증하였다. 서민호 광주시장은 이 선물들을 받아 바자를 열었고 지역 유지들이 그 선물들을 사면서 낸 돈으로 전재민들의 거처인 ‘마을’이 조성됐다. 김구 선생이 ‘백 가구가 화목하게 살아라’는 의미로 ‘백화마을’이라고 이름을 지어주셨다고 한다.

가구당 면적은 4~4.5평으로 아주 좁았다. 방 한 칸, 부엌 한 칸이 딸린 집이었고, 화장실은 공동으로 사용했다.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옆집에서 소곤대는 귀엣말까지 다 들릴 정도였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한 지붕 아래 여러 가구가 마치 마구간처럼 나란히 이어졌다고 ‘말집’이라 불렀다.

지금으로 보면 백화마을은 아주 남루한 집이다. 하지만 광주천 다리를 지붕 삼아 살고 있던 전재민들에게 이 집은 따뜻한 보금자리 그 이상이 아니었을까?

2011년 환경 정비 사업으로 아파트가 세워지면서 백화마을의 옛 모습은 사라졌다. 대신 옛 백화마을 자리에 2011년 학동 역사공원이 조성되고, 2015년 10월 25일 광주 백범기념관이 문을 열면서, 평생을 독립운동에 바쳤고 자신이 입은 외투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주었던 김구 선생의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분야를 넘나드는 잡학 박사들이 국내를 여행하면서 다양한 관점의 이야기를 펼친 방송 프로그램이 있었다. 어느 날은 통영과 이순신 장군을 소재로 다뤘는데, 1592년 임진왜란 당시 한산대첩을 성공으로 이끈 이순신 장군의 숨결을 지금도 과학적으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이 한 번에 쉬는 공기의 양과 1년에 숨을 쉬는 횟수 등을 토대로 과학적으로 접근한 어느 물리학자의 답변이었는데 참 놀라웠다. 428년 전 이순신 장군의 숨결이 살아 있다면, 김구 선생은 1946년에 광주를 방문하셨으니 고작 74년 전이다.

광주 백범기념관에 오면 74년 전 광주를 방문한 김구 선생의 숨결을 만날 수 있다.
오피니언더보기

기사 목록

광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