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 수선공
2020년 04월 24일(금) 00:00
광주 사람들이 쓰는 말 가운데 ‘시내’(市內)라는 단어가 있다. 중장년층은 주로 충장로·금남로 일대를 일컬을 때 사용하며 20~30대는 여기에 구시청 사거리 일대까지를 포함한다. 시내의 사전적 의미는 ‘도시의 안’이다.

광주가 광역시가 되기 전에는 충장로 일대가 유일한 도심이었다. 하지만 인구가 늘고 권역이 커지면서 광주는 충장로권을 중심으로 한 ‘구도심’과 상무·첨단·수완 지구 등의 ‘신도심’으로 나뉘었다. 그럼에도 충장로 권역은 광주 근현대 역사·문화의 현장이라는 점에서 여전히 ‘시내’에 속한다.

도시는 세월에 따라 변하지만 구도심에든 신도심에든 같은 모습으로 존재하는 공간이 있다. 빌딩 끝자락이나 도로변 보도 한편을 차지한 두어 평 남짓의 가건물인 ‘구둣방’이 그런 곳이다. 이곳엔 20~30년 전만 해도 두세 명의 구두 수선공이 있었다. 이들은 구두를 닦고 수선하는 나름 전문직에 속했다.

구두 수선공 일화로는 미국 대통령 링컨과 소련 공산당 서기장 스탈린이 유명하다. 이들은 구두 수선공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링컨은 아버지를 가장 존경했으며, 스탈린은 아버지로부터 학대당하며 컸다는 차이가 있다. 성장 과정 탓인지 링컨은 미국인이 존경하는 대통령이 되었다. 이에 비해 스탈린은 숙청이란 미명하에 2천만 명의 소련인들을 죽인 ‘희대의 학살자’로 평가된다.

링컨이 대통령에 선출된 뒤 상원에서 취임 연설을 하려 할 때 한 의원이 자기 신발을 내려다보며 말한다. “당신 아버지가 신발 제조공이었다는 사실을 명심하시오. 이 신발도 당신 아버지가 만든 것이오.” 이 같은 공개적인 조롱에 링컨이 응수한다. “아버지는 많은 귀족의 신발을 만들었습니다. 만약 신발이 불편하면 얘기하세요. 아버지 기술을 보고 배웠기에 손봐 드릴 수 있습니다. 나는 위대했던 아버지의 아들입니다.”

장성 출신으로 서울에서 30년 동안 구두 수선공으로 일해 번 돈 12억 원을 전남대에 기부한 80대 할아버지의 얘기가 최근 화제가 됐다. 할아버지의 숭고한 뜻이 우리에게 진한 감동을 안겨 준다. 거액의 기부에 두말하지 않고 찬성해 준 그 가족들도 참으로 존경스럽다.

/채희종 사회부장 chae@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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