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수(下水), 기회의 블루오션
2020년 04월 22일(수) 00:00

[김재식 광주시 하수관리과장]

저개발 국가에서 식수를 찾는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물 자체가 부족한 이유도 있겠지만, 그보다 대변이나 소변 등 각종 오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부분이 더 큰 원인일 것이다.

사실 누구나 깨끗한 물을 사용하고 쾌적한 환경 속에서 생활하고 싶어 한다. 깨끗한 물을 얻으려는 노력은 현재뿐만 아니라 이미 고대에도 있었다.

기원전 2000년 고대 산스크리트 문헌에 물을 끓이고 거르면 불순물이 제거된다는 기록이 있으며, 기원전 500년 무렵 그리스 외과의사 히포크라테스는 침전물을 천으로 걸러낸 물을 치료용으로 사용했다. 그 천의 이름을 ‘히포크라테스의 소매’라고 하였고, 이것은 최초의 정수 필터로 현재의 정수기의 필터의 원리와 동일하다.

프랑스의 소설가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 주인공 장발장의 절박한 도주로는 바로 파리의 ‘하수도’였다.

18세기 유럽은 산업 혁명의 태동으로 최고 번영을 누렸지만, 수인성 질병인 콜레라 확산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다. 콜레라는 당시 위생 관념이 거의 없었던 유럽에 물과 위생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는 기회가 됐고, 이를 계기로 하수 관리를 위해 근대식 하수도 시스템이 구축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역시 울산시 울주군 교동리 456호 유적에서 배수 시설이 발견돼 청동기 시대부터 하수 시설이 있었음이 확인됐고, 1918년∼1940년 사이 225㎞의 근대적 하수도가 형성됐다.

이후 급속한 도시화로 하수와 분뇨 등 오염 문제가 대두하면서 1966년 하수도법이 제정됐다. 현대적 의미의 하수도는 1976년 국내 최초의 하수 처리 시설인 청계천 하수처리장(현재의 중랑 물재생센터) 준공으로 시작됐으며, 불과 50년 남짓 경과한 현재 전국 3900여 개소의 하수처리장이 운영되고 있다. 하수도 보급률 또한 선진국 수준으로 발전했다.

원래 하수도란 하수와 분뇨를 유출하거나 처리하기 위해 설치하는 하수 관로·하수 처리 시설 등 관련 시설의 총체를 말한다. 하수 처리는 자연으로부터 얻은 물을 사용하고 난 후 다시 자연에 되돌려주는 과정으로 인류가 쾌적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환경을 지키는 핵심이다. 이처럼 하수도는 동서양과 시대를 불문하고 인류가 쾌적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문화생활에서의 가장 기본적인 근간을 이루는 인프라로 인식되고 있다.

그리고 단순히 하수를 처리하는 1차원적인 환경 기초 시설에서 한발 더 나아가 부가 가치를 창출하기도 한다. 하수 처리장 이중 복개나 지하 설치 등 선진 기법 적용과 주민 친화적 시공으로 악취 발생이나 미관 저해 등의 문제를 해결하고 있으며, 상부에는 생태 공원이나 체육 시설 등을 조성해 인근 주민의 여가 활용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계획 단계부터 시공까지 주민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 ‘체육 공원’ 등의 맞춤형 편의 시설을 제공하면서 명칭도 기존의 하수처리장에서 ‘수질 복원 센터’로 바뀔 만큼 주민 친화 시설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또한 하수 처리 시 발생되는 메탄은 화석 연료 대체 에너지원으로, 소수력 발전 에너지원으로 사용되어지는가 하면, 하수에서 발생하는 바이오 가스는 열병합 발전에 이용하거나 도시가스용으로 공급하기도 한다.

하수 처리장 방류수 역시 현재까지 이용이 보편화되지는 않았으나, 도시 하천의 유지 용수나 위락 용수, 농업·공업 용수 그리고 일반 잡용수 등 다양한 용도로 공급 가능하고 직접 재이용도 가능한 중요한 잠재적 수자원이다.

이를 방증하듯 세계적으로 하수 처리수 재이용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재이용률 또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사실 그동안 하수도 시설은 ‘더러운 물을 모아 처리하기 위한 목적’으로만 설치됐으며, 주된 기능 역시 도시 위생과 침수 방지였다.

이제는 하수가 단순히 버려지는 물이 아닌 광범위하고 잠재 가치가 있는 기회의 블루 오션임을 인식하고, 다양한 활용 방안 모색과 수요 개척으로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물,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물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더 이상 하수는 더러운 물이 아닌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마르지 않는 자원이며, 하수 처리 시설 또한 여가 공간이라는 인식의 확산이 필요한 시점이다.

특히 철저한 선진 하수 관리는 미래 세대가 좋은 물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는 ‘우리의 미래를 위한 물’(Water for our future)을 만들기 위한 기회의 블루 오션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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