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치 혀
2020년 04월 16일(목) 00:00
“기자들은 왜 그렇게 술을 잘 마십니까?” 공무원이나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를 하다 보면 자주 듣는 질문이다. 예외는 있겠으나 과거 많은 기자들은 필요에 따라 정보를 얻어야 할 상대방과 과음을 하곤 했다. 취한 상대방의 빈틈을 노려 시의적절한 물음으로 필요한 정보를 얻어 내는 것이 기자의 능력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운좋게 술자리에서 중요한 정보라도 얻게 되면, 이를 기억하기 위해화장실 같은 곳에서 수첩에 적기도 했었다.

지난 2003년 개봉한 박찬욱 감독의 영화 ‘올드보이’는 파격적인 내용과 영상으로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아 있다. 15년간 영문도 모르고 갇혀 지낸 오대수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부인 살해범이 되고, 최면에 걸려 근친상간도 저지른다. 나중에 자신이 고교 시절, 무심코 친구에게 던진 말로 인해 친누나가 자살하는 등 굴곡을 겪은 이우진의 복수임을 알게 되자 스스로 자신의 혀를 가위로 자르며 속죄하는 장면은 압권이었다.

염라대왕은 저승에서 죽은 이의 생전 행동을 심판해 상벌을 주는 지옥의 왕이다. 인도 신화나 불교·도교 등이 묘하게 섞이면서 재판관인 열 명의 왕 중 다섯 번째 왕으로 자리 잡았다. 업경대(業鏡臺)를 통해 죄상을 파악한 대왕은 죄인의 혀를 집게로 뽑는 발설(拔舌)의 형벌을 내리기도 했다. 인간이 저지른 대부분의 죄가 세 치 혀에서 나온다는 것을 암시한 것이다.

요즘은 대중을 상대로 언제든지 자신의 의견이나 주장을 전할 수 있는 SNS까지 있어 시도 때도 없이 설화(舌禍)가 반복되고 있다. 정치인이나 방송인 등은 물론 일반인까지도 곧바로 그 잘못이 드러나는 말을 너무 쉽게 내뱉고 있는 것이다. 그로 인해 생기는 불필요한 논란은 갈등과 마찰, 스트레스 등으로 이어진다. 이번 4·15 총선에서도 공약은 간데없이 ‘거친 말’들이 오갔고, 표심에 영향을 미쳤다. 오프라인에서든 온라인에서든, 실천 없는 허황된 말이나 겉만 번지르르한 그럴듯한 말들을 퇴출시킬 수 있는 묘안은 없는 것일까. 늘 말만 앞서는 ‘말쟁이’들은 이제 그만 보고 싶다.

/윤현석 정치부 부장 chadol@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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