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웰의 코 존 서덜랜드 지음, 차은정 옮김
2020년 03월 27일(금) 00:00
‘눈은 속일 수 있어도 코는 속이지 못한다’. 시대와 사회를 냄새라는 키워드로 기록한 이색적인 책이 출간됐다. 영국의 평론가이자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의 영문과 명예교수인 존 서덜랜드가 펴낸 ‘오웰의 코’가 그것.

저자는 자신의 코 세포막이 시들던 시기에 조지 오웰의 작품을 다시 천착한다. 문학이 주는 위안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그는 오웰의 많은 글에서 생생한 냄새가 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문학비평을 통해 한 사람의 생을 맡았고 그 결과물을 책으로 엮었다. ‘뉴요커’는 “탁월하고도 편집정적인 전기 작가 존 서덜랜드는 오웰을 새로 읽어 냈다. 그리고 냄새에 대한 오웰의 천부적인 감각을 알아차렸다. 최근 자신의 후각을 잃은 존 서덜랜드는 오웰 삶의 코를 찌르는 랜드마크들을 이 책에서 하나하나 밝혀 준다”고 평한다.

지난 2012년 후각 상실 후, 냄새를 맡을 수 없는 스트레스로 고생하던 저자에게 조지 오웰은 제인 오스틴이나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다른 ‘실감’으로 다가왔다. ‘맨스필드 파크’와 ‘노인과 바다’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1984’는 냄새나는 작품이었다. ‘1984’는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가 4월 추위를 피해 빅토리 맨션의 유리문을 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건물로 들어서자 그를 반기는 것은 “삶은 양배추와 오래된 누더기 발판 냄새”였다. 원기를 회복하려고 한 잔 따른 빅토리 진은 “중국 쌀 증류주같이 역겹고 느글거리는 냄새”를 풍긴다.

이처럼 저자는 오웰의 소설을 읽는 수많은 방법 가운데 ‘냄새 서술 비평’이라는 이색적인 방식을 택한다. 그는 오웰의 문학과 산문 곳곳에서 버마의 티크, 영국 목초지, 다양한 빈곤 냄새, 타자기와 덜 마른 잉크 냄새를 찾아내 알려준다. <민음사·2만2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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