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과 구로지일(구勞之日)
2020년 03월 10일(화) 00:00 가가
‘생일’이란 낱말은 어린이가 더 잘 안다. ‘생일 축하’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들어서다. 그러나 ‘구로지일’(구勞之日)이나 ‘구로일’(구勞日)이란 말을 생소하다 느끼는 사람은 꽤 있을 것 같다.
한자 ‘구(구)’는 ‘수고한다, 애쓴다’는 의미를 담은 글자다. ‘구로지일’은 “자식을 낳아서 기르느라 부모가 애쓰기 시작한 날”이라는 뜻이니 결국 자기의 생일을 말한다.
‘구로’는 ‘시경’의 개풍(凱風)과 육아(蓼莪, 谷風편2), 북산(北山) 등의 시에 나와 있다.
국민대 하정옥 교수의 해설에 의하면 ‘시경’의 작품들은 약 2500년에서 3000년 전 주나라 시대의 글로 보인다. 어떤 작품은 그 이전의 것도 있다 하였으니 ‘구로일’이란 말은 한자가 우리나라에 전해지기 전부터 써 왔던 것 같다.
사전에서는 낳아 주신 어머니의 은덕을 구로지은(구勞之恩)이라 하고, 그 은덕을 생각하는 마음을 구로지감(구勞之感)이라 한다. 자식이 생을 얻게 된 것은 자기의 어떤 능력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어머님의 구로지덕인 것이다.
내 ‘구로일’은 음력 12월 19일이다. 새해로 바뀌기 불과 10여 일 전이다. 지난해에는 하필 서울에서 수필작가회 행사가 있는 날이라 여느 때보다 일찍 일어났다. 거실로 나오자 “생일 축하합니다”라며 아내가 손을 잡아 준다. “삼백예순 다섯 날 중, 딱 한 번 있는 날”이라고. 설마 하니 두 번 있는 날도 있을까만 묘한 감동에 코끝이 시큰했다. 티격태격하기 50년이 넘은 세월인데 언제 그런 일도 있었느냐는 듯 가슴에서는 철없는 꽃이 피었다.
촛불을 밝혀 놓은 식탁, 김나는 미역국 곁에는 “생일 축하합니다. 올해 건강 티켓입니다”라고 적힌 하얀 봉투가 놓여있다. 안에는 사임당의 얼굴 사진이 찍힌 지폐 몇 장이 들어 있었을 거고.
서울행 7시 버스가 마음에 걸렸지만 나는 선뜻 수저를 들지 못했다. 생일 축하라는 아내의 말과 티켓의 메시지에 감동해서가 아니다. 봉투 속에 들어있을 지폐 몇 장에 감격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눈앞을 스치고 간 희미한 안개 때문이었다.
아내의 정도 정이지만 해마다 이날이면 어머님 생각에 늘 목이 메곤 한다. 엄마라 불러본 기억도 없고 얼굴은 몰라도 나를 세상으로 불러내 주신 분이 아니던가. 생일 없는 사람도 있는데 생일을 가졌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다.
약 30년 전 어머님의 유택을 옮기려던 날이다. 흙 속에서 찾아낸 뼈를 일일이 수건으로 닦아내시던 큰집 형님이 “아직도 아기의 뼈가 남아 있네” 속말처럼 하시던 말씀을 얼핏 듣고서 나는 너무 놀랐다. 어린 잔뼈만 따로 골라 하얀 백지 위에 놓을 때서야 어머님이 돌아가신 이유를 짐작했다.
누구에게 물은 바 없었던 어머니의 마지막이 ‘아아! 그래서였던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숲 속으로 들어가 섧게 울었던 때가 엊그제 일처럼 생생하다. 의료 시설도 없고 교통수단도 열악했던 시절, 당시 시골에서 자식을 낳는다는 것은 죽음이 담보였다.
누구의 어머니도 이런 죽을 지도 모르는 신고(辛苦)를 몇 번이고 겪으셨을 것이다. 다섯 자식의 어머니는 다섯 번을, 열 자식을 낳으신 어머님은 저승의 문고리를 열 번이나 붙들고 빌었으리라.
그렇게 자식을 낳아주신 어머님의 구로는 계산으로 따질 수 없다. 진부한 말로 하늘보다 높은 은혜다. 갚고 갚아도 죽을 때까지 빚일 터에 오히려 자녀들의 생일, 손자들의 생일이라고 구겨진 주머닛돈마저 털어 내는 우리의 어머니들! 삶은 갈수록 좋아져 가는데 어쩌다가 축하의 앞과 뒤가 바뀌었는지!
나는 효라는 글자의 뜻을 한 번도 실천으로 옮겨보지 못하고 오늘에 이른 불효자다. 모든 사랑은 어머니에게서 시작하여 어머니에게서 끝난다는데 그 모정의 색깔이 어떤 것인지 모르고 살아온 죄다.
내게 생일을 주신 어머님! 흰 구름 제 맘대로 오가는 청산마루, 어머님의 유택을 찾아가 차가운 혼유석(魂遊石) 위에 소주 한 잔 올리는 것이 효가 될까? 그것도 종이 잔에.
소소백발(昭昭白髮)이 싫다고 검은 머리 위장에나 열심인 그런 나를, 아내는 해마다 생일 축하라는 말로 부끄러움을 준다.
세상살이는 일취지몽(一炊之夢), 부귀영화가 덧없는 것. ‘구로지일’이면 더욱 어머님 생각에 꿈만 서럽다.
한자 ‘구(구)’는 ‘수고한다, 애쓴다’는 의미를 담은 글자다. ‘구로지일’은 “자식을 낳아서 기르느라 부모가 애쓰기 시작한 날”이라는 뜻이니 결국 자기의 생일을 말한다.
국민대 하정옥 교수의 해설에 의하면 ‘시경’의 작품들은 약 2500년에서 3000년 전 주나라 시대의 글로 보인다. 어떤 작품은 그 이전의 것도 있다 하였으니 ‘구로일’이란 말은 한자가 우리나라에 전해지기 전부터 써 왔던 것 같다.
내 ‘구로일’은 음력 12월 19일이다. 새해로 바뀌기 불과 10여 일 전이다. 지난해에는 하필 서울에서 수필작가회 행사가 있는 날이라 여느 때보다 일찍 일어났다. 거실로 나오자 “생일 축하합니다”라며 아내가 손을 잡아 준다. “삼백예순 다섯 날 중, 딱 한 번 있는 날”이라고. 설마 하니 두 번 있는 날도 있을까만 묘한 감동에 코끝이 시큰했다. 티격태격하기 50년이 넘은 세월인데 언제 그런 일도 있었느냐는 듯 가슴에서는 철없는 꽃이 피었다.
서울행 7시 버스가 마음에 걸렸지만 나는 선뜻 수저를 들지 못했다. 생일 축하라는 아내의 말과 티켓의 메시지에 감동해서가 아니다. 봉투 속에 들어있을 지폐 몇 장에 감격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눈앞을 스치고 간 희미한 안개 때문이었다.
아내의 정도 정이지만 해마다 이날이면 어머님 생각에 늘 목이 메곤 한다. 엄마라 불러본 기억도 없고 얼굴은 몰라도 나를 세상으로 불러내 주신 분이 아니던가. 생일 없는 사람도 있는데 생일을 가졌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다.
약 30년 전 어머님의 유택을 옮기려던 날이다. 흙 속에서 찾아낸 뼈를 일일이 수건으로 닦아내시던 큰집 형님이 “아직도 아기의 뼈가 남아 있네” 속말처럼 하시던 말씀을 얼핏 듣고서 나는 너무 놀랐다. 어린 잔뼈만 따로 골라 하얀 백지 위에 놓을 때서야 어머님이 돌아가신 이유를 짐작했다.
누구에게 물은 바 없었던 어머니의 마지막이 ‘아아! 그래서였던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숲 속으로 들어가 섧게 울었던 때가 엊그제 일처럼 생생하다. 의료 시설도 없고 교통수단도 열악했던 시절, 당시 시골에서 자식을 낳는다는 것은 죽음이 담보였다.
누구의 어머니도 이런 죽을 지도 모르는 신고(辛苦)를 몇 번이고 겪으셨을 것이다. 다섯 자식의 어머니는 다섯 번을, 열 자식을 낳으신 어머님은 저승의 문고리를 열 번이나 붙들고 빌었으리라.
그렇게 자식을 낳아주신 어머님의 구로는 계산으로 따질 수 없다. 진부한 말로 하늘보다 높은 은혜다. 갚고 갚아도 죽을 때까지 빚일 터에 오히려 자녀들의 생일, 손자들의 생일이라고 구겨진 주머닛돈마저 털어 내는 우리의 어머니들! 삶은 갈수록 좋아져 가는데 어쩌다가 축하의 앞과 뒤가 바뀌었는지!
나는 효라는 글자의 뜻을 한 번도 실천으로 옮겨보지 못하고 오늘에 이른 불효자다. 모든 사랑은 어머니에게서 시작하여 어머니에게서 끝난다는데 그 모정의 색깔이 어떤 것인지 모르고 살아온 죄다.
내게 생일을 주신 어머님! 흰 구름 제 맘대로 오가는 청산마루, 어머님의 유택을 찾아가 차가운 혼유석(魂遊石) 위에 소주 한 잔 올리는 것이 효가 될까? 그것도 종이 잔에.
소소백발(昭昭白髮)이 싫다고 검은 머리 위장에나 열심인 그런 나를, 아내는 해마다 생일 축하라는 말로 부끄러움을 준다.
세상살이는 일취지몽(一炊之夢), 부귀영화가 덧없는 것. ‘구로지일’이면 더욱 어머님 생각에 꿈만 서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