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살의 5·18, 이제 세계와 연대하자
2020년 03월 10일(화) 00:00 가가
40년 전 광주의 비극은 고립에서 비롯됐다. 신군부의 무지막지한 폭력에 의해서 광주시민들이 유린당하고 있을 때, 이 비극적인 사실을 제대로 알고 있었던 국민들은 거의 없었다. 광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지 못했으니 사람들은 광주와 함께 할 수 없었고, 광주시민들이 보여준 숭고한 시민불복종 운동은 공산주의자들과 현실불만 세력이 자행한 폭동으로 치부될 수밖에 없었다. 광주의 비극은 고립에서 망각으로 이어졌고, 왜곡과 폄훼 그리고 조롱과 낙인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40년 전 광주는 반드시 외롭지는 않았다. 최소한 국제적으로는 그랬다. 필자는 2년 전에 5·18 관련 해외기록물을 발굴하기 위해서 미국 UCLA 대학 도서관에서 연구를 한 적이 있었다. 도서관에 엄청나게 많은 5·18 관련 기록물을 있었는데, 이 자료들을 검색하고 분석하다가 깜짝 놀랐다. 우리나라 그 어느 곳에서도 광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제대로 모르고 있을 때, 미국과 일본, 유럽 등지에서는 거의 실시간으로 광주의 소식이 정확하게 전파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해외의 인권단체들과 활동가들이 광주의 소식을 전해듣고 한국 대사관으로 몰려가서 항의시위를 하고, 워싱턴의 백악관 앞에서 호소문을 돌리고, 교회에서 기도회를 열고, 모금을 하고, 한국과 광주에 연대와 위로의 편지를 보내는 다양한 연대 활동을 전개했다는 사실이다.
1980년 5월 20일, 미국 시카고의 인권단체는 광주 소식을 담은 유인물을 배포하고 시가행진을 하였고, 광주항쟁 기간 동안에 뉴욕, 로스앤젤레스 등 미국 주요도시를 비롯하여 일본과 독일 등지에서 비슷한 유형의 활동이 연일 열리고 있었다.
광주가 무력에 의해 진압된 다음 날인 1980년 5월 28일에는 뉴욕 시에서 가장 유명한 교회인 맨해튼의 리버사이드 교회에서는 광주 시민을 추모하는 특별 예배가 열렸으며, 이 예배에는 미국 내의 유명한 인권운동가들과 유력 정치인들이 대거 참석하여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5·18 직후에는 미국, 유럽, 일본의 인권단체들이 광주를 방문해서 진상조사를 벌이고 미국 정부와 유엔 등에 신군부의 인권유린 행위를 적극적으로 고발하기도 했다.
말하자면 40년 전 광주는 국내적으로는 고립되었으나, 국제적으로 결코 외롭지는 않았던 것이다. 국제적으로 전개된 연대활동을 통해서 5·18은 전국화되기 전에 이미 지구화됐다. 5·18의 이러한 지구화는 나중에 한국의 민주화와 인권 신장을 요구하는 국제적 압력으로 발전했으며, 결과적으로 전두환 정권은 1987년 6월 항쟁에서 국제사회의 감시를 의식하여 군대 동원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40살이 된 5·18민주화운동은 당시에 국제사회가 광주에 보내준 연대와 후원에 보답할 때가 되었다. 40년 전 광주가 겪었던 비극적인 국가폭력 사태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이 지구촌 곳곳에서 자행되고 있다. 시리아 내전에서, 미얀마 로힝야 난민 사태에서, 스리랑카의 종교분쟁에서, 홍콩의 민주화 시위에서, 중남미와 아프리카에서 오늘도 폭력적인 국가세력과 테러 조직들에 의해서 수많은 민간인들이 학살당하고, 실종되고, 납치당하고, 성폭력을 당하고, 불법적으로 체포되고 추방당하고 있다. 40살의 5·18은 이제 이들과 연대하고 그들의 고통에 동참해야 한다.
사실 광주는 이제까지 그렇게 해왔다. 5·18기념 기간 중 매년 광주에서 열리는 “광주 아시아 포럼”은 아시아 지역의 인권운동가들이 자신들의 경험을 공유하고 연대하면서 공동의 미래를모색하는 국제 인권네트워크의 허브로 발전하였다. 광주가 매년 수여하는 광주인권상은 아시아 인권운동과 정치발전을 자극하는 매우 중요한 행사가 됐다. 광주의 5·18단체가 최근에 홍콩 민주화 시위에 보낸 메시지는 40년 전 해외의 인권단체가 광주에 보냈던 연대의 정신을 반추케 해서 감동적이었다.
이제 40살의 5·18은 이러한 국제연대 활동을 단순한 의례가 아닌 새시대를 맞이하는 5·18 정신으로 정착시켜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5·18민주화운동이 보여준 경이로운 공동체적 협력과 대동정신은 지구촌 곳곳에서 국가폭력에 의해서 핍박받고 있는 민중들의 삶에 보내는 연대와 후원을 통해 실현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이게 광주시민이 국제사회에 진 빚을 갚는 가장 선한 방식이다.
광주가 무력에 의해 진압된 다음 날인 1980년 5월 28일에는 뉴욕 시에서 가장 유명한 교회인 맨해튼의 리버사이드 교회에서는 광주 시민을 추모하는 특별 예배가 열렸으며, 이 예배에는 미국 내의 유명한 인권운동가들과 유력 정치인들이 대거 참석하여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5·18 직후에는 미국, 유럽, 일본의 인권단체들이 광주를 방문해서 진상조사를 벌이고 미국 정부와 유엔 등에 신군부의 인권유린 행위를 적극적으로 고발하기도 했다.
말하자면 40년 전 광주는 국내적으로는 고립되었으나, 국제적으로 결코 외롭지는 않았던 것이다. 국제적으로 전개된 연대활동을 통해서 5·18은 전국화되기 전에 이미 지구화됐다. 5·18의 이러한 지구화는 나중에 한국의 민주화와 인권 신장을 요구하는 국제적 압력으로 발전했으며, 결과적으로 전두환 정권은 1987년 6월 항쟁에서 국제사회의 감시를 의식하여 군대 동원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40살이 된 5·18민주화운동은 당시에 국제사회가 광주에 보내준 연대와 후원에 보답할 때가 되었다. 40년 전 광주가 겪었던 비극적인 국가폭력 사태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이 지구촌 곳곳에서 자행되고 있다. 시리아 내전에서, 미얀마 로힝야 난민 사태에서, 스리랑카의 종교분쟁에서, 홍콩의 민주화 시위에서, 중남미와 아프리카에서 오늘도 폭력적인 국가세력과 테러 조직들에 의해서 수많은 민간인들이 학살당하고, 실종되고, 납치당하고, 성폭력을 당하고, 불법적으로 체포되고 추방당하고 있다. 40살의 5·18은 이제 이들과 연대하고 그들의 고통에 동참해야 한다.
사실 광주는 이제까지 그렇게 해왔다. 5·18기념 기간 중 매년 광주에서 열리는 “광주 아시아 포럼”은 아시아 지역의 인권운동가들이 자신들의 경험을 공유하고 연대하면서 공동의 미래를모색하는 국제 인권네트워크의 허브로 발전하였다. 광주가 매년 수여하는 광주인권상은 아시아 인권운동과 정치발전을 자극하는 매우 중요한 행사가 됐다. 광주의 5·18단체가 최근에 홍콩 민주화 시위에 보낸 메시지는 40년 전 해외의 인권단체가 광주에 보냈던 연대의 정신을 반추케 해서 감동적이었다.
이제 40살의 5·18은 이러한 국제연대 활동을 단순한 의례가 아닌 새시대를 맞이하는 5·18 정신으로 정착시켜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5·18민주화운동이 보여준 경이로운 공동체적 협력과 대동정신은 지구촌 곳곳에서 국가폭력에 의해서 핍박받고 있는 민중들의 삶에 보내는 연대와 후원을 통해 실현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이게 광주시민이 국제사회에 진 빚을 갚는 가장 선한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