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화의 갈등
2020년 03월 09일(월) 00:00 가가
지금 우리는 지구촌에 가득 찬 분열과 갈등을 피부로 느끼며 산다. 현실에 얽매여 저버린 이상, 물질 생활에 몰려 빈곤과 공허에 빠진 정신 생활, 육체의 욕망에 매여 말살될 영적 희구, 악의에 짓밟힌 선의지, 그릇된 수단으로 잃어버린 좋은 목적 등등. 이러한 갈등에서 오는 인간 상실의 비극은 자연계에도, 인간 세계에도, 영계에도 끊이지 않고 발생하며 반복되는 사건이다.
현대의 비극은 이런 사실보다는 이것을 불가피한 것으로 불가항력적으로 체념하는데 있다. 그보다 더 치명적인 비극은 그것을 당연한 것처럼 합리화하는데 있다.
갈등에서 고민하는 인간, 고통하는 세계를 똑바로 보고 참되게 살려는 사람은 바로 이 갈등이 자기 속에 있는 것을 발견하는 사람이다.
사람에게는 두 개의 ‘나’가 살고 있다. 하나는 선을 원하는 나요, 다른 하나는 악을 행하는 나다. 그러나 대부분 원하는 선을 행하지 못하고 원치 않는 악을 행한다. 이러한 아픔을 피를 토하듯 고백하는 사람이 있다. “오호라 나는 괴로운 사람이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구원하랴.” 바로 성경에 나오는 바울이다.
이 자기 분열에서 구원을 갈망하는 영혼의 부르짖음과 내적 투쟁으로 피나는 바울의 모습은 신앙인의 진실이다. 이 처절한 비참, 이 심각한 고민, 이 적나라한 인간 정신에서 우리는 신앙의 세계로 비약하는 바울 사도의 숭고한 인간상을 발견하고 그 진실에 머리를 숙인다.
가장 깊은 갈등은 내면적 갈등이며, 피나는 전쟁터는 자아 밖이 아니고 자기 안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선명한 한 폭의 그림이다. 참된 인간 해방. 인간의 구원은 육체의 소욕에서 영혼을 해방하는 것이다.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인간 세계는 끊임없이 갈등과 고통이 있다는 것이다.
이 고통은 인간의 생존에 그림자처럼 따라오는 것인데 밖에서 오는 것과 안에서 일어나는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모든 나라 고대 신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듯 영계에도 선한 영과 악령의 실재를, 선한 신과 악귀, 천사와 마귀의 존재의 대립 투쟁이 있다고 한다. 또한 자연계에도 하늘과 땅, 빛과 어둠, 불과 물, 냉과 열, 폭풍과 평온, 번개와 천둥을 일으키는 음과 양의 근본적 갈등이 있다고 보았다.
중국 사상은 음과 양으로 우주의 원리를 삼고 있다. 양은 긍정적인 원리며 음은 부정적 원리로 생과 사, 남성과 여성, 동과 정 등 이러한 우주 자체에 양성이 있고 이 양성은 인간 속에 진실과 거짓,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 거룩함과 속됨 등으로 재생되는 것으로 보았다.
우리도 남과 북, 동과 서로 갈라져 사상과 체제, 질서와 생활 전반의 갈등이 심각하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그리고 종교에 이르기까지 양극화 현상의 종점에 서 있는 것 같다.
정치 분야에서는 권력층과 국민 사이의 갈등, 여야의 극한 대립이 극심하고 경제 분야도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 현상과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와 갈등, 도시와 농촌의 지역적 격차에서 오는 갈등이 크다. 사회 분야에서는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 소수 자본 계급의 질적 비대와 대중의 양적 비대의 대립, 근대화·도시화가 가져온 신흥 계급과 서민 계급의 대립이 적지 않다.
가장 문제는 종교 문제다. 형식적 질서와 감정적 무질서, 즉 호국 종교(어용 종교)와 예언자 종교의 갈등, 보수주의와 혁신주의의 갈등. 개인 경건 주의와 사회 참여, 세속주의와의 갈등에서 비롯된 양극화 현상이다.
이런 현상은 인간 세계의 분열과 대립에서 필연적 결과로 오는 고통이고 그 갈등과 고통은 필경 인간 자체 안에 있는 이중성 때문이다.
바울처럼 인간을 바로 이해하고 인간의 연약함과 비천을 몸으로 알아야 참 된 인간 해방과 구원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신앙의 깊이는 고뇌의 깊이와 정비례한다. 인생의 길이는 갈등의 길이와 정비례한다. 사죄의 은총은 회개의 질서와 정비례한다.
깊은 실존의 심연에서 갈등 속에 고민하는 사람이 참 평화, 화해, 소통, 이해, 일치 그리고 구원의 감격을 증거할 수 있다.
갈등에서 고민하는 인간, 고통하는 세계를 똑바로 보고 참되게 살려는 사람은 바로 이 갈등이 자기 속에 있는 것을 발견하는 사람이다.
사람에게는 두 개의 ‘나’가 살고 있다. 하나는 선을 원하는 나요, 다른 하나는 악을 행하는 나다. 그러나 대부분 원하는 선을 행하지 못하고 원치 않는 악을 행한다. 이러한 아픔을 피를 토하듯 고백하는 사람이 있다. “오호라 나는 괴로운 사람이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구원하랴.” 바로 성경에 나오는 바울이다.
이 고통은 인간의 생존에 그림자처럼 따라오는 것인데 밖에서 오는 것과 안에서 일어나는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모든 나라 고대 신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듯 영계에도 선한 영과 악령의 실재를, 선한 신과 악귀, 천사와 마귀의 존재의 대립 투쟁이 있다고 한다. 또한 자연계에도 하늘과 땅, 빛과 어둠, 불과 물, 냉과 열, 폭풍과 평온, 번개와 천둥을 일으키는 음과 양의 근본적 갈등이 있다고 보았다.
중국 사상은 음과 양으로 우주의 원리를 삼고 있다. 양은 긍정적인 원리며 음은 부정적 원리로 생과 사, 남성과 여성, 동과 정 등 이러한 우주 자체에 양성이 있고 이 양성은 인간 속에 진실과 거짓,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 거룩함과 속됨 등으로 재생되는 것으로 보았다.
우리도 남과 북, 동과 서로 갈라져 사상과 체제, 질서와 생활 전반의 갈등이 심각하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그리고 종교에 이르기까지 양극화 현상의 종점에 서 있는 것 같다.
정치 분야에서는 권력층과 국민 사이의 갈등, 여야의 극한 대립이 극심하고 경제 분야도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 현상과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와 갈등, 도시와 농촌의 지역적 격차에서 오는 갈등이 크다. 사회 분야에서는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 소수 자본 계급의 질적 비대와 대중의 양적 비대의 대립, 근대화·도시화가 가져온 신흥 계급과 서민 계급의 대립이 적지 않다.
가장 문제는 종교 문제다. 형식적 질서와 감정적 무질서, 즉 호국 종교(어용 종교)와 예언자 종교의 갈등, 보수주의와 혁신주의의 갈등. 개인 경건 주의와 사회 참여, 세속주의와의 갈등에서 비롯된 양극화 현상이다.
이런 현상은 인간 세계의 분열과 대립에서 필연적 결과로 오는 고통이고 그 갈등과 고통은 필경 인간 자체 안에 있는 이중성 때문이다.
바울처럼 인간을 바로 이해하고 인간의 연약함과 비천을 몸으로 알아야 참 된 인간 해방과 구원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신앙의 깊이는 고뇌의 깊이와 정비례한다. 인생의 길이는 갈등의 길이와 정비례한다. 사죄의 은총은 회개의 질서와 정비례한다.
깊은 실존의 심연에서 갈등 속에 고민하는 사람이 참 평화, 화해, 소통, 이해, 일치 그리고 구원의 감격을 증거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