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 수난
2020년 03월 05일(목) 00:00
약소국이 감내해야 할 설움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강대국은 아량·배려보다는 아집·독식에 더 익숙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협약을 체결하면서 불평등한 내용을 강제하는 등의 행위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옹졸하고 뻔뻔한 그들의 행위에도 생존이 최우선인 약소국들은 분한 감정을 속으로 삭일 수밖에 없다.

춘추전국시대 오패, 즉 패권을 잡은 다섯 명의 군주들은 주변 국가 군주들을 불러 모아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했다. 이를 회맹(會盟)이라고 하는데, 강대국이 아니면서도 이를 모방하는 군주도 있었다. 송양공이 대표적이다. 그는 주변 약소국인 등·조·주·증 등과 회맹을 약속한 뒤, 주저하며 늦게 온 증나라 군주를 산 채로 가마솥에 삶아 죽였다.

사자성어 ‘간어제초’(間於齊楚)도 비슷한 시기에 나왔다. 전국시대 초기, 제·초의 틈바구니에서 편할 날이 없었던 등나라 군주 문공은 때마침 찾아온 맹자에게 “누구를 섬겨야 편안하겠느냐”는 우문(愚問)을 던진다. 현명한 맹자마저도 “다만 죽기를 각오하고 지키라”고 애매하게 답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 후기 실학자 박지원의 ‘열하일기’도 어찌 보면 청나라 황제의 ‘갑질’로 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건륭제의 칠순연을 맞아 축하 연행단에 참여한 박지원 등이 북경에 갔는데, 건륭제가 자신의 피서지 열하로 올 것을 갑자기 명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초인적인 힘으로 하룻밤에 아홉 번 강을 건너 열하에 간신히 도착했다는 이야기(一夜九渡河記)가 열하일기의 하이라이트다.

최근 미국의 한 언론이 매긴 강대국 순위에서 한국은 ‘무려’ 세계 9위에 올랐다. 하지만 우리는 1위 미국 2위 러시아 3위 중국 7위 일본 등이 가까이 자리한 지정학적 위치에, 북한까지 돌발변수로 작용하면서 외교에서만큼은 여전히 약소국처럼 수난을 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대북 정책, 사드 배치, 주한미군 유지 비용 등에서 코로나19에 이르기까지 난제들만 가득하다. 감정적인 대응보다 정부가 강력한 외교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내부 역량을 결집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윤현석 정치부 부장 chadol@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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