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와 흑사병의 귀환(歸還)
2020년 03월 04일(수) 00:00

김 춘 식 동신대 에너지시스템경영공학 교수

1347년 시칠리아의 메시나항에 도착한 상선의 선원들이 전염병에 걸린 상태로 배에서 내렸다.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사망했다. 후일 인류 역사를 통틀어 가장 끔찍한 질병인 흑사병이 유럽에 최초로 상륙했던 것이다. 이 전염병은 유럽 인구 3분의 1에 해당되는 3000만 명 이상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흑사병이라 불린 이 전염병은 유럽인들을 사회적 공황 상태로 내몰았다. 중세 유럽인들은 두려움을 대체할 심리적 출구로 ‘광기와 미신’을 찾았다. 흑사병의 창궐을 악마의 소행으로 여겼던 유럽인들에게 유대인들은 그들의 죄를 보속(補贖)할 가장 적절한 희생양이었다. 이전부터 중세 유럽의 기독교인들은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구세주인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했으며, 황제 숭배를 거부한 기독교인들을 황제에게 밀고했다는 이유로 깊은 증오심을 가지고 있었다. 결국 흑사병에 대한 공포와 유대인들에 대한 중세 기독교인들의 질시와 편견은 ‘마을의 샘물에 독약을 타거나, 흑사병을 퍼뜨린 유대인’이라는 혐오로 조작되었다. 그리고 인종주의로 변질되어 대략 100만 명의 유대인이 학살되고 만다. 공포로 무너진 대중 심리가 혐오와 인종주의적 학살로 확대됨으로써 실제 전염병보다 더 참혹한 결과를 가져왔던 것이다.

지난해 연말부터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서 발생한 ‘코로나19’가 급격히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현재 중국에서는 이미 3000여 명의 사망자에 확진자도 8만 명에 달한다. 우리나라도 확진자 4000명을 넘어섰고 사망자도 28명이나 발생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게다가 이탈리아를 포함한 유럽 지역으로의 확산 속도도 매우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현재 세계 68개국에서 최소한 9만 명 이상이 감염되었다.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이라면 코로나19에 대한 공포는 향후 최소한 수개월은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잘 알려져 있듯이 세계 전역에서 발견되는 인간 질병의 40% 이상은 전염병이다. 바이러스와 박테리아는 인간과 공존하며 공통된 환경을 공유하고 있는 데다 해외 여행의 증가, 과학 기술 발전의 영향, 기후 변화 등으로 인해 전염병의 예방과 통제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전염병은 더 이상 그것이 발생한 특정 국가만의 문제가 아닌 국제적인 문제이며, 오직 국제 사회의 연대를 통해서만 극복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코로나 전염병이 중국에서 발생했다는 이유로 미국과 유럽의 일부 지역에서 ‘중국(인)과 아시아인을 문화적으로 불결하고 미개하며, 비도덕적인 사회’로 간주하는 언론 보도가 잦다. 과거 제국주의 시기에 유럽이 백인 우월 주의를 표방하고, 아시아(인)에 대한 공포를 부추겼던 ‘황화론’(黃禍論·Yellow Peril)과 같은 ‘코로나 인종주의’(Corona-Racism)가 되살아나 국제 사회의 연대를 해치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중국이나 이란과 같은 특정 국가나 지역 출신자들에 대한 차별과 혐오다.

우리나라에서도 다양한 논리로 지역 혐오를 조장하는 등 ‘내부 혐오’가 표출되고 있다. 예측 불허의 확진 상황에 대한 정부의 투명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중국인 봉쇄와 같은 초기 대응, 전문가 집단의 의견 수용 등 현 정부의 방역 대책에 대한 비판은 결과론적 근거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위험을 ‘세월호 참사’와 비교하는 등 혐오와 공포를 조장하는 ‘말’들은 또 다른 의미의 사회적 폭력이다. 심지어 “코로나19는 하나님이 내린 징벌이나 심판”이라는 일부 종교인들의 ‘말’에는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모두가 위험에 직면한 지금에는 전염병이 가져온 생물학적 위험보다 혐오와 공포의 말들이 생산하는 심리적 고통에 더욱 각별한 경계가 필요하다. 사회적 거리 두기와 더불어 혐오와 차별을 조장함으로써 공동체를 파괴하려는 불순한 말들로부터의 거리 두기도 해야 한다.

현재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이 전염병은 반드시 극복된다. 때문에 현재의 위험을 결코 가볍게 보지 말되, 지금은 차분하게 정부의 조치와 전문가의 의견을 따라야 한다. 그리고 이 위험 상황에는 타자의 불행에 선한 연대로 동참해야 한다. 현재의 위험에 밤낮으로 헌신하고 있는 보건 의료인들의 희생과 위험에 처한 대구 지역을 위해 자원하고 있는 ‘낭만 닥터들’과 같은 수백 명의 보건 의료인들의 헌신을 보라. 눈물겹다. 그리고 환한 미소로 대구 확진자를 “광주로 보내라”는 달빛 동맹의 실천을 보라. 아름답다.

이러한 공동체적 연대는 서러운 광주의 정신을 끝내 희망과 평화의 가치로 승화해 낼 것이며, 나아가 살 만한 가치가 충분한 공동체 대한민국을 증명할 것이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연쇄 살인마인 중세 흑사병의 공포에 광기와 미신으로 폭력의 흑역사를 기록한 중세 유럽인들의 과오는 오늘을 이해하는 거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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