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를 이겨내기 위한 ‘공감’과 ‘협력’
2020년 03월 02일(월) 00:00 가가
현대 의학이 발달하기 전, 지금보다 훨씬 더 무서운 존재는 각종 전염병이었다. 의학의 놀라운 발전으로 전염병을 과거의 일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지만, 세계화 시대에 국가 간 교류가 빈번해지면서 잊고 있던 전염병의 반격이 활발해졌다. 이로 인해 WHO(세계보건기구)는 21세기를 ‘전염병의 시대’라고 규정하였다.
인플루엔자(독감) 바이러스에 의한 전염병은 최근 100년 동안 스스로 변종을 만들어 내며 인류를 괴롭히고 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낳았던 전염병은 ‘스페인 독감’ 이었다. 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던 1918년 창궐해 2년 만에 당시 세계 인구 16억 명 중 6억 명 이상이 감염되었고, 최소 2500만 명에서 최대 1억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 통계 연보에 의하면 ‘스페인 독감’이 한반도에 상륙하여 ‘무오년 독감’ 으로 불리웠다. 당시 조선인 1700만 명 중 절반에 가까운 750만 명이 감염되어 14만 명이 사망했다.
지난해 12월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서 첫 환자가 나온 지 불과 두 달 만에 코로나19는 전 세계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에 따르면 지난 25일 기준으로 중국을 포함하여 전 세계 확진자는 8만여 명이며, 사망자 또한 2600명을 넘어섰다. 이는 지난 2015년 27개국 2494명의 감염자와 858명의 사망자를 낳았던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MERS) 와 비교해도 파급력이 매우 큰 상황이다.
이처럼 전염병이 유행할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첫 번째는 봉쇄와 유입 차단을 통해 시간을 버는 것이다. 시간을 벌어야 바이러스의 정체를 확실히 파악해서 치료제도 테스트하고 바이러스를 분리해서 연구도 하고 진단 시약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이 첫 번째 대책은 성공적이었다. 세계 최초로 코로나19 진단 시약을 개발했고, 이를 통해 하루 최대 5000건에서 7500건까지 6시간 이내에 검사가 가능한 상황을 만들었다.
두 번째는 감염 경로를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 많이 발생하는 지역 감염 단계에서의 대응이다. 특정 지역에서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상황을 말한다. 이때는 발생 지역에서 저위험군과 고위험군을 분류하고 중증 환자에 대한 집중 치료를 통해 다른 지역으로 전파가 안 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향후 1~2주가 코로나19의 차단 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기간이 될 것이다.
셋 번째는 대유행 또는 팬데믹(전 세계적으로 전염병이 유행하는 사태, pandemic) 단계로 실질적으로 마지막 대응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 단계가 되면 일반적인 방역 말고는 특별히 할 수 있는 게 없다. 보통 대유행까지 가면 그 기간에 바이러스의 독성이 약화된다. 멀리 퍼지려면 독성이 약해 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은 코로나19 또한 매년 겨울이면 죽지 않고 돌아오는 하나의 약한 병으로 전락될 것이다. 물론 치료제도 개발되어 사망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코로나19를 극복해야 할까? 이번에 대구·경북 지역에서 폭발적으로 늘어난 확진자의 대부분이 특정 종교의 신도들이었다. 좁은 자리에 나란히 앉아서 오랜 시간 예배를 보고, 예배 전후에 얼굴을 마주 보며 인사하는 시간이 길다. 결국 감염자의 비말(침방울)이 주변으로 순식간에 전파될 수 있다. 이렇듯 종교 시설의 안팎은 밀접 접촉이 일어나기 쉬운 환경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가급적 많은 인원이 모이는 곳은 가지 않는 것이 좋으며, 자주 손을 씻고 마스크 착용을 생활화하며 기침 예절을 준수해야 한다. 유럽에서 흑사병이 발생하였을 때 유대인들에 대한 혐오가 극에 달했다. 그 이유는 유대인들이 율법적으로 손을 자주 씻기 때문에 병에 걸리지 않았고, 이로 인해 유대인들이 병을 퍼뜨렸다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위협을 당하면 항상 ‘외부의 적’을 찾았다. 대중은 ‘포비아(공포증)’로 무장해 외부의 적을 만들고 비난하는 행위를 정당화한다. 하지만 이는 해결책이 아니다. 오히려 중증 환자들이 비난받기 싫어서 밖으로 안 나오는 게 더 심각한 문제이다.
결국 이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혐오, 차별과 배제가 아니라 공유와 공감, 협력이 더 필요한 시점이다. 서로를 향한 힐난과 비난, 가짜뉴스를 양산하고 유포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어려움을 이해하며 함께 나누는 따뜻한 연대의 손길만이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두 번째는 감염 경로를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 많이 발생하는 지역 감염 단계에서의 대응이다. 특정 지역에서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상황을 말한다. 이때는 발생 지역에서 저위험군과 고위험군을 분류하고 중증 환자에 대한 집중 치료를 통해 다른 지역으로 전파가 안 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향후 1~2주가 코로나19의 차단 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기간이 될 것이다.
셋 번째는 대유행 또는 팬데믹(전 세계적으로 전염병이 유행하는 사태, pandemic) 단계로 실질적으로 마지막 대응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 단계가 되면 일반적인 방역 말고는 특별히 할 수 있는 게 없다. 보통 대유행까지 가면 그 기간에 바이러스의 독성이 약화된다. 멀리 퍼지려면 독성이 약해 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은 코로나19 또한 매년 겨울이면 죽지 않고 돌아오는 하나의 약한 병으로 전락될 것이다. 물론 치료제도 개발되어 사망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코로나19를 극복해야 할까? 이번에 대구·경북 지역에서 폭발적으로 늘어난 확진자의 대부분이 특정 종교의 신도들이었다. 좁은 자리에 나란히 앉아서 오랜 시간 예배를 보고, 예배 전후에 얼굴을 마주 보며 인사하는 시간이 길다. 결국 감염자의 비말(침방울)이 주변으로 순식간에 전파될 수 있다. 이렇듯 종교 시설의 안팎은 밀접 접촉이 일어나기 쉬운 환경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가급적 많은 인원이 모이는 곳은 가지 않는 것이 좋으며, 자주 손을 씻고 마스크 착용을 생활화하며 기침 예절을 준수해야 한다. 유럽에서 흑사병이 발생하였을 때 유대인들에 대한 혐오가 극에 달했다. 그 이유는 유대인들이 율법적으로 손을 자주 씻기 때문에 병에 걸리지 않았고, 이로 인해 유대인들이 병을 퍼뜨렸다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위협을 당하면 항상 ‘외부의 적’을 찾았다. 대중은 ‘포비아(공포증)’로 무장해 외부의 적을 만들고 비난하는 행위를 정당화한다. 하지만 이는 해결책이 아니다. 오히려 중증 환자들이 비난받기 싫어서 밖으로 안 나오는 게 더 심각한 문제이다.
결국 이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혐오, 차별과 배제가 아니라 공유와 공감, 협력이 더 필요한 시점이다. 서로를 향한 힐난과 비난, 가짜뉴스를 양산하고 유포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어려움을 이해하며 함께 나누는 따뜻한 연대의 손길만이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