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 스튜디오·미술 콜라보…예술인 창작 둥지로
예술의 거리 작가회
서양화·문인화·공예 등 23명 결성
정보 공유·교류하며 대중과 소통
2018·2019년 연말 전시회
미로센터 지난해 문 열어
문화예술 플랫폼 역할
레지던시 프로그램 소통 기회
2020년 01월 14일(화) 00:00
광주 동부경찰서 앞에는 ‘광주 예술의 거리 ART STREET’라는 거리명이 걸려있다. 아스팔트대신 돌로 포장한 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가다 보면 원불교 광주교당 맞은편 4층 건물 입구에 ‘아티스트 하우스’(Artist’s House) 표지가 눈길을 끈다. 일명 ‘화가의 집’이다. 2층계단 창가에 놓인 4명 작가의 캐리커처가 작업실 문패 역할을 한다. 2층은 정해영 작가, 3층은 최재영 작가, 4층은 김선미·한승희 작가의 작업실이 자리하고 있다.

◇작가 23명 입주해 창작활동 활발=“처음에는 시내로 나가면 사람들이 찾아와 방해되지 않을까 갈등도 있었죠. 혼자 그리다보면 자기 작업세계를 편협되게, 일방적으로 바라보는 부분도 있어요. 그래서 ‘소통하고, 나를 내놓고 들여다보는 계기로 삼자’ 싶었습니다.”

‘예술의 거리 작가회’ 회장을 맡고 있는 최재영(59) 작가는 지난 2015년 2월께 남구 봉선동에 있던 작업실을 동구 ‘예술의 거리’로 옮겼다. 무엇보다 ‘스스로 변화를 가져야 되겠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결행이었다. 막상 작업실을 옮기고 보니 당초 우려했던 것처럼 무턱대고 사람들이 찾아오진 않았다. 오히려 시내에서 대중과 소통할 수 있다는 면에서 긍정적이었다.

3층 최재영 작가 작업실에 들어서자 입구에 돌가루를 발라 파스텔 분위기를 내는 ‘축제 시리즈’ 여러 점이 걸려있었다. 작가는 벽면에 캔버스 6개를 나란히 설치하고 ‘스크래치 페인팅’(캔버스에 먹을 바르고 동물해부용 칼로 긁어내는 기법)으로 ‘포옹(Embrace) 시리즈’ 작품 창작에 열중하고 있었다. 대형 작품이어서 때로는 사다리에 올라서서 작업한다. 칼이 지날 때마다 다양한 포즈의 남녀 군상이 형상을 드러냈다.

‘예술의 거리 작가회’ 회장을 맡고 있는 최재영 작가가 광주시 동구 예술의 거리 개인작업실에서 ‘포옹’시리즈를 창작하고 있다.
현재 광주시 동구 예술의 거리에 입주한 작가들은 40여명. 이 가운데 서양화와 한국화, 문인화, 공예 등 4개 분야 예술가 23명을 중심으로 ‘예술의 거리 작가회’를 결성했다. 작가들은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제안도 하고, 대중과 소통하며 가자는데 뜻을 모았다. 작가들이 모여있다보니 생산적인 이야기가 오간다. 작가회는 작업실을 대중에 개방하는 ‘오픈 스튜디오’를 비롯해 정기 전시회, 재즈와 미술의 콜라보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에 참여해왔다. 2018년과 2019년 12월에는 예술의 거리 무등 갤러리에서 한 해를 결산하는 전시회를 마련했다.

최재영 회장은 2018년 ‘예술길을 걷는 화가들’이라는 주제로 열린 작가회 회원들의 전시회 ‘초대의 글’을 통해 “광주 예술의 거리는 그동안 많은 선배 예술인들의 꿈이 모여서 호남예술의 새벽을 열었던 곳”이라며 “화랑과 화방, 표구점, 골동품 가게, 선술집 사이사이에 창작의 둥지를 틀고 있는 다양한 작가들의 창의적 발전과 상호 교류를 위해 ‘예술의 거리 작가회’가 시작됐다”고 밝혔다.

광주 동구 예술의 거리는 동부경찰서 앞에서 중앙로까지 300여m와 5·18민주화운동 기록관에서 중앙초등학교까지 250m의 열십자(十)형 거리를 의미한다. 특히 국립 아시아문화전당과 양림동, 대인 예술시장 사이를 이어주는 문화예술 벨트 역할을 하고 있다. 본래 이곳은 광주읍성이 있던 시절, 활터가 있었다 해서 ‘궁동’(弓洞)으로 불렸다. 이곳을 ‘예술의 거리’로 이름붙인 때는 1989년.

예술의 거리에 작업실을 마련한 최재영, 김선미, 정해영, 한승희 작가(왼쪽부터).
현재 예술의 거리에는 갤러리 5곳(갤러리S, 아트타운 갤러리, 무등 갤러리, 향담갤러리, 관선재)을 비롯해 박물관 2곳(세계 조각·장식박물관, 비움 박물관), 골동품 가게, 필방, 표구점, 예술공방, 아트샵, 음악공간 등 예술과 관련된 상점 100여개가 밀집돼 있다. 현재 40여명의 예술가들이 예술의 거리에 창작의 둥지를 틀고 있고, 많은 문화예술 관련 상점이 집중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쇠락한 예술의 거리 상권은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다.

광주시는 예술의 거리를 활성화하기 위해 매년 수억 원의 예산을 들여 다양한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그러나 의도한 만큼의 이렇다 할 시너지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에 대해 다수의 예술인들은 “정책적인 비전이나 내용들이 체계적으로 만들어지고, 채워나가는 방식으로 진행되지 않고 일회성 이벤트 행사위주로 진행했기 때문”이라며 “전반적으로 예술의 거리를 대상으로 체질개선을 위한 정책적 비전이 제시돼야 할 것”이라고 분석한다. 여전히 예술의 거리는 젊은 세대의 발길을 자연스럽게 이끌지 못한 채 저녁이면 상점들 불이 꺼지고 인적마저 끊긴 ‘적막강산’ 거리로 변하고 마는 실정이다.

지난해 11월 개관한 '미로(美路) 센터'.
◇‘미로센터’, 예술의 거리 활성화 기대=지난해 11월 동구 예술의 거리에 ‘미로(美路)센터’가 문을 열었다. 광주 동구청이 문화적 도시재생 사업의 하나로 추진한 예술의 거리 거점공간이자 동구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앵커(Anchor) 시설이다. 미로센터는 지난해 예술의 거리에 거주하는 주민과 상인, 작가들과 함께 할 수 있는 파일럿 프로그램을 많이 개발했다. 새해에도 지난해 했던 파일럿 프로그램들을 예술의 거리 활성화와 미로센터 플랫폼 운영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이어갈 계획이다. 민(민간단체)과 관(미로센터)이 거버넌스를 구축해 함께 계획을 수립하고 추진하는 부처 공모사업을 통해서다.

특히 지난해 미로센터가 광주 국제 문화교류의 거점시설로서 역할을 하기 위해 진행한 ‘레지던시 창작 스튜디오’는 주목을 받고 있다. 해외 초청작가와 국내출신 리턴작가를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으로 나름의 긍정적인 효과를 거뒀다. 러시아 출신 미디어 아티스트가 미로센터에서 작업을 마치고 귀국한 뒤 그곳에서 예술의 거리 작가들과 교류할 수 있는 전시를 진행하고 있다.

천혜원 미로센터 운영기획팀장은 “예술의 거리에 ‘컬러’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지역작가들과 소통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예술의 거리 작가회’ 최재영 회장은 “예술인과 지역주민, 외부 기획자가 함께 예술의 거리 발전방안을 찾아야 한다. 무엇보다 청년문화가 유입돼야 한다. 예술의 거리 오래된 간판을 ‘아트간판’으로 바꾸면 좋겠다. 또한 중앙초등학교를 학생들 수업시간을 피해서 예술의 거리 구심점이 되고, 재미있는 예술한마당이 이뤄지는 공간이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한편 광주시는 지난 2018년에 ‘예술의 거리 입주작가 가이드맵-예인 방명록’을 제작했다. 예술의 거리에 어떤 작가들이 입주해 창작활동을 펼치고 있는지 한 눈에 알 수 있는 ‘작가얼굴 지도’이다. 중앙초등학교 남서쪽 모퉁이에 설치돼 있다. 진시영·신도원(미디어 아티스트), 정해영(한국화가), 강남구·박지택·유수종·조근호(서양화가), 이성임(민화 화가), 이상호(판화가), 김옥수(도예가), 조광석(조각가) 등 입주 작가들의 작업실 위치와 약력, 작품 등을 소개한다.

/글·사진=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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