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식 신년사는 우등불 피웠을 때 발표되었다
2020년 01월 07일(화) 00:00

[이성춘 송원대 교수·북한학 박사]

북한의 제7기 제5차 로동당 전원 회의와 2020년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신년사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지난해 연말 나흘간의 회의 일정이나 전원 회의 결과로 기존의 육성 신년사를 대체한 것을 지켜보면서 많은 생각을 해 본다. 평소보다 긴 전원 회의 기간이나 신년사 미발표는 예전 김일성 주석의 사례에서 살펴보면 그렇게 이례적이지는 않다. 과거 전원 회의 일정은 정세 및 사안별로 이틀에서 닷새까지 실시되었으며, 신년사도 1957년과 1987년에는 아예 발표도 하지 않았다. 또한 1966~70년 신년사는 로동신문 사설로 대체하는 등 많은 사례가 이를 입증하고 있다. 그렇게 언론에서 호들갑을 떨 일은 아닌 것이다.

김정은은 지난해 12월 초 백두산에 올라 우등불(화톳불의 북한말)을 밝혔다. 북한에서 우등불의 의미는 각별하다. 김일성 저작집에서 보면 “항일유격대에서는 지휘관들과 대원들이 굶어도 같이 굶고 잠을 자도 우등불 곁에서 같이 잤으며…” “숙영지에 가면 제일 먼저 도끼를 들고 나무를 찍어다 우등불을 피웠고…”라는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우등불을 밝혔다는 것은 항일 유격대 정신을 새롭게 구현하자는 것으로 이신작칙(以身作則) 의미를 내포한 것이다.

북한은 지난 12월 초에 독자적으로 새로운 길을 가겠다는 것을 대외적으로 천명하면서 대내적으로는 북한 주민들에게 이미 김정은식 신년사를 발표한 셈이다. 과거의 우등불이 항일 의지를 불태웠다면 현재의 우등불은 대미 항전의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내년 즉 2021년은 김정은에게 10년 집권 정주년의 해로서 정권의 정통성을 새롭게 부각해야 하는 매우 중요한 한 해이다. 당연히 2020년에는 새로운 정세 조성은 물론 지속적으로 주민들과 함께 하는 지도자상을 내보이면서 현지 지도를 더욱 강화할 것으로 예측된다.

북한을 바라볼 때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길게 보아야 한다. 이번 로동당 전원회의 결과는 핵 억제력의 동원 태세를 항시 유지하면서 정면 돌파 하자는 것이다. ‘정면 돌파’는 김정은식 새로운 길이며 투쟁 방향이다. 북한 로동당 기관지인 로동신문에서 정면 돌파는 “주도권을 틀어쥐고 주동적인 공격으로 부닥친 난국을 유리하게 전변시켜 나가는 혁명적인 투쟁 전략이며 전진 방식”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당분간 정면 돌파라는 전원회의 과업을 관철시키기 위한 주민들의 궐기대회가 평양에서부터 시작하여 북한 전역을 휩쓸고 지나갈 것이다. 나아가 이를 구현하기 위한 분야별 세부 지침이 하달되어 모든 영역에서 정면돌파는 진행되게 될 것이다. 김정은 시대의 또 하나의 혁명 구호가 될 것이다.

또한 남북 관계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아 당분간 북미 관계에만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의 입지 축소가 염려되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미 협상의 촉진자로서 부분별 정면 돌파에 대한 우리 당국의 남북 협상 전략과 지원 전략이 구체적으로 준비되어야 한다. 단기전략 보다는 중장기 전략으로 남북 관계를 이끌어야 할 때이다.

김정은의 새로운 길에는 북미 관계와 체제 안전 보장이라는 복잡한 속내가 담겨져 있다. 금년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이슈가 있으며, 북한은 로동당 창건 75주년과 국가 경제 발전 5개년 전략의 마지막 해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전원 회의에서 경제적 자립을 위한 방안이 논의되었으며, 넷째 의정으로 ‘조선로동당 75돐을 성대히 기념할 데 대하여’ 문제를 토의하고 결정을 채택한 것이다. 북한이 이례적으로 당 전원 회의를 세밑까지 진행하였다는 것은 그만큼 엄중한 현실 인식과 체제 생존 차원의 전략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향후 북미 관계는 긴장을 유지하면서 시간 벌기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북미다 손해 볼 사항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시간 벌기는 각각 자신들에게 유리하다고 판단할 것이다. 이 과정 중 북한의 새로운 전략 무기가 나타나게 되면 비핵화 협상은 물론 한반도 평화 정착은 또다시 멀어지게 될 것이다. 우리 정부는 지속적인 북미 비핵화 협상의 실질적 진전을 위한 다각적인 노력과 군사적 신뢰 구축을 위한 합의 사항을 철저히 이행할 때이다. 경자년에는 남북 관계가 한걸음 진전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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