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기준
2019년 12월 16일(월) 04:50 가가
한 명과 두 명, 한 집안과 한 지방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중요할까. 고사를 돌이켜 보면 ‘불가피한 선택’에 대한 흥미진진한 사례들이 등장한다.
먼저 삼국유사에 나오는 ‘거문고 갑을 쏘다’라는 설화. 신라의 제21대 왕인 비처왕이 천천정(天泉亭)에 이르렀을 때 까마귀와 쥐가 와서 울었다. 쥐가 사람의 말로 이야기하기를 “이 까마귀를 따라가라”고 했다. 왕이 기병에게 명령하여 뒤따르게 했는데, 가는 길에 돼지 두 마리가 싸우는 것을 구경하다 문득 까마귀 간 곳을 잃어 버렸다.
기병이 길에서 배회하자 한 노인이 연못 속에서 나와 글을 바쳤는데 그 겉봉에 “뜯어보면 두 사람이 죽고 뜯어보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는다”라고 쓰여 있었다. 왕은 “두 사람이 죽는 것보다는 뜯어보지 않고 한 사람이 죽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관은 “두 사람이란 일반 백성이요, 한 사람이란 왕을 말하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왕이 그 말을 옳게 여겨 겉봉을 뜯어보니 “거문고를 넣어 두는 상자를 쏴라(射琴匣)”라고 쓰여 있었다. 놀란 왕은 즉시 궁궐로 돌아와 거문고 갑(匣)을 쏘았다. 비명이 들려 살펴보니 그 속에는 간통을 저지른 승려와 비빈이 숨어 있었다.
중국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전해 온다. 북송 때의 대정치가인 범중엄은 각 지방의 장관 격인 감사(監司) 중 무능한 이들을 교체하기 위해 대상자를 가려내 그 이름 위에 붓으로 표시를 했다. 이에 수제자인 부필이 “어른께서야 한 번 붓으로 표시하는 것이지만 이로 인해 한 집안이 통곡하게 되는 것을 아십니까?”라고 말했다. 그러자 범중엄은 “한 집안이 통곡하는 것이 한 지방 전체가 통곡하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는가”라며 표시된 감사 모두를 교체했다.
비처왕은 한 명을 택하고 범중엄은 한 지방을 선택했다는 것이 다르지만, 두 사람 모두 선택의 기준은 “어느 쪽이 사회에 미치는 ‘선한 영향’이 더 큰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할 것이다. 지금 국내 정치권에 몰아치는 검경 갈등, 적폐 청산의 회오리가 ‘문재인 대통령의 조국 선택’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대통령 선택의 기준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홍행기 정치부장redplane@kwangju.co.kr
먼저 삼국유사에 나오는 ‘거문고 갑을 쏘다’라는 설화. 신라의 제21대 왕인 비처왕이 천천정(天泉亭)에 이르렀을 때 까마귀와 쥐가 와서 울었다. 쥐가 사람의 말로 이야기하기를 “이 까마귀를 따라가라”고 했다. 왕이 기병에게 명령하여 뒤따르게 했는데, 가는 길에 돼지 두 마리가 싸우는 것을 구경하다 문득 까마귀 간 곳을 잃어 버렸다.
/홍행기 정치부장redplane@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