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실한 개·힘센 사자·영리한 여우로 살다 (293) 생의 시간
2019년 12월 11일(수) 22:10

티치아노 작 ‘시간의 흐름’

“이것이 아닌 다른 것을 갖고 싶다/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괴로움/외로움/그리움/내 청춘의 영원한 트라이앵글” <최승자 작 ‘내 청춘의 영원한’>

이 나이가 되어보니 교사, 공무원, 은행원이었던 주변 친구들이 퇴직 혹은 명예퇴직을 하고,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한 걸음 비껴서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 여유가 부럽기도 하고 그걸 바라보는 심정이 살짝 초조해지기도 하고 그런다. 반전이라고 해야 할까. 본업을 떠난 친구들은 결국 다른 일을 찾아 다시 취업을 하고 창업도 하는 게 아닌가. 이번에는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로 다른 삶을 시작하는 것 같다.

어린 시절 어른들의 역할을 흉내 내며 했던 소꿉놀이를 강진 해남 등 남도에서는 ‘빠꿈살이’ ‘산바꿈’이라 부른다. 삶을 바꿔 살아보는 것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바꾸어서 전혀 다른 삶을 설계하는 친구들의 ‘산바꿈’이 새로운 청춘의 도전으로 보인다.

과거를 되돌아봄으로써 추하지 않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신중하게 살아야한다는 암시를 담은 작품이 티치아노(1488~1576)의 ‘시간의 흐름’(1550~1565년 경 작)이다. 한때 서유럽의 모든 군주가 탐냈고, 그런 까닭에 국제적으로 활동한 최초의 화가로 꼽히는 티치아노는 생애 만년에 인생의 세 단계를 시간의 흐름을 통한 우의화로 그렸다.

소년의 모습을 충실한 개로, 중년의 남자를 힘센 사자로, 노년의 모습을 스스로 삶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영리한 여우로 묘사해 인생을 지혜롭게 대처하는 단계를 보여주고 있다. 인생의 단계를 달리 설계해가는 친구들의 모습이 연상되는 대목인 것도 같다. 더불어 이 작품은 노년의 모습은 티치아노의 자화상으로, 중년은 아들의 모습이며 소년의 젊음은 손자를 그린 집단 초상화이기도 해서 3대에 걸친 가문을 성공적으로 꾸렸다는 티치아노의 자부심이 느껴진다.

<광주시립미술관학예관·미술사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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