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공개 소환’ 폐지인가?
2019년 11월 06일(수) 04:50

[채희종 편집부국장·사회부장]

20년 전인 1999년 7월 16일이었다. 사건기자였던 터라 점심 식사 후 출입처였던 광주 동부경찰서에 들렀다. 형사계를 한 바퀴 돌고 기자실에서 잠시 쉬다가, 전화 취재를 하던 중 깜짝 놀랄 만한 말을 듣게 된다. 오후 두세 시께로 기억하는데, 전남경찰청 한기민 폭력계장으로부터 ‘신창원이 잡혔어’라는 말을 들은 것이다.

신창원이라는 말에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이것저것 물었지만 그는 ‘신창원이 순천경찰서로 오고 있어 출동해야 한다’며 급히 전화를 끊었다. 두서없이 선배 기자에게 보고를 한 뒤, 사진기자와 함께 순천으로 출발했다. 전국의 모든 언론사의 카메라·사진기자와 사건기자들이 순천으로 몰려들었다. 당시 취재진 앞에 섰던 신창원의 옷차림과 눈빛은 지금도 생생하다.

신창원은 1997년 1월 강도치사죄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부산교도소에 수감 중 탈옥했다. 2년 반 만에 검거되기까지 연인원 97만 명의 경찰이 투입됐고, 이 과정에서 탈옥범을 놓친 경찰 60여 명이 해임되거나 징계를 받았다. 신창원에게는 ‘희대의 탈옥수’라는 전무후무한 별명이 붙었다.

현장을 뛰던 기자 시절에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자 최초로 경험한 포토라인 취재였다. 사건기자 시기를 벗어난 이후 공개 소환을 직접 취재할 일은 없었다. 이후 지금까지 광주·전남에서 포토라인이 그려지고 범법자가 공개 소환되는 사건도 불과 서너 건밖에 되지 않았다.

2014년에는 검찰에 출두하던 허재호 대주그룹 회장이 공개 소환되는 과정에 포토라인에 섰다. 이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재판에 앞선 포토라인과 윤장현 전 광주시장에 대한 검찰의 공개 소환이 있었는데, 두 건은 취재 대신 데스킹을 맡은 사회부장으로서 기사를 취급했다. 전두환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5·18 당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에 대해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기술해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고, 2018년 3월11일 피고인 신분으로 광주지법 출두에 앞서 포토라인에 섰다. 윤 전 시장은 같은 해 12월10일 ‘보이스피싱 사기 사건’으로 광주지검에 공개 소환되면서 포토라인에 섰다.

공개 소환은 차관급 이상,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고위공직자, 정치인 등 공인을 검찰에 소환할 경우 사전에 소환 일시를 공개하는 것을 말한다. 재벌이나 국민의 공분을 산 반인륜 범죄자 등도 대상이었다.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 25년간 유지된 관행적 제도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공개 소환은 끊임없이 찬반 논란을 불렀다. 유죄가 확정되지 않은 피의자의 기본권이 침해된다는 주장과 국민의 알 권리 보장을 위해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맞섰던 것이다.

이제 공개 소환 대상을 살펴보자. 어린이를 성폭행하고 죽인 연쇄 살인마, 수백·수천억 원을 횡령해 서민들에게 피해를 입힌 기업인, 국정을 농단한 관료, 부정부패한 정치인과 고위 공무원 등. 이들은 지위나 재산만 놓고 보더라도 상위 1% 가운데에서도 1%, 요즘 말로 ‘베스트 오브 베스트’에 속할 것이다.

직장인이나 서민 등 일반 국민은 애초 공개 소환 대상에 끼지도 못한다. 그렇다면 공개 소환 폐지에 동의하는 국민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아마 없을 것이다. 대신 인권침해를 이유로 공개 소환 폐지를 주장하는 이들은 대부분 최고의 권력과 경제력을 가진 사회 지도층 아닐까? 촛불 혁명 진행 당시 국정 농단 세력들이 하나하나 공개 소환되고 사법 처리됐을 때, 어느 누구도 공개 소환을 인권침해라고 주장한 적이 없었다. 공개 소환으로 언론의 보도와 국민의 관심이 촉발되면서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가능했던 것이다. 이처럼 공개 소환은 국민이 국가적인 사안에 대해 판단의 기회를 갖게 된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국민의 알 권리’인 셈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검찰 개혁’ 방안을 제시하라는 대통령의 지시 이후 최근 피의자 공개 소환에 대해 폐지를 결정했다. 이후 전국 검찰청은 사실상 공개 소환을 시행하지 않고 있다. 여기에 법무부까지 나서 지난달 30일 피의 사실과 수사 상황 등 형사 사건 내용을 원칙적으로 공개하지 않으며, 공개 소환도 금지하겠다고 발표했다. 심지어 오보를 낸 기자들의 검찰청 출입을 제한하겠다고 한술 더 떴다. 정부와 검찰의 발표라면 이젠 기자는 ‘묻지도 따지지도’ 못하고 주는 대로 받아쓰는 수밖에 없게 됐다.

정부와 검찰은 공개 소환 폐지를 마치 검찰 개혁의 완성으로 여기고 있는 듯하다. 검찰 개혁을 다짐하면서 굳이 공개 소환부터 없애겠다는 것은 사안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 국민이 요구하는 검찰 개혁은 비대한 수사권의 적절한 분산과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다.

검찰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형성되기 전에는 헌법이 부여한 ‘국민의 알 권리’를 없앨 권한은 누구에게도 없다. 공개 소환 제도의 파트너는 언론이다. 국민이 동의하지 않는 공개 소환 폐지는 마땅히 취소돼야 한다.

/chae@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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