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신향 독일 쾰른대학교 음악학 박사] 클래식이 만난 ‘민주’, 뮌헨의 가을을 물들이다
윤신향 독일 쾰른대학교 음악학 박사
2019년 10월 04일(금) 04:50
옥토버 축제로 부산한 뮌헨의 가을, 뮌헨 시민들의 문화복합공간 가스타이크 칼 오르프 홀에서 특별한 음악회가 있었다. 세계 정상급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과 광주 시립교향악단의 연주자들이 요세프 바스티안의 지휘 아래 합동 음악회를 연 것이다.

요세프 바스티안은 지난 여름 아시아 유스 오케스트라를 이끈 바 있다. 프로그램은 현악오케스트라를 위한 윤이상의 ‘교착음향’(1961), 김대성의 교향시 ‘임을 위한 행진곡’ 주제에 의한 ‘민주’(民主·Democracy), 그리고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협주곡 D 장조 KV 218과 베토벤의 로만차 제 2번 F 장조로 구성되었다. 바이올린 협연은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제 2 바이올린 악장 이지혜가 맡았다. 탄탄한 경력과 연주력으로 국내외에서 인정 받고 있는 이지혜의 협연이 클래식에 친숙한 청중 확보에 기폭제가 되어 주었다.

가스타이크의 칼 오르프 홀이 거의 꽉 찼다. 음악회 소식을 듣고 달려온 교포들도 눈에 띄었다. 프로그램의 한 축은 현악의 향연이었다. 처음 연주된 윤이상의 현악 오케스트라를 위한 ‘교착음향’은 그의 작품 가운데 유일하게 각 악장에 동양 악기(호궁, 거문고, 양금)의 이름이 붙어 있는 작품이다. 이것은 각 악기의 주법을 각 악장마다 서양의 악기로 옮긴다는 의미라기 보다는, 음향의 재료 특성을 ‘콜로이드’라는 화학 용어 그대로 ‘접착’한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3악장에서는 ‘양금’의 소리가 접착되었다기보다는, 처음 제시된 음향의 재료 특성을 한 단계 발전한 차원에서 듣게 되는 것이다. 윤이상의 1960년대 초반의 작품은 연주하기에도, 듣기에도 쉽지 않은 어법으로 되어 있지만, 바스티안은 현악 주법만이 가능한 이러한 재료 흐름을 무리 없이 잡아주었다.

음악회는 김대성의 교향시 ‘민주’에서 절정에 달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의 모티브를 관현악의 다양한 색채로 변주시키면서 분위기를 변화시키는 작곡자의 기량, 바스티안의 해석과 합동 교향악단의 연주가 청중에게 큰 감동을 선사했다. 김대성은 김남주의 시 ‘아직 끝나지 않았다. 5월의 싸움은’과 망월동에서 직접 읽은 묘비문 “민주주의의 신새벽으로 부활하여라”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즉, 작곡자가 체화한 ‘님을 위한 행진곡’에 그 고유의 상상력이 부가된 것이다. 그런데 작곡가의 고백대로 “민주를 음악으로 그린다는 것은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 만큼 힘든 일”일 터이다. 클래식을 꽃피우고 민주 헌법을 완성했던 바이마르 공화국이 한때 좌초했던 역사를 들지 않더라도, 자율 예술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이 윤리적 가치와 늘 부합하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작곡자는 ‘민주의 새벽’을 어떻게 표현하고자 했을까? 곡의 중간에 등장하는 애잔한 플루트 독주는 우선 분노의 에너지를 일단락시킨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한동안 관현악의 드라마를 증폭시키더니, 팡파레와 흡사한 관악기의 마지막 주제 선율이 청중을 전혀 다른 장면으로 유도한다. 여기서 어떤 청중은 죽은 ‘임’이 살아 있음을, 어떤 청중은 ‘아름다운 민주의 새벽’, 적어도 그 기운을 상상했다면 전혀 틀렸다고만은 할 수 없을 것이다. 독일 교포들이 받은 감동의 무게는 후자에 더 있었던 것 같다. 청중의 대부분은 분노와 고통, 노래의 박진감을 궁극에는 극적으로 반전시킨 관현악의 감성적 팔레트에서 감동을 받았다. 이것은 순수 절대음악이 표현하지 못하는, 민주를 염원하는 작곡자의 ‘마음’과도 멀지 않을 것이다.

아쉬움도 남는다. 한 편의 영화 음악을 방불케 하는 김대성의 교향시가 음악회 마지막에 울려 퍼졌다면, 음악회의 의의가 좀 더 부각되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이지혜의 ‘클래식’ 연주도 한층 더 돋보였을 것이다. 또한 광주시와 광주문화재단이 기획한 음악회였던 만큼, ‘임을 위한 행진곡’과 창작곡 ‘민주’ (民主·Democracy)에 대한 충실한 해설이 있었다면, 독일 청중이 문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작곡자에게 영감을 주었다는 김남주의 시와 묘비문의 내용은 ‘클래식’을 들으러 온 청중들에게 좀 더 색다른 느낌을 남겨 주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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