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영화제] 개막작 '말도둑들…' 영상미·절제된 감정 돋보여
카자흐스탄-일본 합작 영화 "서부극 연상"
2019년 10월 03일(목) 23:10

\'말도둑들.시간의 길\' [부산영화제 제공]

"영화 속 소리와 형상은 국적에 상관없이 모든 관객에게 울림을 줄 것입니다."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말도둑들.시간의 길'이 3일 개막식에 앞서 부산 영화의전당 중극장에서 언론에 공개됐다. 이 영화는 2000년대 초반 카자흐스탄의 한 시골을 배경으로 한 가족에게 벌어진 일들을 소년의 시선으로 그린 작품이다. 가족을 사랑하는 한 남자가 말을 팔기 위해 읍내 장터로 갔다가 말 도둑들에게 살해당하고, 마을 사람들과 가족들은 함께 장례를 치른다. 남편을 하늘로 떠나보낸 아내는 세 아이와 함께 친정 마을로 이사하려고 하고, 그녀 앞에 8년 전 소식이 끊긴 한 남자가 나타난다. 그는 자신을 똑 닮은 여자의 아들과 함께 이사를 돕던 중 말 도둑들과 맞닥뜨린다. 영화는 며칠 동안 벌어진 일을 시간순으로 그리지만, 사랑과 죽음, 복수의 서사가 모두 담겨 마치 서부극을 연상시킨다. 감정과 대사는 절제돼 있지만, 그 여백에서 진한 슬픔과 인간사의 황망함도 느껴진다. 영화는 소년의 시선으로 전개돼 한 소년의 성장통으로도 읽힌다. 무엇보다 빼어난 영상미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광활하면서도 황량한 초원과 그 위를 질주하는 말들, 멀리 펼쳐진 눈 덮인 산과 푸른 하늘 등이 매 장면 한폭의 풍경화처럼 펼쳐진다. 2013년 제63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은곰상 예술공헌상을 받은 아지즈 잠바키예프 촬영 감독이 촬영을 맡았다. 전양준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이 작품에 대해 "드넓은 중앙아시아 초원을 배경으로 목가적인 삶의 서정성과 어두운 이면을 와이드 스크린과 롱숏의 미학을 활용해 펼쳐냈다"면서 "아울러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선과 악의 모든 일이 진행되는 점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카자흐스탄 예를란 누르무함베토프와 일본의 리사 다케바 감독이 공동 연출을 맡은 양국 합작 영화다. 영화 '아이카'(2018)로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카자흐스탄 배우 사말 예슬라모바와 재일교포 이상일 감독의 '분노'에서 강한 인상을 남긴 일본 배우 모리야마 미라이가 출연했다. 누르무함베토프 감독은 이날 시사회 이후 기자회견에서 "칸 영화제에서 만난 리사 다케바가 제 시나리오에 관심을 가지면서 함께 연출하게 됐다"면서 "현재 일본은 중앙아시아와 공동 제작에 관심이 많다"고 전했다. 그는 "일본 배우를 카자흐스탄 영화에 활용한 것은 제작뿐만 아니라 연기 측면에서도 흥미롭고 좋은 시도였다"고 떠올렸다. 아울러 "특정 관객층을 대상으로 한 작품은 아니다"면서 "전체적인 소리와 형상이 누구에게나 울림을 줄 거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2015년 연출한 영화 '호두나무'로 부산영화제 뉴커런츠 상을 받은 그는 "수상이 그 이후의 제 작업에 큰 원동력이 됐다"면서 "다양한 관점을 가진 관객들에게 제 작품을 보여주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데뷔작 '죽음의 새끼손가락'(2014)으로 2014년 유바리 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한 리사 다케바 감독은 "카자흐스탄의 영화 촬영방식이 매우 유연해 경이로웠다"면서 "일본에서는 치밀한 준비 작업을 선호하는데, 카자흐스탄은 촬영할 때마다 수시로 유연하게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면이 유목 민족의 경이로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지난해 칸 영화제 수상 이후 유럽 등지에서 많은 러브콜을 받는 배우 사말 예슬라모바는 이 영화에서 슬픔을 내면으로 삼키는 절제된 연기로 강한 인상을 남긴다. 그는 "어느 곳에서나 감독 성향에 따라 제 연기 스타일은 달라진다"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감독님이 가진 아이디어를 어떻게 실현하느냐"라고 연기관을 밝혔다. 일본 배우 모리야마 미라이는 모국어가 아닌 카자흐스탄어로 연기했다. 그는 "카자흐스탄어를 전혀 몰라 대본에 있는 대로 그대로 암기해 연기해야 했다"고 떠올린 뒤 "단순하면서도 절제된 언어들을 통해 카자흐스탄 대지의 기운이 영상이 담긴 것 같다. 작품 전체를 본 뒤에는 서사시, 신화를 읽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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