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규 호남대 경찰행정학과 교수]화성 연쇄 살인 사건 수사의 오답 노트
2019년 09월 27일(금) 04:50

김정규 호남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최소한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의 범인이 과학적으로 누구인지는 알 수 있게 되었다. 화성 연쇄 살인은 1986년부터 4년 7개월 동안 10명의 여성을 대상으로 성폭행하고 살해한 최악의 미제 사건이다. 공소 시효가 종료되어 처벌은 불가하지만 관련된 불안감들을 떨쳐버릴 수 있게 되었다는 측면 등 에서 큰 의미가 있다.

경찰은 2011년부터 중요 미제 사건 전담팀을 편성·운영하여 현재까지 미제 52건을 해결하고 79명을 검거했다. 실무상으로 중요 강력 미제 사건이란 살인 사건 발생 후 5년간 피의자를 검거하지 못하는 경우를 말한다. 여기에 해당하는 사건은 현재 268건이 있다. 지역별로는 서울 59건, 부산 26건을 비롯하여 광주·전남 18건 등 이다. 아직 적지 않은 미제들을 수사해야 하는 상황에서 화성 사건을 통해 수사 실책의 존재 여부를 검토해 보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경찰의 미제 사건 수사에 성과가 나타난 배경에는 범죄자의 DNA를 채취하여 보관할 수 있는 법제도와 DNA를 이용할 수 있는 과학 수사의 발전을 지목할 수 있다. 대검에는 2019년 8월 기준 16만 9000여 명의 강력 범죄자 유전자 정보가 채취·보관되어 있다. 이번에 활용된 DNA 분석 기법은 연쇄 반복을 통해 염색체의 특징 부분을 증폭시키는 방법이다. 100만분의 1미리그램의 시료만으로도 개인 식별이 가능하고 시료의 부패와 변형에 대한 분석 허용성도 향상되었다. 착오 확률은 100억 분의 1 이하이다.

경찰과 이춘재는 여러 차례 직간접적으로 만남을 가져왔다. 연쇄 살인 사건이 발생할 당시인 1987년부터 1991년 사이에 경찰은 이춘재를 3차례 조사했다. 이춘재가 강간 살인으로 체포되었을 때 경찰은 그의 화성 본가를 압수수색했다. 본가는 연쇄 살인 사건 발생지와 인접해 있었다. 청주 피해자의 시신을 유기하는 수법 등은 화성 연쇄 사건들과 상당한 유사점이 있었다. 그런데 화성 수사 본부와 청주 경찰은 연관 수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내가 답을 아는 문제를 다른 사람이 틀리는 것을 보면 한심한 생각이 들듯이 범인을 알고 보면 수사의 허점이 보이기 마련이다. 이춘재란 정답을 보고 당황스러운 것은 혈액형이 O형이라는 것이다. 그전까지 ‘화성 살인마’에 부합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은 B형이었다. 경기남부청은 브리핑에서 기존 수사 결과의 혈액형은 피해자의 것인지조차 불확실한 것이었고 심지어 그렇게 특정한 이유가 불분명하다고 답했다. 제1의 전제가 오류인 문제는 풀고 또 풀어도 오답만 나오기 마련이다.

이론적 함정에 빠졌을 가능성도 엿보인다. 연쇄 살인들은 각 범인들 마다 일정한 패턴을 반복하는 특성이 있다. 대상을 기준으로 면식과 비면식으로 구분하고 동기는 사디즘적·경제적·아동형으로 분류한다. 화성 사건들은 비면식 형태였고 처제 살인은 면식 사건이었다. 한국보다 연쇄 살인 사건의 역사가 앞서고 형태가 다양한 외국의 사례 연구들은 연쇄 살인의 경우 대상을 바꾸지는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경찰은 당시에 이러한 경향성에 대해 과잉 신뢰했던 것 같다.

경찰이 이처럼 중대한 착오를 일으킨 이유는 무엇일까. 화재 현장에서 불 끄고 싶지 않은 소방관이 없는 것처럼 살인범을 잡고 싶지 않은 경찰은 없다. 경찰은 사건이 장기화하면 강한 체포 욕망을 경험하게 되는데 바로 그때 비과학이 난무하게 될 여지가 생긴다. 청주 사건에서는 당시 화성 수사본부가 그동안의 수많은 시행착오를 회피하기 위해 대상 특성이 다른 사건은 원천 배제했던 것 같다. 그러나 대상에서는 면식과 비면식의 차이가 있었으나 사디즘적 형태로 보면 화성과 청주는 동치의 수준이었다. 수사의 영역에 비과학은 지나치게 수용한 반면 분명한 개연성은 간과한 것이다.

한번 틀린 문제를 열심히 복습하는 학생이 성적이 오르듯 경찰 수사의 발전을 위해 이번에 발견된 문제점들을 절치부심으로 살펴야 할 것이다. ‘이춘재 오답 노트’를 작성하고 다른 난제들의 해법에도 응용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금번의 교훈은 수사 현장에서 비과학적인 것은 물론이고 제아무리 확실한 과학적 증거라 해도 그것에만 치중한 확증 편향은 주의해야 한다는 점이다. 향후 미제 수사에는 기존의 과학적 추정적인 정보를 반대로 고려하거나 나아가 강제해 보는 방법을 적용해 볼 필요가 있다. 내가 틀린 것을 인정하는 순간 안보였던 것들이 시야에 들어오는 때가 있는 것처럼 지금까지의 수사 과정 전반에 걸쳐 반성적 사고를 동원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앞으로 미제 사건 해결 소식이 계속해서 이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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