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작은 변화 ‘광주폴리’
디자인비엔날레가 남긴 유산 중에 시민들에게 친숙한 상징물들이 있으니 지난 2011년 4회 디자인비엔날레에 만들어진 ‘광주 폴리’다.
‘폴리(FOLLY)’의 사전적 의미는 ‘본래의 기능을 잃고 장식적 역할을 하는 건축물’로 ‘우스꽝스러운 짓’이라는 뜻을 갖는다. 하지만 ‘광주폴리’는 도시 미관의 역할과 함께 도시재생에 기여할 수 있는 건축물이다.
2011년 4회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일환으로 기획된 광주폴리는 도시공공시설물의 디자인이었다. 세계 유명 건축가와 디자이너 11명이 참여해 옛 광주읍성 성곽의 흔적을 따라 11곳에 등장시켰으며, 이후 2013년부터 디자인비엔날레와 별개로 독립적인 프로젝트로 추진돼 현재까지 광주 도심에 새로운 폴리들을 선보이고 있다.
첫해 폴리는 농장다리 인근에 설치된 ‘푸른길 문화샘터’(승효상·한국), 장동 교차로 ‘소통의 오두막’(후안 헤레로스·스페인), 제봉로 학원거리 인도 ‘서원문 제등’(플로리안 베이겔·독일), 한미쇼핑 사거리 ‘광주 사람들’(나데르 테라니·미국), 금남로 공원 ‘유동성 조절’(알레한드로 자에라폴로·스페인), 충장치안센터 앞 ‘99칸’(피터 아이젠만·미국), 광주세무서 사거리 ‘열린 장벽’(정세훈/김세진·한국), 옛 황금동 사거리 ‘기억의 현재화’(조성룡·한국), 구시청 사거리 ‘열린 공간’(도미니크 페로·프랑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어린이문화원 옆 ‘광주사랑방’(프란시스코사닌·미국), 광주영상복합문화관 인근 ‘잠망경과 정자’(요시하루 츠카모토·일본)까지 11개 였다.
이후 광주폴리는 2차와 3차까지 이어지면서 장소와 기능, 형태를 다변화 해 시민들이 일상에서 즐길 수 있는 공공공간으로 확대했다. 건축가 데이비드 아자예(가나)와 소설가 타이에 셀라시(미국)가 공동으로 참여해 만든 ‘광주천 독서실’ 아이 웨이웨이(중국)의 ‘포장마차’는 사람들이 모여 음식을 조리하고 먹는 공간을 이동식 포장마차로 연출한 것이다.
맛집형 폴리는 젊은이들이 특히 선호한다. 쇠락한 도시에 비집고 들어가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는 바텀업(Bottom-up) 방식으로 도시재생의 모델이 되는 쿡폴리다. 1970년에 지어진 옛 한옥건물을 리모델링한 한식당 ‘청미장’과 카페&바 형태의 유리온실 ‘콩집’이 운영되고 있다.
처음 광주폴리가 등장했을 때 시민들의 반응은 무심을 넘어 ‘거추장스럽다’ ‘도시미관을 오히려 해친다’는 등 부정적인 시각이 많았다. 3차까지 진행된 현재 30개의 광주폴리가 들어섰지만 여전히 광주폴리의 존재를 모른다는 시민도 있다. 그렇지만 조금씩 광주의 일상에 스며들고 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6월 광주폴리를 시작한 광주비엔날레재단이 특허청에 ‘광주폴리’에 대한 상표등록을 마친만큼 도시를 조금씩 바꿔나가는 기능과 함께 시민과 어울릴 수 있는 활용 방안 마련, 시설보수나 청결 등 지속적인 유지관리에 대한 필요성도 뒤따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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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스나인의 미니맨(스테파노 지오바노니 작). |
◇공공디자인·전시의 산업화
디자인비엔날레가 남긴 유산은 건축물만이 아니다. 광주디자인센터로 운영주체가 바뀐 2013년 행사부터는 공공디자인으로서 실용성과 디자인 산업화의 필요성이 제시됐다.
당시 광주 5개구 쓰레기봉투와 택시기사들이 입을 유니폼 디자인을 제안했고 광주·전남의
9대 명품 쌀 포장 활용방안을 검토하기도 했다. 비록 실용화에는 실패했지만 산업화의 필요 가능성이 제시된 시도였다.
광주비엔날레 전시장 앞 버스 정류장 ‘레드 페이스(The Red Face·황승준)’도 2013년 만들어진 유산이다. 디자인비엔날레의 산업디자인 프로젝트 일환으로 세워진 아트버스 쉘터인 ‘레드 페이스’는 길이 15m, 폭 2m의 철구조물에 의자를 설치하고 밤에는 LED 조명이 어우러져 운치를 더한다. 자석 등을 이용해 시민들이 자유롭게 글이나 그림을 표현할 수도 있다. 틀에 갇힌 버스정류장의 이미지를 탈피하고 사계절 내내 주변 풍경에 생동감을 주는 붉은색을 띄고 있는 ‘레드 페이스’는 ‘DFA(Design For Asia) 어워드 2014’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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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를 앞두고 광주시와 광주디자인센터가 ‘광주다움’을 테마로 설치한 버스 정류장. |
버스정류장의 변화는 8회 디자인비엔날레가 열리는 2019년에도 이어졌다. 7~8월 광주에서 열린 2019 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를 앞두고 광주시와 광주디자인센터가 경기장 주변 16곳에 ‘광주다움’테마의 버스정류장을 새롭게 설치했다. 디자인은 ‘국립공원 무등산의 형상’ ‘서석대 등 주상절리’ ‘5·18 광주민주화운동’ ‘광주 세계수영선수권대회 상징요소’등 4가지 컨셉으로 담았다.
무등산을 모티브로 한 버스정류장은 모서리 부분을 부드러운 곡선 형태로, 서석대 타입의 정류장은 양면 개방형으로 이용자의 편의성을 높였다. 신설 정류장은 냉·난방 시설과 에어커튼, 휴대전화 충전시스템을 갖추고 일부 정류장은 LED 광원을 이용한 미디어월을 설치, 다양한 정보제공과 늦은 밤 시민들이 보다 안전하게 다닐 수 있도록 설계했다.
2015년 6회부터는 지역 제조기업과 디자이너들이 함께 탄생시킨 디자인으로 기업 상용화에 도전했다. 스탠드 조명 ‘더 트리’(㈜대영 오앤이·알렉산드로 멘디니), 무드조명 ‘메카노’(남양조명공업㈜·알베르토 메다), 무드조명 ‘엘프’(㈜세전사·데니스 산타끼아라), 생활자기 ‘미니맨’(㈜인스나인·스테파노 지오바노니), 주방도구 ‘키친툴’(광주금형·한경아), 소품정리용 트레이 ‘모듈러 트레이’(㈜담다·송봉규) 등 많은 디자인 작품이 전시를 넘어 산업화 전환에 성공했다.
광주디자인센터는 향후 지역에 흔적을 남길 수 있는 레거시를 위해 디자인 뮤지엄 조성 등 아카이브를 구축할 계획이다. 일련의 과정으로 올해 광주디자인비엔날레 특별전으로 아카이브전을 진행중이다. 본 전시와는 별도로 광주국제수영선수권대회와 맞물려 지난 7월 22일부터 광주디자인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아카이브전은 2005년부터 7회동안 진행됐던 디자인비엔날레의 재조명을 통해 미래의 비전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시대별 독립된 프레임의 구성을 통해 지난 광주디자인비엔날레의 사료, 역사, 작품을 보여주고 있다.
눈에 띄는 작품은 2017년 전시됐던 ‘아시안 하모니’(Asian Harmony). 베트남 장인들로 구성된 조명 브랜드 드란타나의 설치 작품 ‘아시안 하모니’는 500개의 베트남 등을 모아놓은 조형물이다. 현대적이면서도 전통적인 풍경을 만들면서 어둠 속 희망과 과거와 미래의 조화를 표현했다.
/이보람 기자 boram@kwangju.co.kr
/사진=나명주 기자 mjna@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