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미술관을 품다
이타미 준의 포도호텔·안도 타다오의 본태박물관
삶과의 조화·자연과의 융합…거장들의 건축철학 생생
김창열 미술관, 현무암 돌담길·물방울 설치 작품 눈길
2박 3일간 둘러본 제주 미술관
2019년 08월 12일(월) 04:50

재일 건축가 이타미 준이 설계한 제주 ‘포도호텔’ 내부의 작은 정원에서는 탁 트인 하늘을 만날 수 있다.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






제주 섭지코지에 자리한 유민 미술관(옛 지니어스 로사이)은 안도 타다오의 대표작품이다.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본태박물관.






사람들이 미술관을 찾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무엇보다 보고 싶은 그림이 있는 곳, 그러니까 ‘컬렉션’이 미술관 선택의 중요한 요소일 터다. 요즘에는 미술관 ‘건물’ 자체를 보기 위해 방문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미술기행-건축, 미술관을 만나다’를 주제로 진행한 전문연수에서는 건축과 미술관, 컬렉션이 만나 시너지 효과를 내는 현장을 생생히 접할 수 있었다. 2박 3일간 제주를 찾아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타다오와 이타미 준 등이 설계한 미술관 등 개성 넘치는 미술관과 건축물들을 만나봤다.



◇‘재일 건축가’ 이타미 준의 세계

“그 땅에 살아왔고, 살고 있고, 살아갈 이의 삶과 융합한 집을 짓는 것이 내 꿈이고 철학이다.” 귀화하지 않고 ‘경계인’으로 살았던 재일 건축가 이타미 준(한국명 유동룡·1937~2011)의 말이다. 프랑스 예술문화훈장 ‘슈발리에’, ‘김수근문화상’을 받았고 일본 최고 건축상인 ‘무라노도고상’을 수상한 그는 딸에게 이화여대를 가라고 ‘이화’란 이름을 줬고, 딸 류이화 역시 아버지의 뒤를 이어 건축가로 활동중이다. 이타미란 성은 그가 처음 한국을 찾을 때 이용한 오사카의 국제공항 이름이다. 준은 의형제처럼 지냈던 작곡가 길옥윤의 ‘윤’에서 따왔다.

이타미 준이 설계한 제주도 포도호텔 투어를 하다보면 자연과 삶의 터전을 존중했던 그의 작품 세계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다. 포도호텔 지하 1층에 갤러리가 있기는 하지만 포도호텔 전체가 하나의 세계관을 갖춘 건축물로 인기가 많아 정기 투어가 진행되고 있다.

제주의 독특한 자연환경인 오름과 민가의 모습에서 영감을 받은 건물은 두드러지지 않게 낮게 엎드린 모습으로, 제주 올레길을 따라 펼쳐지듯 지어져 있다. 창을 통해 바깥의 풍경을 고스란히 담아 내고 있는 건물 내부에서 특히 눈에 띄는 곳은 하늘을 향해 열려 있는 작은 실내 정원이다. 둥근 원형 공간 사이로는 푸른 하늘이 보이고, 작은 물길이 이어지며 건물 벽에 난 유리창 너머로는 푸른 나무가 한눈에 들어온다. 계절에 따라 각기 다른 식물이 연출하는 정원 위로 쏟아지는 햇볕의 이동과 양에 따라 색다른 느낌을 준다.

이번 투어에서 방문하지는 못했지만 그의 또 다른 대표작인 ‘수(물), 풍(바람), 석(돌)미술관’은 작품을 전시하는 곳이 아니라 각각의 건물 자체가 미술품이자 명상의 공간으로 감동을 전하는 곳이다. 그밖에 본태박물관 바로 옆에 자리한 방주교회 역시 이타미 준의 작품이다.

마침 15일 개봉하는 다큐 ‘이타미 준의 바다’(감독 정다운) 에서는 포도호텔을 비롯해 이타미 준의 작품 세계를 만날 수 있다.



◇노출 콘크리트의 미학 안도 타다오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작품은 제주에 모두 세 곳이 있다. 모두 노출 콘크리트를 주로 사용하고 빛과 물을 건축 요소로 끌어들이는 ‘자연과의 결합’이 돋보이는 건물들로 안도의 작품 세계를 구현하는 공간이다.

지난 2012년 문을 연 ‘본태박물관’은 한국 전통 공예와 세계적인 현대미술 작품을 동시에 만날 수 있는 독특한 장소다. 모두 5개 관으로 구성된 전시장은 2017년까지 순차적으로 문을 열었고 모두 안도가 설계를 맡았다. 1관은 전통 공예관으로 규방 공예 등 다양한 공예 작품을 만나는 공간이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 관람하는 2관은 살바도르 달리, 페르낭 레제, 이브 클라인 등 현대미술의 거장 작품이 즐비하다. 또 3관에서는 쿠사마 야요이의 대표작 ‘무한 거울방-영혼의 반짝임, 2008’과 ‘호박’ 시리즈를 만날 수 있다.

그의 또 다른 대표작인 유민미술관은 섭지코지에 자리하고 있다. 지난2008년 명상 공간인 지니어스 로사이로 문을 열었다 2017년 유민미술관으로 이름을 바꾸고 현재 아르누보(1890년대부터 1910년대까지 유럽에서 일어난 공예·디자인 운동) 작품을 집중적으로 전시중이다.

비바람이 부는 날 도착한 박물관은 안도 타다오의 건축 철학을 단박에 알 수 있는 곳이었다. 비가 옴에도 불구하고 자꾸 바깥에 머물고 싶게 만드는 공간 구성이 일품이다. 본 전시관에 도착하기 전에 만나는 공간들은 오르막과 내리막, 모퉁이를 활용해 풍광을 ‘한번에 보여주는’ 대신 조금씩 보여주며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한다. 작가는 섭지코지의 원생적 자연의 모습을 형상화해 건물을 설계했다. 입구에서 만나는 작은 연못의 자유분방한 꽃과 나무, 돌담 등 미술관 곳곳에서 섭지코지의 물, 바람, 빛, 소리를 느낄 수 있다.

전시장의 아르누보 컬렉션은 고(故) 유민 홍진기 선생이 오랜 시간 수집한 낭시파 유리공예 작품들로 ‘영감의 방’ 등 4개의 방에서 감상할 수 있다.

미술관 맞은편의 글라스하우스 역시 안도의 작품이다. 1층에는 지포 라이터 박물관과 카페가 있고, 2층은 레스토랑으로 운영중이다. 2층에서 내려다보이는 바깥 풍경이 그림이다. 문을 열고 나무 데크 테라스로 나가면 바다와 어우러진 절경이 손에 잡힐 듯하다.



◇제주도립 김창열 미술관

‘물방울 작가’로 유명한 김창열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는 제주도립 김창열 미술관은 지난 2016년 문을 열었다. 평남 출신으로 1952년 경찰학교 졸업 후 제주도로 파견온 게 제주와 맺은 첫 인연이었던 김화백은 대표작 220점을 제주도에 무상 기증했고 공모를 통해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는 김창열 화백의 물방울 작품을 모티브로 빛의 중정과 전시실로 구성된 미술관이 세워졌다.

제주 전통 현무암 돌담길이 인상적인 미술관 입구를 지나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유리창 너머의 중정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물 위에 놓인 커다란 돌 조각 위에 ‘물방울’ 설치 작품이 놓여있고 외부로 연결돼 완만한 경사로를 따라 오르면 탁 트인 하늘과 마주하게 된다. 또 실내 곳곳에도 김 작가의 작품 감상에 최적화된 공간들이 눈에 띈다.

미술관이 자리한 장소는 곶자왈을 품고 있는 저지리 예술인마을이다. 현재 한국화 거장 박서보 작가 등 30명의 예술인들이 개성 넘치는 작업실과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다. 예술인마을에는 제주 현대미술관, 김흥수 화백 아틀리에가 자리하고 있으며 지난 6월에는 문화예술 공공수장고도 문을 열었다. 앞으로 정상화 화백 작업실과 이타미 준 기념관 등도 조성될 예정이다.

/제주=글·사진 김미은 기자 mekim@
오피니언더보기

기사 목록

광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