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훈 변호사] 내 사무실의 자경문(自警文)
2019년 07월 22일(월) 04:50
조선시대 석학 율곡 선생께서 금강산으로 들어가 공부하다 오죽헌으로 돌아와 인생의 이정표로 삼고 평생 좌우명으로 삼고자 했다는 자경문 11조.

입지(성인을 본보기로 삼고 큰 뜻을 품을 것), 과언(말을 줄여 마음을 안정시킬 것), 정심(잡념과 망상을 없애고 마음을 고요하게 할 것), 근독(항상 경계하고 삼가는 마음을 가질 것), 독서(시비와 실천을 위해 글을 읽을 것), 소재욕심(재물과 영화에 대한 욕심을 없앨 것), 진성(할 일은 정성을 다하고, 안 할 일은 끊어 버릴 것), 정의지심(사소한 불의나 희생이라도 소홀히 하지 말 것), 감화(타인을 감화시키지 못하는 것은 나의 성의가 부족하다 여길 것), 수면(병이 있거나 밤에 잠을 잘 때 아니면 함부로 눕지 말 것), 용공지효(공부는 늦추어서도 성급해서도 안 되고 평생 꾸준히 할 것). 나이 20세에 이 같이 엄격한 삶의 자세를 표명했다니, 필자 같은 범부(凡夫)로선 비현실적이고 솔직히 그대로 따라하지 못할 것 같다.

그러나 범부에게도 각자 뜻 한 바가 있고 나름의 진심이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누군가 인생에서 각 단계의 진심은 좌에서 우로 흘러가는 변화가 아니라, 아래에서 위로 쌓여 퇴적되는 층층이라고 생각된다.

현재 필자 사무실에 걸려 있는 세 개의 글씨 표구와 한 개의 글씨 목각이야말로, 필자가 서른 초 변호사를 시작할 때부터 쉰을 바라보는 현재까지 각 단계마다 고민하고 다짐했던 바를 대표하는 화석이란 생각이 든다.

첫째 열정과 냉정. 2002년 에쿠니 가오리와 츠지 히토나리가 따로 또 같이 쓴 ‘냉정과 열정 사이’를 감명 깊게 읽고, 1년 2개월 고용 변호사 생활을 끝내며 2004년 개업과 동시에 사무실 책상 위에 ‘열정과 냉정’이란 표구를 처음 걸었다.

의뢰인을 향한 주관적 뜨거움(파토스), 사건과 법리에 접근하는 객관적 차가움(로고스), 흔히 말해지듯 뜨거운 가슴과 차가운 머리! 뭐 이런 것을 뜻하는 것이었다. 명함에도 같은 문구를 새기고 다녔고, 2006년에는 소설 속 준세이와 아오이가 만나기로 약속했던 피렌체 두오모를 일부러 찾아 나설 정도였으니 위 문구에 대한 내 애착은 남다른 데가 있다.

둘째 청신근(淸愼勤)과 위인모충(爲人謀忠). 필자는 2008년부터 호남 유맥을 잇는다는 평을 받는 송담 이백순 선생님으로부터 한학을 배웠다. 소학으로 시작해 대학, 중용, 논어를 배우다 2012년 선생님이 작고하시자, 몇몇 선생님을 찾았지만 더 배울수록 선생님에 대한 그리움이 쌓였다.

다행히도 필자는 작고 전 2011년 겨울 선생님 댁을 찾아 마음에 새길 문구를 부탁 드려 내려 써 주신 위 두 글귀를 건졌다. 마음은 맑게 하고, 행동은 신중하게 하며, 항상 부지런하라(淸愼勤). 타인을 위해 일을 도모할 때는 충심을 다하라(爲人謀忠). 청신근이 삶에 대한 철학적 자세에 관한 것이라면, 위인모충은 실천적인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비단 변호사 업무 뿐 아니라 사람 사귐이나 세상을 대하는 기준으로 삼을 만 한 것 같다.

끝으로 늘 처음처럼. 필자는 올 2월 고향 목포로 사무실을 옮겼다. 17년 가량의 광주 변호사 생활을 접는 것에 대해 약 6개월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었는데, 고민이 힘든 것이지 결정이 내려지니 일사천리였다.

25만 인구 목포에 와서 좋다면 좋은 것이, 한 다리 건너면 선후배요 고향 이웃이란 것이다. 가로 120㎝, 세로 40㎝, 두께 약 10㎝ 정도 되는 목각 글씨 ‘늘 처음처럼’도 점심 먹으러 갔다가 전시된 글 중 마음에 들어 구입한 것이다.

식당 주인은 직원의 언니 친구, 목공예 작가는 필자가 일곱 살까지 유년 시절을 보낸 해남 출신이란 인연과 내 넉살이 작용해서 전시가의 50%에 구입할 수 있었다. 광주에서 개업을 할 때 새긴 ‘열정과 냉정’, 선생님께 ‘청신근, 위인모충’ 글씨를 처음 받을 때 초심을 놓치지 말자는 생각을 진정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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