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완 원불교 광주 농성교당] 교무 생각 이전의 자리
2019년 07월 19일(금) 04:50
중학교 3학년 수험생 아들을 둔 교도가 상담을 신청해 왔다. 특수 학교에 진학하는 수험생 아들이 시험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공부를 안 해서 너무 짜증난다는 것이다. 아들 얼굴만 봐도 화가 나서 마음이 괴롭다는 것이다.

교도님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내일 비가 오길 바랐는데 비가 오지 않으면 하늘에게 짜증이 납니까? 안 납니까? 또한 청명한 날씨를 주라고 빌었는데 비가 오면 하늘에게 짜증을 납니까? 하고 물으니 짜증을 내지 않는다고 한다.

하늘은 내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아도 짜증이 안 나는데 아들에게는 왜 짜증이 날까요? 하고 물으니 아들은 나의 소중한 가족이니 훌륭한 사람이 되도록 내가 관리를 잘 해주어야 한다고 한다.

아니 하늘이 내일 비를 내려줄 것인지 맑을 날씨를 줄 것인지도 모르면서 아들이 공부만 열심히 한다고 성적이 올라가고 훌륭한 사람이 된다는 것을 어떻게 압니까? 교도님의 그 마음 작용이 아들을 망치고 있습니다. 하니 그 교도는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반문한다.

생각 이전의 자리에서 마음을 내세요. 하니 알았다고 돌아갔는데 생각 이전의 자리를 아는지는 모르지만 공부를 게을리하는 수험생 아들에 대한 짜증의 원인을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한 종류는 우리 육신에 쌓인 눈을 뭉치는 사람이고 다른 종류는 육신에 내린 눈을 녹이는 사람이다.

육신에 쌓인 눈을 뭉치는 사람은 생각의 실체를 알지 못하여 자신의 잣대에 벗어나면 마음 속에 짜증이 가득하여 남을 원망하고 모든 짜증의 원인을 밖으로 돌리는 사람이다. 육신에 쌓인 눈을 녹이는 사람은 생각의 실체를 정확히 알아 생각에 끌려가지 않는 사람이다.

생각은 눈과 같다. 알면 보이고 모르면 보이지 않는다. 짜증과 분노는 생각의 실체를 모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생각의 정체를 정확히 알려면 생각 이전의 자리를 알아야 한다.

생각은 수시로 바뀐다. 점심 뭐 먹지? 짜장면 먹을까? 짬뽕 먹을까? 생각하다 그래 짬짜면 먹자. 하고 짬짜면을 먹으면, 짜장면 먹을까? 짬뽕 먹을까? 하는 생각과 오늘 무엇을 먹을까? 하는 이전의 생각들은 사라진다. 이것이 생각의 정체이다. 모든 생각은 이렇게 이루어진다.

생각 이전의 자리에서 모든 생각을 일어내라는 것은 생각에 묶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야심경에서는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고 했고, 금강경에서는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모든 상이 상 아님을 보면 여래를 보리라)고 하였으며, 육조 혜능은 “선도 생각하지 말고 악도 생각하지 말라” 고 하였다.

“생각 이전의 자리로 돌아가라”는 것은 있음과 없음을 동시에 보라는 말이다. 이 이치를 알면 눈이 녹고 이 이치를 모르면 눈은 뭉쳐지게 되어 있다. 세상의 모든 문제는 나의 잣대를 벗어났을 때 생긴다. 문제를 바로 본다는 것은 나의 잣대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잣대가 무너지면 “아하”하는 깨달음이 온다. 생각 이전의 자리를 알게 된다. 생각 이전의 자리에서는 눈은 녹게 되어 있고 상처도 아픔도 녹게 되어 있다.

초기 불경인 숫타니파타에는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진흙에 때 묻지 않은 연꽃같이, 코뿔소의 외뿔처럼 혼자서 가라”고 하였다. 왜 사자는 소리에 놀라지 않을까? 소리의 실체를 알기 때문이다.

잣대를 놓으면 나의 실상이 달라진다. 선악의 기준은 나이다. 나에게 이로우면 선이고 나에게 해로우면 악이다. 선도 생각하지 말고 악도 생각하지 말라는 것은 나의 잣대를 놓으라는 것이다.

하늘을 나는 연을 보라. 실은 연을 위해서 존재하지만 연은 실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실은 종교이고 연은 진리이다. 생각 이전의 자리를 깨닫기 위해 오늘도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죽이는 살불살조(殺佛殺祖)의 삶의 수행이 되길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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