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재의 세상만사] ‘엄니, 고맙고 미안하요!’
2019년 05월 31일(금) 00:00
5·18 민중항쟁이 일어나기 두 해 전이다. 우리는 졸업 기념으로 뭔가 특별한 것을 하기로 했다. “다 같이 무대에 오르자.” 결론은 쉽게 났다. 연극 공연을 하기로 한 것이다. 당시 우리 과(科)에는 연극반 활동을 하던 친구들이 꽤 있었으니 당연한 결정이었다.

주인공을 맡고 싶었다. 하지만 돌아온 배역은 평범한 ‘할아버지’였다. 연출을 맡은 그 친구는 나의 노숙함을 높이 샀을 것이다. 하지만 서운했다. 용모가 이리 준수(?)한데, 내가 아니면 누가 주인공을 맡는담? (물론 키가 좀 아담하다는 약점이야 나도 잘 알고 있긴 했지만.)

같은 과의 한 여학생도 여주인공을 맡고 싶어 했다. 팔짱만 끼고 다녀도 캠퍼스에 소문이 쫙 나던 시절. 우리는 내놓고 사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두 손을 꼭 잡고 다닐 정도의 사이였다. 그러니 순전히 내 생각이긴 하지만, 그녀는 무대에서도 나와 같이 짝이 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에게 돌아온 배역은 여주인공이 아니라 평범한 ‘할머니’였다. (물론 그녀도 자신의 미모가 별로 뛰어나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었겠지만.)

주인공을 포기한(?) 나는 ‘진행’을 맡아 스태프에 이름을 올렸다. 조명이나 음향 같은 거야 전문 지식이 없으니 안 되고. 캠퍼스 강의실에서 밤늦게까지 연습하는 학생 배우들에게 간식 같은 걸 사 나르는 게 ‘진행’이 하는 일이었다. 그래도 공연이 다가오면서, 연극 팸플릿에 내 이름이 활자화되어 나온 것을 보는 것은 큰 기쁨이었다.

전당에서 5월극 상설공연을

노인은 추억을 먹고 산다는데 벌써 그런 나이가 된 것인가. 설마 그럴 리야 하면서도, 오랜만에 어떤 일(연극 관람)을 계기로 그간 잊고 있었던 오래전 일들이 새록새록 되살아나는 것을 보면, 피해 갈 수 없는 것이 나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 여학생은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일찍 결혼했으니 손주도 보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겠지.

연극 공연을 무사히 마치고. 대학 4년을 그렇게 마무리하고. 신문사 공개경쟁 채용 시험에 합격하고. 그리고 얼마 안 있어 기자 초년병 시절, 5·18이 일어났다. 항쟁 기간 동안에 같은 과(국문과)에서 동문수학했던 박효선(당시 시민군 홍보부장)을 우연히 만난 적이 있다. 낮에 계엄군과 맞서던 그가 밤에 잠시 목을 축이기 위해 어느 작은 맥줏집에 들렀다가 취재 중이던 나와 마주친 것이었다.

잠깐의 만남, 그리고 소식이 끊겼다. 이후 수배돼 2년 가까이 도피 생활을 하던 그는 1983년 극단 토박이를 창단해 우리 앞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80년대 말부터 90년대 후반까지 ‘금희의 오월’ ‘모란꽃’ ‘청실홍실’ 등 이른바 ‘오월 삼부작’을 잇따라 내놓았다. 사회성과 예술성을 두루 갖춘 작품들이었다.

‘금희의 오월’은 1980년 계엄군 진입에 맞서 도청을 사수하다가 숨진 전남대생 이정연 열사의 실화를 여동생 금희의 시각에서 극적으로 되살린 작품이다. 종종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헌혈을 하고 집으로 가던 중 계엄군의 총탄에 맞고 쓰러진 박금희 열사와 이 작품과는 관계가 없다. ‘모란꽃’은 서사극의 형식으로 광주항쟁 때 시위에 참가했던 여성이 계엄군에게 잡혀가 ‘남파 간첩 모란꽃’이라 자백하도록 강요받는 과정을 개인적 심리 치유의 차원에서 그린 수작이었다. ‘청실홍실’은 5월 항쟁 이후 모진 고문으로 정신병을 앓다 죽어간 김영철 열사의 비극을 다뤘다.

그가 내놓은 연극은 충격의 연속이었다. 그의 연극을 보면서 나는 다시 한 번 부끄러움에 몸을 떨어야 했다. 그의 연극은 잊고 싶은 기억을 되살려 내면서 끊임없이 우리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5월은 영원히 기억해야 할 과거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과거이기도 했으니까. 박효선은 그러나 40대 젊은 나이에 너무 일찍 우리 곁을 떠났다. 그가 간 후 나는 한동안 연극을 잊고 살았다. 5월도 잊고 살았다. 아니 잊고 싶었다.

한데 어느 날 갑자기 ‘애꾸눈 광대’가 나타났다. 그러나 이 우스꽝스러운 광대는 우리에게 눈물을 강요하지는 않았다. 웃음 전도사를 자처한 그는 자신의 비극적인 삶을 이야기하면서도 노래와 춤, 마술과 성대모사 등을 선보이며 우리를 웃겼다. 5·18 부상자회 초대 회장을 지낸 이지현(68) 씨가 그 주인공이다. 야구를 좋아했고 연극을 사랑했던, 그래 평범하게 살고 싶었던 그는 5·18 당시 온 가정이 풍비박산이 났다고 했다. 도청에서 시신을 수습하기도 했던 자신은 계엄군의 개머리판에 맞아 한쪽 눈을 실명하고, 남동생은 버스터미널 부근에서 시위를 하다 연행당하고, 어머니는 실성하고, 여동생은 5·18 유가족에게 시집갔으나 순탄치 못한 결혼 생활 끝에 세상을 떠나고….

연극인 박효선과 이지현

처음 그의 자전적 모노드라마로 시작한 애꾸눈 광대는 이후 2인극, 3인극으로 줄곧 진화를 거듭했다. 초연 이후 서울·부산·인천·전주·제주 등 전국 각지에서 공연됐고 2014년에는 일본 오사카 무대에도 오르며 ‘광주의 오월’을 알렸다.

최근 궁동 예술극장에서 애꾸눈 광대 ‘엄니, 고맙고 미안하요!’를 관람했다. 작은 소극장은 관객들로 가득 찼는데 객석에는 야구 선수 김종모의 얼굴도 눈에 띄었다. 출연진은 그새 10여 명으로 늘어나 있었다. 초연 당시 아마추어 배우 한 명이 전체 극을 이끌며 좀 어설프기까지 했던 데 비하면, 이번엔 연극으로서의 틀을 제대로 갖추고 있었다. 광주에도 이렇게 좋은 배우가 많이 있었구나, 새삼 느낄 정도로 연기력들도 훌륭했다.

‘엄니, 고맙고 미안하요!’는 SNS 등을 통해 시민 공모에 접수된 총 40개의 제목 중 선정된 것이라 했다. 극본과 예술감독은 이지현(예명: 이세상) 씨가, 각색과 연출은 김민호 동신대 교수가 맡았다. ‘애꾸눈 광대’는 지난 2010년 5·18민주화운동 30주년을 기념해 시작됐으니 벌써 9년째 무대에 올리고 있는 작품이다. 공연 횟수도 어느덧 150회를 넘겼다.

이 씨는 “초창기에는 전답을 팔아서 시작한 후 수많은 난관도 있었지만 시민들의 응원 덕분에 좌절할 수 없었다”고 했다. 광주에 어엿한 문화상품 하나 내놓기 위해 그는 누가 알아주거나 말거나 꾸준히 한길을 걷고 있다.

이윽고 막이 내리고. 객석을 떠나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본다. 아시아문화전당 콘텐츠 부족을 한탄만 할 게 아니라, 이런 작품을 문화전당 예술극장에서 상설 공연할 수는 없는 걸까. ‘애꾸눈 광대’뿐만 아니라 박효선의 ‘5월 삼부작’, 그리고 예전에 아주 감명 깊게 보았던 ‘5월의 신부’(황지우 극본) 같은 작품들을 문화전당에서 수시로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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