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군 40명, 계엄군과 송암동 교전 이후 사라졌다”
5·18 때 백운광장 거주하던 유광영씨 광주일보에 제보
“군인 총격에 부상 당한 40대 아주머니 피 흘린 채 백운광장으로 와
분노한 시민군들 트럭 타고 효천역 몰려가…5분간 빗발치는 총성
아무도 돌아오지 않아…27일 효천역 인근 논서 전복된 트럭 목격”
2019년 05월 16일(목) 00:00
80년 5·18민중항쟁 당시 광주시 남구 송암동 ‘효천역 인근~나주’간의 계엄군 도로봉쇄 구간에서 시민군 40여 명이 진압군과의 교전 이후 자취를 감췄다는 증언이 나왔다. 증언자는 시민군이 군용 지프차와 트럭에 나눠 타고 봉쇄지점으로 간 직후, 총성이 들렸고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다고 밝혔다.

5·18 당시 광주시 남구 백운광장 인근에 거주하고 있던 유광영(72)씨는 15일 광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지 않는데 시민군 집행부가 결성된 이후”라며 “이날 오전 10시께 남평에서 광주로 오던 40대 아주머니가 금당산 인근 고개를 넘어오다 군인들의 총격을 받아 부상을 입고 피를 흘리며 백운광장쪽으로 왔다”고 밝혔다.

이어 “백운광장에 있던 시민군 몇 몇이 이를 보고 분노해 도청 상황실로 연락했다. 이후 이날 오후 2~3시께 칼빈소총, 방탄조끼 등으로 무장한 시민군 40여 명이 군용 지프차와 군용트럭에 나눠 타고 효천역 인근으로 몰려갔다”고 말했다.

유씨는 “30여 분 후 5분간 빗발치는 총성이 들려 ‘교전이 붙었구나’라고 생각했다”며 “혹시나 시민군이 백운동쪽으로 복귀하지 않고 다른 길로 왔을 수도 있지만 그때 당시는 한사람도 돌아오지 않아 안타까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1980년 5월27일 오전 근무지로 복귀하라는 연락을 받고 광주~나주간 도로를 이용해 당시 몸담고 있던 남평초등학교로 가던 중, 효천역 인근 굽이진 도로변 옆 논에 전복돼 있는 군용트럭을 봤다.

유씨는 “시민군이 타고 갔던 트럭이라고 확신하고 있다”며 “효천역 인근에서 총탄 흔적이 있는 버스를 봤다는 미국 평화봉사단원의 인터뷰 기사<2019년 5월14일자 광주일보 1면>를 보고 39년 전 기억이 떠올라 제보하게 됐다”고 밝혔다.

5·18 연구자들은 유씨의 증언에 대해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성을 제기하면서도 검토할 가치가 있다는 의견이다.

김희송 전남대 5·18연구소 교수는 “유씨가 27일에 전복된 트럭을 봤다는 점으로 미뤄 시민군과 진압군이 교전한 시점은 25일이나 26일로 추정된다”며 “1980년 효천역 인근은 지금과 달리 인적이 드문 지역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전혀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고 분석했다.

정수만 전 5·18유족회장은 “효천역은 21~24일 20사단 61연대, 24일 이후 전교사 보병학교가 경계를 맡았다”며 “금당산 인근에서 총을 맞았다는 40대 여성의 신원을 확인한다면 구체적인 경위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김용희 기자 kimyh@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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