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영의 ‘그림 생각’ <262> 튤립
곧 시들어 버릴 화려함, 헛된꿈을 꾸짖다
2019년 04월 04일(목) 00:00

암브로시우스 보스카르트 작 ‘중국 도자기 꽃병의 튤립’

플라톤적으로 생각하자면, 내게 있어 꽃의 이데아는 튤립이다. 꽃의 이데아, 즉 꽃의 이상적 형상 혹은 꽃 자체를 떠올리거나 그림을 그릴 때면 장미도 목련도 아니고 꼭 튤립이 등장한다는 말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봄과 함께 찾아온 튤립 축제 소식이 반갑다. 메마른 대지에서 피어난 튤립은 기적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예쁜 꽃이 예고도 없이 땅에서 쑤욱 솟아나다니 황홀하기도 하고 신비롭기도 하다.

17세기 황금시대 네덜란드인에게 부와 호사 취미의 상징이었던 튤립이 투기 광풍으로까지 이어진 황당한 역사적 사건이 이해가 될 만하다는 생각도 든다. 처음에는 꽃의 아름다움에 반했지만 나중에는 떼돈을 벌 수 있다는 투기 심리로 가난한 사람들마저도 최상급 튤립 구근 한 개를 사기 위해 빚을 내어 투자했다니 돈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것 같다. 더불어 일확천금의 헛된 꿈은 부질없고 허망하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라는 사실도.

당시 네덜란드에서 럭셔리의 극치였고 역사상 최초의 거품경제 현상을 가져온 튤립은 그림으로도 인기였다. 정물화 중에서도 꽃 정물화라는 장르를 정착시킨 화가 암브로시우스 보스카르트(1573~1621)의 ‘중국 도자기 꽃병의 튤립’(1619년 경)은 튤립의 가시적 성질을 명료하고 꼼꼼한 관찰을 통해 감탄스러울 정도로 정교하게 묘사한 그림이다.

특히 튤립을 투명한 유리병이나 고급스러운 중국 도자기에 담아 꽃의 가치를 더욱 빛나게 했는데, 화병 속 튤립이 화려함의 절정을 보여주는 것 같다. 활짝 피어 아름다움의 절정을 자랑하는 꽃의 자태는 역설적으로 곧 시들어버릴 운명을 예고한다. 이 튤립 그림 역시 인간사 부귀영화의 헛됨을 경계하는 ‘바니타스’ 장르의 교훈을 전해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미술사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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