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여름가을겨울 데뷔 30년 인생은 참 변화무쌍 하구나…”
2018년 11월 12일(월) 00:00
‘친구와 우정 지키는 방법’ 가수 김종진
데뷔 30주년을 맞은 밴드 봄여름가을겨울(김종진·기타 겸 보컬, 전태관·드럼, 이상 62)의 김종진은 요즘 생각이 많다.

밴드로 30년을 버텨낸 자축 순간에 멤버이자 36년 지기 전태관이 암과 싸우고 있어서다. 전태관은 6년 전 신장암 수술을 딛고 회복하는 듯했으나 2년 뒤부터 암세포가 어깨뼈, 뇌와 두피, 척추, 골반까지 전이돼 병상에 있다.

“태관이는 성경책도 읽으며 잘 이겨내고 있어요. 엊그저께 태관이 병실에 갔을 때, 미국에서 3집 작업하며 두 달간 KFC 닭 날개를 엄청 먹은 얘기를 했어요. 그날 둘이 치킨과 피자를 시켜 먹으며 옛날 음악 하던 얘기를 많이 했네요.”

수많은 무대에 함께 올랐지만 돌아보니 떠오르는 순간은 이렇게 소소하다. 1집 내기 전인 1985년 대기업 입사원서를 쓴다는 전태관의 마음을 돌리려고 설악산에 데리고 가 김치 라면을 끓여준 기억 같은….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김종진은 홀로 지난 이야기를 하는 게 어색한 듯 보였다. 5년 전 25주년 앨범 ‘그르르릉!’(GRRRNG!)을 냈을 때만 해도 둘은 “우리 야성은 진행형”이라고 자부했다.

두 시간에 걸친 서른 번의 봄여름가을겨울 스토리는 자연스레 절반의 지분이 있는 전태관으로도 흘렀다. 그때마다 김종진은 눈에 물기가 스미며 먹먹해졌다.

◇ 김현식과 약속 지키려 결성…“‘샌님’ 같던 태관이, 연주하면 ‘광폭’”

봄여름가을겨울 5집(1995)에는 ‘외로움의 파도를 타고’란 연주곡이 있다. 부제가 ‘나의 동반자 태관에게 이 곡을 바친다’다. 당시 김종진은 음악 세계가 뚜렷한 뮤지션들이 외롭게 사는 세상이란 생각이 들어 전태관에게 이 곡을 선물했다.

“태관이는 라틴 음악을 잘하지만, 한국은 팝 뮤직을 해야지 라틴 장르론 생계를 꾸릴 환경이 못 되잖아요. 그때 태관이가 ‘외로움의 파도를 타고 자기 삶을 서핑하는 남정네’로 보였어요. 태관이가 연주를 마음껏 펼칠 연주곡을 만든 거죠.”

고려대 사학과 출신 김종진과 서강대 경영학과 출신 전태관은 1982년 12월 24일 뮤지션들의 사랑방이던 방배동 카페 시나브로에서 처음 만났다. 지금은 파라다이스그룹 회장인 전필립이 미국 버클리음대 유학을 앞둬 모인 날이었다. 정원영은 그날 전태관을 데리고 왔다. “다들 필립 형에게 유학 갈 거면 드러머 한 명은 꽂아놓고 가랬더니, 원영 형이 태관이를 데리고 왔어요. 태관이는 1년 재수를 해 대학교 1학년, 전 2학년이었죠.”

전태관의 첫인상은 말쑥한 ‘샌님’ 같았다. 그런데 무대에서 연주를 시작하니 ‘광폭’ 했다.

“1985년 11월 현식이 형이 우릴 동부이촌동 집으로 불러 ‘밴드를 할 건데, 형이랑 할래?’라고 제안했죠. 키보드 연주자가 필요해 태관이가 유재하를 추천했고요. 정말 흥분됐죠.”

◇ 소리·연주에 대한 고집·웰메이드 위한 시도…“외면당한 6집, 혼신 다한 역작”

봄여름가을겨울은 기타와 드럼의 이색 조합에도 분업이 뚜렷했다. 김종진이 작곡과 보컬을 겸했다면, 전태관은 자신의 고집대로 연주자로만 포지셔닝했다. “초창기부터 공동 작업을 제안해도 태관이는 ‘난 그냥 연주자야’라고 고집했죠. 태관이에겐 ‘난 그래’ 정신이 있거든요. ‘비 오는데 왜 우산 안 써?’라고 하면 ‘난 그래’란 식이죠.”

그러나 완벽한 소리에 대한 집념, 퓨전 재즈·블루스·록 등 장르를 품는 유연함은 같았다. 어떤 밴드보다 앨범에 연주곡 비중을 높여 정체성도 붙들었다. 이런 지향점은 때론 대중적인 성취를 가져왔고, 때론 아프게 외면당했다.

그중 2집(1989)과 3집(1992)은 상업적인 성공의 절정을 이뤘다. 펑키한 리듬에 재즈가 섞인 2집 ‘어떤 이의 꿈’은 ‘나는 누굴까? 내일을 꿈꾸는가?’란 펀치 라인이 통했다.

◇ 후배들 헌정곡에 ‘쇼크’…“봄여름가을 류 생긴 것 같아”

김종진은 자신들의 어떤 시도보다 멋있는 작품은 후배들의 정성이 모인 ‘친구와 우정을 지키는 방법’ 프로젝트라고 했다. 혁오의 오혁×이인우, 윤도현×정재일, 십센치×험버트 등은 봄여름가을겨울 노래에 새 감성을 입혔다. 지난달부터 2곡씩 공개된 음원들은 뉴잭스윙, 어반 R&B 등으로 탈바꿈했다. 11일에는 황정민(배우)×함춘호(기타리스트)의 ‘남자의 노래’, 윤종신×최원혁(베이시스트)의 ‘첫사랑’이 공개된다”고 한다.

후배들의 헌사에 대한 화답으로 김종진은 8집(2008)에서 아카펠라로 선보인 ‘땡큐송’을 ‘친구들’(스윗소로우, 이시몬 등)과 다시 불러 프로젝트 캠페인송으로 내놓았다.

그는 “태관이가 나의 그림자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내가 태관이의 그림자였다”며 “햇볕을 받아야 뒤에 생기는 게 그림자 아닌가. 내가 태관이란 빛을 받았기에 존재했다. 정말 기둥 같은 친구”라고 돌이켜봤다.

“우린 이인삼각으로 둘의 발을 묶고 뛰었죠. 세상 사는 속도가 같은 사람은 없는데, 전 늘 더 잘하자고 채근했어요. 3년 전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아들에게 빨리 가자고 재촉하니 힘들어했죠. 그걸 보면서 ‘태관이도 힘들었겠구나’란 생각이 들었어요.”

김종진은 “제가 술이나 ‘잡기’도 대인관계 좋은 태관이에게 다 배운 거 알아요? 태관이는 지방 공연 가면 남는 시간에 당구장에 데리고 갔죠. 당구를 못 쳐서 제가 기타를 꺼내 손가락을 풀면 이렇게 말했어요. ‘밴드를 위해 너도 당구를 치라’고요. 하하.”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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