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책방 도시 아이콘이 되다] 〈18〉 도쿄의 카모메북스
2018년 03월 26일(월) 00:00
카페·갤러리 공존 … 서점 방문 부담 없앴다

카모메북스의 왼쪽 편에 자리하고 있는 커피숍 풍경.

책을 즐겨 읽는 애서가들에게 도쿄는 한번쯤 가보고 싶은 로망의 도시다. 유서깊은 진보초거리의 오래된 책방에서 부터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파는 예술서점까지 색깔있는 ‘공간’들이 많다. 근래 도쿄를 여행하는 우리나라 관광객들 사이에 책방투어가 트렌드로 떠오른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도쿄 신주쿠 지역의 가구라자카에 자리한 카모메북스는 숨겨진 보물창고와 같은 곳이다. 츠타야나 노마드, 비엔비 서점처럼 널리 알려져 있지 않지만 책, 커피, 예술을 품고 있는 매력적인 서점이다. 카모메라는 이름아래 서점과 카페, 갤러리가 공존하는 독특한 발상은 ‘책방 천국’ 도쿄에서도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편집자 주〉



가구라자카역에서 내려 5분 정도 걷다 보니 파란색 간판의 카모메북스가 눈에 띄었다. 불과 20여 년 전 만해도 게이샤 요정과 식당들로 북적거렸던 동네는 색바랜 간판이 말해주듯 쇠락해가는 분위기가 감돌았다. 평일 낮시간이었는데도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이런 한적한 곳에서 책이 팔릴까’. 서점 앞을 지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떠올릴 정도로 칙칙한 분위기다.

서점의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쓸쓸한 바깥 세상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은은한 커피 향기가 가득한 실내는 테이블에 앉아 책을 읽거나 서가에서 책을 고르는 사람들로 활기가 넘쳤다. 향과 맛이 뛰어난 쿄토의 유명브랜드 ‘위켄더스 커피’(WEEKENDERS COFFEE)의 원두를 사용해서인지 다른 동네에서도 커피 마니아들이 자주 찾는다고 한다. 이 때문에 카모메북스의 가장 목 좋은 곳에 놓여 있는 테이블 6개는 늘 만원이다.

서점 입구의 왼쪽이 카페라면 오른쪽은 책방이 자리하고 있다. 그 사이를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면 10평 크기의 모던한 갤러리가 깜짝 등장한다. 40평 정도의 크지 않은 공간을 3개의 매장이 사이좋게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도쿄에서 서점과 카페가 결합한 북 카페는 많지만 전시장까지 끌어 들인 복합문화공간은 손에 꼽을 정도다.

카모메북스의 ‘연대’는 폐점 위기에 몰린 동네서점을 살리기 위한 ‘히든카드’였다. 지난 2013년 야나시타 쿄헤이(현 카모메북스 대표)는 출근길에 단골책방이었던 ‘분초도 서점’(文鳥堂書店)의 폐업 안내문을 접하게 됐다.

‘오랜 세월 성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분초도 서점은 오는 4월5일자로 문을 닫습니다’. 지난 20여 년간 동네를 지키며 주민들과 동고동락해왔던 서점이 하루 아침에 사라진다는 소식은 그에게 큰 충격이었다. 독서를 좋아했던 야나시타로서는 학창시절 부터 서점을 드나 들며 마음의 양식을 쌓았던 소중한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당시 ‘오라이도’라는 교열전문회사를 운영하던 그에게 분초도 서점의 폐업은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인쇄물의 오·탈자를 바로 잡는 일을 대행하는 업체의 특성상 오프라인 서점의 위기는 곧 머지 않아 ‘오라이도’의 미래라는 생각에서다. 게다가 퇴임 후 아담한 책방을 운영하고 싶은 꿈이 있었던 만큼 그냥 지나칠 수 가 없었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을 서점으로 불러 들이자” 6개월 동안 회사 직원들과 머리를 맞댄 끝에 지금의 공간 연출을 생각해 냈다.

카모네북스의 매니저 마키 미야자키는 “흔히 10명 중 1명만이 책을 읽는 다고 가정하면 서점을 찾는 사람이 고작 1명이라고 판단하기 쉽다”면서 “하지만 우리는 정반대로 10명 중 9명에게 책을 팔 기회를 얻는 다고 생각해 ‘책방 구하기 프로젝트’를 감행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서점의 전면에 카페를 배치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주민들을 일상적인 공간에서 비일상적인 공간으로 자연스럽게 유도하기 위해서다. 주민들의 입장에선 서점의 문을 열고 들어 오는 것 보다 카페에 들르는 게 심적 부담이 적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2014년 서점이 오픈하자 책 보다는 커피를 마시기 위해 매장을 찾는 주민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커피를 주문하던 사람들 가운데 일부가 서가 쪽으로 다가가 책을 들춰 보거나 구입하는 등 시너지 효과를 내기 시작했다. 그중에 일부는 서점의 가장 안쪽에 자리한 갤러리까지 ‘입성’했다. 평일의 경우 200명의 방문객 중 30∼50대 비율이 70%인 데 반해 주말에는 전체 400여 명 가운데 젊은 층과 학생, 가족단위 방문객이 70%에 이른다. 지난 2007년 개봉돼 큰 화제를 모았던 영화 ‘카모메식당’과 이름이 비슷해 일본 전역에서도 방문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우리말로 갈매기를 뜻하는 ‘카모메’는 책을 펼칠 때의 모양이 옆에서 보면 갈매기를 연상시킨다.

뭐니뭐니해도 카모메북스의 일등공신은 차별화된 기획력이다. 방문객의 시선이 가장 먼저 꽂히는 서점 입구에는 읽기 편한 만화책과 잡지들이 진열돼 있다. 만화책을 읽을 수 없도록 비닐포장을 하는 일반 서점들과 달리 이 곳에선 신간 만화도 마음껏 볼 수 있도록 오픈돼 있다. 또한 매장이 협소해 다양한 신간들을 비치할 수 없는 대신 서점 직원들이 추천하는 도서컬렉션(Workers Bookshelf), 출판사 대표, 아티스트, 직원의 부모, 중국집 사장 등 유명인사가 아닌 평범한 동네주민들이 3권씩 선정한 ‘워크숍 서가’들이 눈길을 끈다. 과거 가구라자카가 고급 음식점과 출판업종이 호황을 누렸던 지역인 점을 감안해 음식관련 추천도서와 출판 디자인, 도쿄의 역사와 명소를 소개하는 서적들이 비치돼 있다.

특히 2∼3주마다 열리는 갤러리의 기획전은 카모메북스의 단골 고객을 끌어 모으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신간을 찾는 고객들도 많지만 매번 새로운 주제의 전시회를 기다리는 열혈팬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마키 미야자키는 “방문객 가운데 20%가 커피를 주문하고 도서를 구입할 만큼 매출에도 긍정적인 시너지를 내고 있다”면서 “개점 4년 만에 카모메북스는 도쿄에서 방문객이 가장 많은 서점이란 타이틀을 얻었다”고 말했다.

/jhpark@kwangju.co.kr



※ 이 시리즈는 삼성언론재단의 기획취재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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