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 DREAM 프로젝트] 제1부 저출산의 덫〈8〉 일·가정 양립 ‘독박 육아’
2018년 03월 13일(화) 00:00 가가
퇴근 후 아이 챙기느라 기진맥진 … 끼니 거르기 일쑤
남편 육아시간 하루 6분 … 그마저도 ‘도와준다’ 생색
‘육아는 함께’ 남성 의식 변화·사회 제도 뒷받침돼야
남편 육아시간 하루 6분 … 그마저도 ‘도와준다’ 생색
‘육아는 함께’ 남성 의식 변화·사회 제도 뒷받침돼야
올해 결혼 4년차인 이상은(32·가명)씨는 아이 둘을 키우는 워킹맘이다. 결혼 후 바로 임신해 이듬해 첫째 딸을 낳았고 2년 후 둘째 아들을 낳았다. 둘째 출산이 임박하면서 이제 막 세 살 된 첫째를 어린이집에 보내기 시작했다. 둘째를 낳으러 가던 당일까지 회사에 나가 휴가서를 냈고 오후에 입원 수속을 밟고 저녁에 제왕절개로 출산했다.
이씨의 복직은 정확히 3개월 후. 백일도 안 된 아이는 칠순을 바라보는 시어머니께 부탁을 드려야 했다. 어머니 건강을 염려하는 시누이의 눈치를 보는 것도, 퇴근하자마자 아이를 데리러 달려가면서 들어야 하는 시어머니의 힘들다는 하소연도 오로지 이씨의 몫이었다. 그나마 아이를 맡아줄 시어머니가 계시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라 늘 죄인같은 마음을 안고 지내야 했다.
퇴근 후 둘째를 안고 서둘러 간 곳은 엄마 오기만을 목 빠지게 기다리는 첫째가 다니는 어린이집. 두 시간 전 또래 친구들은 학원 버스를 타고 각자 집으로 돌아갔고 그 시간까지 남아있는 아이는 두 세 명에 불과했다. 늦은 엄마지만 환하게 웃으며 반겨주는 아이의 모습에 울컥 할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집에 도착하면서부터 다시 전쟁은 시작된다. 첫째 저녁밥을 챙겨주고, 둘째 아이가 오늘 하루 먹은 분유병 다섯 개를 전용세제로 깨끗이 씻어 끓는 물에 소독한 다음 말려줘야 한다. 둘째는 아이 아빠가 귀가하면 함께 목욕시키더라도 그 전에 첫째 목욕과 옷을 갈아입혀주는 것까지 모두 이씨의 몫이다.
어린이집 선생님이 적어준 수첩을 확인하고 준비물이 있는지 체크 후 짧게나마 오늘 하루 잘 놀았는지 아이의 수다를 들어준다. 그 와중에 안아달라 보채는 둘째를 업어줬다가 재웠다가 기저귀 갈아주는 일은 옵션이다.
밤 아홉시가 돼서야 돌아온 남편이 씻는 동안 다시 늦은 저녁상을 차려주고 남편이 식사하는 동안 아침에 널어뒀던 빨래를 개켜 옷장에 챙겨 넣는다. 시간이 좀 되는 날엔 둘째 돌봐주시느라 힘들어하시는 시어머니 드실 밑반찬 만드는데 신경도 써야 한다.
그렇게 하루 일과가 끝나 겨우 자리에 누운 시간은 밤 11시. 저녁도 건너뛰어 배가 고프지만 챙겨먹을 기운도 없고 밥 먹을 기분도 나지 않는다.
남편이 ‘알아서’ 집안 일이나 육아에 동참 해주면 좋겠지만 일일이 말을 하지 않으면 나서지 않는다. 겨우 하나 ‘도와’ 주고 나서는 생색내며 피곤하다고 들어가 눕기 바쁘다. 몇번 요청해봤다가 그마저도 기분이 상해 혼자 하는게 낫다 싶은 마음만 들 뿐이다.
모두가 잠든 새벽 시간이 이씨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시간이다. 오로지 나만을 위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중간에 깨지 않은 날은 “땡큐 베리머치”다. 몸은 피곤하고 내일을 위해 휴식을 취해야 하지만 이씨는 이 시간을 만끽하고 싶다.
이씨의 지인들은 그녀를 ‘수퍼우먼’이라 부른다. 직장을 다니며 집안 일을 하고 육아의 대부분을 혼자 감당하는 모습이 수퍼우먼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는 이씨와 같은 슈퍼우먼이 넘쳐난다. 직장을 다니면서 집안일을 도맡아 해야하며 아이를 낳아 육아까지 하는게 당연한 일이다. 결혼 후 내 아내가, 내 며느리가 슈퍼우먼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씨처럼 혼자서 육아를 전담한다고 해서 생겨난 용어가 ‘독박육아’다. 독박육아는 워킹맘에게만 해당되는 건 아니다. 하루 24시간 아이와 함께 하며 집안일을 도맡아야 하는 전업주부 역시 마찬가지다.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은 잠깐 아이와 놀아주는 게 자기 역할을 다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탈이 생기면 “집에서 아이 하나 제대로 안보고 뭘 하느라 이렇게 만들었느냐?” 타박하고, 집안 정리를 미처 다하지 못한 날에는 “하루종일 집에서 놀면서 청소도 안하고 뭐하느냐?” 서운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기까지 한다. 하루종일 아이와 씨름하느라 밥 한끼 편히 앉아 먹지도 못한 아내의 속사정을 알리가 없다.
엄마는 퇴근이라는게 없다. 아이가 아픈 날이면 밤새 고열에 시달리는 아이를 돌보는 간호사 역할도 엄마 몫이다. “아이는 아파 밤새 열에 시달리는데 아빠라는 사람은 코까지 골며 잘도 잔다. 엄마 혼자 낳은 애도 아니고…” 육아 관련 온라인 카페마다 독박육아에 대한 하소연 글이 끊이지 않는다.
여성들의 ‘독박육아’는 출산을 가로막는 최대의 걸림돌로 꼽힌다. 저출산의 덫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장 먼저 풀어나가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육아에 참여하겠다는 남성들의 의식 변화와 함께 사회적인 제도적 뒷받침도 있어야 한다.
고용부가 발표한 자료 가운데 2014년 기준 우리나라 남성의 가사 분담률은 16.5%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조사 대상 26개국 평균(33.6%)을 훨씬 밑돌면서 최하위를 기록했다. 2015년 기준, 한국 남성의 육아시간 역시 하루 6분에 불과했다. 예전에 비해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OECD 국가 가운데 꼴찌다. “회사에서도 스트레스 받았는데 집에 와서도 편히 못쉬게 하나” 라고 반문한다면 지극히 이기적인 생각이다.
사회적으로도 많은 변화가 필요하다. 육아휴직을 쓰는 남성들이 과거에 비해 늘었다고는 하지만 보다 활성화 돼야 한다. 여전히 남성들의 육아휴직에 대한 불편한 시선이 많고 쉽게 용납치 않는 중소기업들도 여전하다. 육아휴직 급여 인상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지난해말 관계부처 합동으로 ‘여성 일자리 대책’을 내놓았다. 여기에는 남성이 보다 적극적으로 육아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남성의 유급 출산휴가가 3일에서 10일로 늘어나고, 같은 자녀에 대해 부모가 모두 육아휴직을 쓸 경우 두 번째 쓰는 사람은(대개 남성이 해당) 첫 석달간 최대 200만원의 휴직 급여를 받게 된다는 등의 내용이다.
정부의 대책이 말뿐인 구호에 그치지 않고 ‘육아는 부부 공동의 몫’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자리잡아 ‘독박육아’라는 용어가 사라지는 날을 기대해 본다.
/이보람기자 boram@kwangju.co.kr
*광주일보 연중기획 I♥DREAM 프로젝트 ‘아이가 꿈이다’에서는 출생한 아이와 산모의 축하 사연을 받고 있습니다. 아이와 함께 찍은 사진과 아이에게 들려주는 덕담, 태명에 얽힌 사연 등을 보내주시면 ‘출생 축하방’ 코너를 통해 소개해 드립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어린이집 선생님이 적어준 수첩을 확인하고 준비물이 있는지 체크 후 짧게나마 오늘 하루 잘 놀았는지 아이의 수다를 들어준다. 그 와중에 안아달라 보채는 둘째를 업어줬다가 재웠다가 기저귀 갈아주는 일은 옵션이다.
밤 아홉시가 돼서야 돌아온 남편이 씻는 동안 다시 늦은 저녁상을 차려주고 남편이 식사하는 동안 아침에 널어뒀던 빨래를 개켜 옷장에 챙겨 넣는다. 시간이 좀 되는 날엔 둘째 돌봐주시느라 힘들어하시는 시어머니 드실 밑반찬 만드는데 신경도 써야 한다.
그렇게 하루 일과가 끝나 겨우 자리에 누운 시간은 밤 11시. 저녁도 건너뛰어 배가 고프지만 챙겨먹을 기운도 없고 밥 먹을 기분도 나지 않는다.
남편이 ‘알아서’ 집안 일이나 육아에 동참 해주면 좋겠지만 일일이 말을 하지 않으면 나서지 않는다. 겨우 하나 ‘도와’ 주고 나서는 생색내며 피곤하다고 들어가 눕기 바쁘다. 몇번 요청해봤다가 그마저도 기분이 상해 혼자 하는게 낫다 싶은 마음만 들 뿐이다.
모두가 잠든 새벽 시간이 이씨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시간이다. 오로지 나만을 위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중간에 깨지 않은 날은 “땡큐 베리머치”다. 몸은 피곤하고 내일을 위해 휴식을 취해야 하지만 이씨는 이 시간을 만끽하고 싶다.
이씨의 지인들은 그녀를 ‘수퍼우먼’이라 부른다. 직장을 다니며 집안 일을 하고 육아의 대부분을 혼자 감당하는 모습이 수퍼우먼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는 이씨와 같은 슈퍼우먼이 넘쳐난다. 직장을 다니면서 집안일을 도맡아 해야하며 아이를 낳아 육아까지 하는게 당연한 일이다. 결혼 후 내 아내가, 내 며느리가 슈퍼우먼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씨처럼 혼자서 육아를 전담한다고 해서 생겨난 용어가 ‘독박육아’다. 독박육아는 워킹맘에게만 해당되는 건 아니다. 하루 24시간 아이와 함께 하며 집안일을 도맡아야 하는 전업주부 역시 마찬가지다.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은 잠깐 아이와 놀아주는 게 자기 역할을 다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탈이 생기면 “집에서 아이 하나 제대로 안보고 뭘 하느라 이렇게 만들었느냐?” 타박하고, 집안 정리를 미처 다하지 못한 날에는 “하루종일 집에서 놀면서 청소도 안하고 뭐하느냐?” 서운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기까지 한다. 하루종일 아이와 씨름하느라 밥 한끼 편히 앉아 먹지도 못한 아내의 속사정을 알리가 없다.
엄마는 퇴근이라는게 없다. 아이가 아픈 날이면 밤새 고열에 시달리는 아이를 돌보는 간호사 역할도 엄마 몫이다. “아이는 아파 밤새 열에 시달리는데 아빠라는 사람은 코까지 골며 잘도 잔다. 엄마 혼자 낳은 애도 아니고…” 육아 관련 온라인 카페마다 독박육아에 대한 하소연 글이 끊이지 않는다.
여성들의 ‘독박육아’는 출산을 가로막는 최대의 걸림돌로 꼽힌다. 저출산의 덫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장 먼저 풀어나가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육아에 참여하겠다는 남성들의 의식 변화와 함께 사회적인 제도적 뒷받침도 있어야 한다.
고용부가 발표한 자료 가운데 2014년 기준 우리나라 남성의 가사 분담률은 16.5%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조사 대상 26개국 평균(33.6%)을 훨씬 밑돌면서 최하위를 기록했다. 2015년 기준, 한국 남성의 육아시간 역시 하루 6분에 불과했다. 예전에 비해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OECD 국가 가운데 꼴찌다. “회사에서도 스트레스 받았는데 집에 와서도 편히 못쉬게 하나” 라고 반문한다면 지극히 이기적인 생각이다.
사회적으로도 많은 변화가 필요하다. 육아휴직을 쓰는 남성들이 과거에 비해 늘었다고는 하지만 보다 활성화 돼야 한다. 여전히 남성들의 육아휴직에 대한 불편한 시선이 많고 쉽게 용납치 않는 중소기업들도 여전하다. 육아휴직 급여 인상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지난해말 관계부처 합동으로 ‘여성 일자리 대책’을 내놓았다. 여기에는 남성이 보다 적극적으로 육아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남성의 유급 출산휴가가 3일에서 10일로 늘어나고, 같은 자녀에 대해 부모가 모두 육아휴직을 쓸 경우 두 번째 쓰는 사람은(대개 남성이 해당) 첫 석달간 최대 200만원의 휴직 급여를 받게 된다는 등의 내용이다.
정부의 대책이 말뿐인 구호에 그치지 않고 ‘육아는 부부 공동의 몫’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자리잡아 ‘독박육아’라는 용어가 사라지는 날을 기대해 본다.
/이보람기자 boram@kwangju.co.kr
*광주일보 연중기획 I♥DREAM 프로젝트 ‘아이가 꿈이다’에서는 출생한 아이와 산모의 축하 사연을 받고 있습니다. 아이와 함께 찍은 사진과 아이에게 들려주는 덕담, 태명에 얽힌 사연 등을 보내주시면 ‘출생 축하방’ 코너를 통해 소개해 드립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