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 DREAM 프로젝트] 제1부 저출산의 덫 <4> 58년 개띠·82년 개띠의 결혼관
내게 결혼이란 -'58년 개띠' 선 보고 결혼하고 당연한 수순
내게 결혼이란 -'82년 개띠' N가지 포기한 삶 결혼도 선택
2018년 01월 30일(화) 00:00

홍정록씨, 박일우씨

올해는 무술년(戊戌年) 개띠해다. 세대를 대표하는 ‘58년 개띠’와 ‘82년 개띠’의 생활과 시대적 변화를 통해 저출산 문제의 원인과 대책을 생각한다. 흔히 연배를 따질 때 출생연도나 띠를 말하는데 유독 ‘58년 개띠’만 출생연도와 띠를 함께 사용한다. 58년 개띠는 올해 60세, 회갑이다. 공직자는 30∼40년간의 공직생활을 마치고 공로연수에 들어갔다. 이들은 베이부부머의 대명사로, 가정마다 10명에 달하는 대가족이 북적이며 살아간 세대다. 82년 개띠는 36세다. 베이비부머 세대가 일군 성장에 기대 풍요로운 세대에 태어났다. 하지만 이들은 ‘이태백’이라는 용어가 대변하듯 심각한 청년실업에 시달렸고, 가까스로 비정규직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가정을 꾸릴 시기이지만 상당수는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58년 개띠’와 ‘82년 개띠’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 58년 개띠 홍정록(60)씨 이야기

나는 58년생 개띠다. 내가 태어났던 1958년은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한 해 출생자 수가 100만 명을 넘어선 시기였다. 한 해 출생 인구가 90만 명대로 증가한 베이비붐 시대의 중추라고 할 수 있다.

출생자 수가 많다 보니 다른 세대보다 치열한 삶을 살았다. 나 뿐 아니라 이때 태어난 이들은 학령인구로 빽빽한 ‘콩나물 교실’에서 공부했다. 국민학교에 한 학급당 70명 정도의 학생들이 가득 차 있었다. 반도 14반에서 15반까지 있었고 2부제, 3부제 수업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중학교 3학년 때는 고등학교 입학시험도 ‘연합고사’로 바뀌면서 ‘뺑뺑이’ 고교 입학제를 경험했을 것이다. 대학 입학시험도 예비고사 마지막 세대로 역대 급의 치열한 경쟁률로 시험을 치렀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는 고등학교 졸업 후 모두가 대학에 가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인구가 많아 경쟁이 심하다 보니 취업도 쉽지않았다.

대학생활을 하고 군 생활을 오래 했던 나는 운이 좋게도 아는 사람을 통해 28살이 되던 해에 대기업에 취직했다.

그렇게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어느덧 서른. 나는 30살 때 지금의 아내와 선을 보고 결혼했다.

그 당시 결혼 적령기는 남자가 27∼28세, 여자가 23∼25세라고 할 수 있는데 나는 조금 늦은 편이었다.

하지만 요즘 세대들이 결혼하는 연령대가 30대 중후반임을 생각하면 그때는 정말 빨랐다. 또, 사회분위기상 연애결혼이 흔하지 않았고 대부분 대학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다가 선을 보고 결혼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결혼을 하자마자 1989년 큰 아이가 태어났다. 넉넉지 않은 형편이었기 때문에 아이를 조금 늦게 가지고자 피임을 했지만 실패했다. 그렇게 큰아들을 낳고 1994년 둘째 딸을 낳아 기르다 보니 사십 줄에 들어섰고 중견사원을 지나 간부대열에 동참할 무렵 IMF사태를 맞았다.

한참 아이들을 뒷바라지할 50대에는 글로벌 금융위기 등에 휘청하며 정신없이 하루하루 보내다 보니 벌써 은퇴를 해야할 나이가 됐다. 일부 친구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퇴직하고 제2의 인생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은퇴 후 현재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경비대장 일을 하고 있다. 큰 아들은 벌써 성장해 직장인이 됐고, 둘째인 딸도 자신의 밥벌이는 하는 모양이다.

예전같았으면 두 자식들 모두 출가해 자신들만의 가정을 꾸려나가야 할 때가 지났지만 아이들은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아 나와 함께 살고 있다.

내 아들만 해도 직장에서 자리를 잡고 자신만의 커리어를 위해 일을 더 하다가 35살쯤 결혼을 할 계획이라고 하니 요즘 젊은 세대들은 내가 결혼할 때와는 다른 결혼관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예전 같으면 모든 걸 내려놓고 그동안 고생한 만큼 자식들에게 효도나 받을 준비에 행복해 해야 할 시기지만 남아있는 자식 뒷바라지와 부모부양이 걱정이다.





◆ 82년생 개띠 박일우(36)씨 이야기.

직장을 그만두고 이직준비중인 나는 82년생 개띠다. 상대적으로 풍요로운 시대에 태어났지만, 누구보다도 팍팍하고 우울한 청년기를 보냈다.

‘88만 원 세대’로 불리는 나는 01학번이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할 무렵인 2000년대 초반은 심각한 청년 실업으로 20대의 태반이 백수라는 ‘이태백’이 우리 사회를 대표하는 용어였다. 나 역시 졸업 후 1년 정도 일반 기업을 대상으로 취직준비를 했었다. 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아 필리핀으로 어학연수를 떠났다. 2년여를 외국에 있다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31살 때 중소기업에 취직했다.

취직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연애를 시작했다. 상대는 30살 직장인 여성이었다. 그녀와 나는 성격 등 거의 모든 가치관이 잘 맞았지만 단 한가지 좁혀지지 않는 것이 있었다. 바로 결혼. 그녀는 더 나이를 먹기 전에 결혼을 하고싶어 했다.

하지만, 그 당시 나는 사회생활을 막 시작한 사회 초년생이라 모아놓은 돈도 없었고, 부모님께 손을 벌리기도 싫었다.

취업이 어려워지고 늦어지는 추세에서 결혼자금을 마련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결혼준비의 첫 번째 코스로 여겨지는 ‘내집마련’이 불가능한 현실은 결혼에 대한 부담을 가중시켰다. 설령 은행에서 집값을 대출받아 결혼을 한다고 해도 평생 은행빚을 갚으며 살아야 한다는 현실이 버거웠다.

거기다가 아이까지 생긴다면 아이를 위해 드는 출산·육아비용은 그 당시 내 월급으로는 충당이 안 됐을 것이다. 또, 내 한 몸 건사하기도 어려운 세상인데 배우자와 아이 등 나 외에 누군가를 책임져야한다는 게 부담이 컸다.

그렇게 경제적인 문제로 결혼을 못하게 되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그 당시 만나던 여자와 헤어졌다. 그리고나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결혼시기를 놓치면서 해외봉사활동을 가기로 결심한 나는 비혼주의자가 됐다. 그러면서 내 아이를 가지는 일은 정말 남의 일이 됐다.

현재 나는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3포 세대를 넘어 집과 경력을 포함한 5포 세대라고 할 수 있다. 나 뿐 아니라 N가지를 포기하고 살아가는 대한민국 N포세대 청년들에게 있어 결혼과 육아는 이제 필수가 아닌 선택적 요소가 됐다. 결혼을 하지 않아도 혼자 먹고 살 만큼 벌어 1년에 한번쯤 해외여행을 가고, 가끔 남들이 다 아는 비싼 레스토랑에서 식사도 하면서 인생을 즐기며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비혼족이 늘면서 최근에는 결혼 대신 행복한 삶을 선언하는 싱글족들이 늘고 있다. 이와 함께 이러한 자신의 뜻을 밝히는 ‘비혼식’도 눈길을 끈다.

젊은 세대들이 비혼선언을 하는 것은 나처럼 경제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취미 등 개인적 가치를 추구하는 성향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비혼과 저출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들려온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젊은 층을 위한 대대적인 일자리, 출산, 육아 정책이 절실해 보인다.

/전은재기자 ej6621@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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