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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재의 세상만사] 추석들 잘 쇠셨나요 -571돌 한글날을 보내며

2017. 10.13. 00:00:00

1년 중 숟가락질과 젓가락질을 제일 많이 하는 때가 바로 민족의 대명절인 설과 추석 무렵이 아닐까 싶다. 중고등학교 시절이었던가. 이런 의문을 가진 적이 있었다. 젓가락과 달리 숟가락엔 왜 ‘ㄷ’ 받침이 들어가는 걸까? 의문은 세월이 한참 흐른 후에야 풀렸다.
젓가락은 ‘저’와 ‘가락’이 합쳐진 단어이니 중간에 사이시옷이 들어가는 것은 당연하다. 여기에서의 ‘저’는 숟가락과 젓가락을 아울러 지시하는 말인 ‘수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수저’에서 ‘수’ 역시 ‘가락’과 합쳐져 ‘숫가락’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문제는 숟가락을 의미하는 ‘수’의 옛말이 ‘술’이라는 것이다. 좀 생소하게 느낄지 모르겠지만 이 ‘술’은 현대 우리말에도 남아 있다. 바로 ‘밥을 한술 뜨다’ 같은 예문을 보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그렇다면 ‘술’의 ‘ㄹ’이 ‘ㄷ’이 되어 숟가락이 된 이유는 뭘까? 국어에는 원래 ‘ㄹ’이었던 것이 ‘ㄷ’으로 바뀐 단어가 제법 많다. 한데 맞춤법에서 원래 ‘ㄹ’ 소리였던 것은 ‘ㄷ’으로 적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반짇고리(바느질+고리), 사흗날(사흘+날), 섣달(설+달) 같은 단어가 바로 그러한 예다.
잦은 숟가락질로 그만큼 몸이 불어났을지도 모를 긴 추석 연휴가 끝나고 이제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 연휴 기간, 곳곳에서 추석 인사말이 담긴 현수막을 볼 수 있었다.

사람더러 한가위가 되라니

하지만 ‘주민 여러분, 풍요로운 한가위 되세요’ ‘즐겁고 행복한 추석 명절 되세요’ 이런 식의 인사말을 보면서 꽤나 신경이 거슬렸다. 어법에 맞지 않아 자연스럽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자. ‘즐거운 한가위가 되시라’고 얘기하는 것은 주민들에게 ‘당신은 즐거운 한가위가 되셔야 합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지 않은가. 사람이 어찌 한가위가 될 수 있나? 비문(非文))으로 치자면 ‘주문하신 커피 나오셨습니다’란 표현과 별반 다를 게 없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쓰고 있지 않느냐’는 반문이 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다수의 언중들이 쓰는 말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 말글의 근간에 어긋난다면 이는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그럼 “즐거운 한가위 되세요” 같은 문장은 어떻게 바꿔야 어색하지 않을까. 우선 무난한 것은 “즐거운 한가위 보내세요”로 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번 한가위 즐겁게 보내세요”로 하면 보다 자연스러운 문장이 된다.
그나저나 ‘이번 추석들 잘 보내셨나’ 모르겠다. 혹시 앞의 이 문장에서 ‘추석들’이 좀 어색하게 느껴지는 분이 있다면 학교 다닐 때 영어 공부를 너무 많이 한 탓일지도 모른다. 셀 수 없는 명사에 복수를 의미하는 ‘들’이 붙었으니 어법에 맞지 않다고 생각할 테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말 ‘들’은 주어가 복수이면 아무 데나 붙을 수 있는 아주 재미있는 존재다. 명사(이름씨)에도 붙고 동사(움직씨)에도 붙고 심지어 부사(어찌씨)에도 붙는다. 그러니 “성묘를 마치고 ‘다들’ 떠나갔구나”라 해도 되고 “다 ‘떠나들’ 갔구나” 해도 괜찮다. 추석에 전을 부치던 며느리가 “남정네들이 텔레비전만 ‘보고들’ 있다가 다 해 놓으면 ‘무섭게들’ 처먹기만 한다”라고 했다면 이 또한 전혀 흠 잡을 데 없는 문장이다.
이번 연휴 막바지엔 571돌 한글날이 들어 있었다. 오늘 쓰는 이 글의 주제를 ‘알고 쓰는 우리말 우리글’로 정한 것도 그 때문이다. 한데, 571돌이나 571회나 같은 뜻으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정확히 말하자면 ‘돌’은 어떤 일이 있은 뒤 지난 햇수를 세는 말이요 ‘회’(回)는 되풀이한 수를 차례로 세는 말이다. 따라서 571돌 한글날은 571주년 과 같고 횟수로 바꿔 말하면 572회 혹은 572번째 한글날이 된다.(훈민정음 반포 연도가 1446년이니 잘 계산해 보시기를.)
한글날을 핑계 삼아 너무 아는 체하는 것 같아 미안하지만 주위에서 ‘아는 체하다’와 ‘알은체하다’의 뜻을 정확히 알지 못하고 쓰는 경우도 자주 보게 된다. 가령 “이번 추석에 고향에 갔다가 골목 어귀에서 먼 친척을 만나 반갑게 아는 체했다”라는 문장에 나오는 ‘아는 체했다’는 ‘알은체했다’의 잘못이다.

원칙 어기는 예외 너무 많다

이들 단어의 띄어쓰기도 자꾸 헷갈리는 대목이다. 국립국어원의 설명에 따르면 보조 용언 ‘척하다’와 ‘체하다’는 보조 용언의 띄어쓰기(‘한글 맞춤법’ 제47항)에 따라, ‘아는 척하다’ ‘모르는 체하다’와 같이 본용언과 띄어 적는 것이 원칙이며 붙여 적는 것도 허용된다. 하지만 ‘사람을 보고 인사하는 표정을 짓다’라는 뜻을 나타내는 동사 ‘알은척하다’ ‘알은체하다’는 한 단어이므로 모든 음절을 붙여 적는다.
참, 띄어쓰기만큼 우리를 괴롭히는 것도 없을 것이다. 나의 경우, 내 글도 내 글이지만 남의 글을 교정하는 일까지 하느라 하루에도 수십 번에서 수백 번씩(결코 과장이 아니다) 표준국어대사전을 들추곤 한다. 참고로 ‘띄어쓰기’는 한 단어로 사전에 올라 있어 붙여 써야 한다.
‘지난여름’도 사전에 버젓이 올라 있는 단어이니 띄어 쓰면 안 된다. 올봄, 올여름, 올가을, 올겨울, 지난봄, 지난여름, 지난가을, 지난겨울 등도 모두 한 단어로 굳어졌다며 붙여 쓰라 한다. 그러나 나는 굳어진 단어를 표준국어대사전에 표제어로 올리는 국립국어원이 어떤 명확한 기준을 갖고 그렇게 하는지 알 수 없다. 원칙을 벗어나는 예외가 너무 많다 보니 사전을 찾느라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문법이라는 게 말과 글이 있고 나서 생긴 것이지만 맞춤법도 하나의 원칙이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약속이니 지켜야만 한다. 그러나 요즘엔 그 원칙이 너무 쉽게 흔들리니 문제라는 생각이다. ‘자장면’을 ‘짜장면’으로 바꾸는 데는 그리 오랜 세월이 걸리더니 말이다.
원칙을 벗어나 예외를 너무 많이 만드는 것은 일반 국민의 국어생활에 혼란을 초래하기 마련이며 또한 ‘우리말 우리글은 너무 어렵다’는 인식을 줄 우려도 있다. 국립국어원은 이 같은 사실을 고려해 좀 더 진중하게 결정을 내렸으면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단어와 단어 사이는 띄어 쓴다’는 원칙을 어겨 가면서 ‘지난여름’을 굳이 붙여 써야만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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