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책방 도시 아이콘이 되다 (1)프롤로그 책 더불어 情·문화도 팝니다
음악 공연·북스테이·강연 등
독특 컨셉 내건 개미책방 증가
책과 호흡하고 커뮤니티 형성
광주 10여곳 등 전국 150여곳
‘책 읽는 사회’로 가는 마중물
2017년 09월 29일(금) 00:00
한 여름의 폭염이 기승을 부린 지난 7월 오후, 광주시 동명동 사에오름에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지역의 13개 동네책방이 참여한 북 페스티벌 ‘오늘산책’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허름한 건물 옥상에 펼쳐진 행사는 페스티벌이라기 보다는 조촐한 만남의 장에 더 가까웠다. 행사에 참가한 광주·전남의 책방지기, 작가, 기획자들은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새로운 독서문화를 만들어가자는 데 의기투합했다.

이날 행사의 주인공은 단연 13개 동네책방이었다. 비록 좁은 옥상이었지만 책방공간, 음악공간, 이야기공간, 전시공간으로 나눠 참가자들에게 동네책방의 의미를 되돌아 보게 했다. 행사장을 찾은 시민들은 대형서점에서 보기 힘든 독립출판물과 책방지기의 추천도서들을 둘러 보며 동네책방의 매력에 푹 빠졌다.

근래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콘텐츠로 무장한 동네 책방들이 하나둘씩 우리 곁으로 돌아오고 있다. 온라인 서점 등장으로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향토 서점 대신 독특한 콘셉트를 내건 개미 책방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비단 광주만의 현상이 아니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에 따르면 2013년 1625곳이던 서점은 2015년 1559곳으로 줄었지만 특색 있는 동네 책방은 오히려 늘었다. 올해엔 서울 60여 곳을 포함해 전국에 150여 곳이 생겼다. 광주만 해도 ‘숨’, ‘검은책방 흰책방’, ‘심가네박씨’ ‘소년의 서’ ‘책과 생활’ 등 10여 곳에 이른다.

이들 책방은 여행, 시, 소설, 지역 등 일정한 범주의 책을 판매하고 영화 상영, 독서 모임, 작가와의 만남 등 문화 행사를 진행한다. 학습물과 베스트셀러 위주인 대형 서점이나 일반 서점에선 보기 힘든 풍경이다.

광주 동명동에 문을 연 ‘지음책방’은 요즘 뜨고 있는 ‘책맥’ 책방이다. 서점은 조용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책과 맥주를 즐길 수 있도록 꾸민 ‘핫한’ 공간이다. 그래서 ‘지음책방’은 일반 책방과는 차원(?)이 다르다. 탁자 대신 식탁이 비치돼 있는 게 그 예다. 긴 식탁 위에는 아름다운 문양의 접시와 컵, 나이프와 포크들이 놓여 있어 책방인지 레스토랑인지 헷갈린다. 방문객들은 서점에 진열된 책들을 꺼내 보면서 맥주와 스테이크, 샐러드나 파스타를 즐기는 색다른 경험에 빠진다.

경남 통영의 주택가에 자리한 ‘봄날의 책방’은 북스테이를 내건 이색적인 공간이다. 지난 2014년 말 그대로 책을 읽으며 숙박하는 새로운 컨셉의 게스트하우스 ‘봄날의 집’을 오픈, 개점 3년 만에 2500여 명(2016년 기준)이 다녀갈 만큼 전국적인 명소로 떠올랐다.

통영을 찾은 관광객들을 겨냥한 이 곳은 모두 4개의 방에 7명(2인실 3개, 1인실 1개)이 투숙할 수 있는데 휴가철 등 성수기에는 방을 구하기가 힘들 정도다. 고 박경리 선생 등 통영 출신 예술가들을 테마로 한 ‘작가의 방’, 고 전혁림 화백과 아들 전영근 화백의 작품으로 장식된 ‘화가의 방’으로 꾸며져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세월의 두께가 느껴지는 나무 계단을 올라 2층에 가면 ‘장인의 다락방 1, 2’가 나온다. 목가구에 사용하는 금속장식인 두석과 나전장인의 작품을 각각 테마로 삼았다. 투숙객들은 통영을 관광한 후 책방에 들러 책을 골라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온 후 밤늦게까지 방 침대나 책상 앞에서 독서 삼매경에 빠진다.

동네책방의 성공에는 책방지기의 공을 빼놓을 수 없다. 공간이 협소해 많은 책을 다 들여놓을 수 없다 보니 주인장의 ‘안목’으로 선택받은 책들만 독자들과 만날 수 있다.

장서가들사이에선 꽤 유명세를 타고 있는 진주소소책방(대표 조경국)이 대표적인 곳이다. 주로 신간들을 취급하는 여느 동네책방과 달리 소소책방은 헌책 8000권을 소장하고 있는 추억의 공간이다. ‘소소책방일지’ ‘필사의 기초’ ‘오토바이로, 일본책방’을 펴낸 유명작가이기도 한 조 대표는 책방지기의 안목이 돋보이는 추천리스트를 통해 독서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하지만 동네책방의 운영은 그리 녹록지 않다. 상당수의 책방은 경영난에 시달리다 1∼2년 만에 문을 닫기도 한다.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 정도가 일 년에 책 한 권도 읽지 않고, 그나마 인터넷이나 대형 서점에서 구입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가격과 배송에서 인터넷 서점과 경쟁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동네서점은 등장 그 자체만으로도 반갑다. 마치 오래전 헤어진 친구와 재회한 느낌이랄까. 70∼80년대 학창 시절을 보낸 이라면 서점에 대한 추억 하나쯤은 갖고 있을 것이다. 아날로그 세대들에게 서점은 단순히 책을 구입하는 곳이 아닌, 사람들을 만나고 정을 나누는 문화사랑방이었다.

무엇보다 동네 책방은 삭막한 도시에 온기를 불어넣는 실핏줄 같은 존재다.

이런 공간들이 늘어난다는 건 동네가 건강해지고 나아가 사회가 건강해진다는 청신호다. 때마침 지자체에서도 동네 서점을 살리기 위한 조례 제정 움직임이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다.

동네책방 ‘검은책방 흰책방’을 운영하고 있는 김종호대표(소설가)는 “책방에 사람이 들면 꽃향기가 나는 것 같아 즐겁다”면서 “ 골목마다 마을마다, 이런 책방이 하나씩은 있어야 한다. 책방은 사람과 사람을 만나게 하는 마중물이고, 마을의 피를 돌게 하는 심장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서점이 사라져 가는 시대, 동네책방의 반란은 계속 돼야 한다. 온라인서점보다 비싸고 직접 책방을 방문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지만 책방에는 책과 호흡하고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특별한 매력이 있다. 동네서점이 오래도록 우리 곁에 머물러야 하는 이유다. 이에 광주일보는 광주, 전남, 서울, 충북 괴산 등 이름난 동네서점과 일본 도쿄, 영국 런던, 헤이온 와이 책마을 등의 성공사례를 둘러 보는 시리즈를 시작한다. 이 기획은 동네책방을 살리고 책 읽는 사회로 가는 의미 있는 여정이 될 것이다.

/박진현 문화선임기자 jhpark@kwangju.co.kr
오피니언더보기

기사 목록

광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