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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와 함께 하려면 경계에 서라
경계에 흐르다
최진석 지음

2017. 09.01. 00:00:00

“나는 경계에 있을 때만 오롯이 ‘나’다. 경계에 서지 않는 한, 한쪽의 수호자일 뿐이다. 정해진 틀을 지키는 문지기는 개다. 경계에 서야 비로소 변화와 함께 할 수 있다. 변화는 경계의 연속적 중첩이기 때문이다. ‘진짜 나(眞我)’는 상(相)에 짓눌리지 않는 존재다. 이러면 부처가 되는 필요조건은 일단 채워진다. 동네 부처라도 될 요량이면 경계의 흐름 속으로 비집고 스며들어야 한다.”(본문 중에서)

백발의 짧은 머리를 한 철학자 최진석. 그가 강연에 나서는 모습은 대개 청바지에 반팔 티셔츠 차림이다. 아마도 격식과 형식에 자신을, 정확히 말하면 자신의 사유를 가두지 않는다는 의미일 터다.
그는 지난 몇 년간 인문학 특히 철학을 일반 대중에게 가까이 안내했었다. 특히 인문(人文)을 ‘인간이 그린 무늬’라고 명명해 대중들에게 각인을 시켰다. 인문학은 고매한 이론이나 교양을 쌓는 ‘장신구’가 아닌 생존을 위한 도구라는 의미다.
이번에 그가 첫 산문집을 펴냈다. ‘경계에 흐르다’는, 그가 경계의 흐름 속으로 비집고 스며들었던 삶과 사유의 내밀한 이야기를 담았다. 제목 ‘경계의 흐르다’는 그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말일지도 모른다. ‘경계의 철학자’라는 말이다.
사전적 의미의 ‘경계’는 “사물이 어떠한 기준에 의하여 나누어지는 한계”를 뜻한다. ‘경계에 흐르다’는 어느 한편에도 나누어지지 않은 자유로운 상태다. 무엇에도 갇히지 않고 얽매이지 않는다. 얼핏 ‘회색인’이라는 다소 불온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근래에는 ‘통섭’이나 ‘융합’이라는 말과도 어느 정도 상통된다 하겠다.
산문집에는 저자의 유년과 청소년 시절의 이야기부터 철학 공부의 시작, 칸트에서 장자로 시선을 옮기게 한 무료함에 대한 이야기가 수록돼 있다.
불안하고 비밀스러운 경계에서 빚어낸 삶의 무늬들이 특유의 정감어린 문체로 갈무리돼 있다.
“시 아닌 곳으로 자폐하여 시를 멀리하고 스스로를 맷돌 삼아 거기에다 자신을 갈고 또 갈다 보면 몇 방울의 피가 엉겨 붙는다. 그 피들을 긁어모아 놓으니, 거기에 시라는 이름이 다가와 걸릴 뿐이다. 설령 시가 아니어도 된다고 포기한 채, 자신을 학대하다 보면 오히려 빛나는 시가 태어난다. 시는 쓰는 것이 아니라 토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청소년기부터 답답하고 갑갑했다. 정해진 것들은 그에게 울타리로 작용했던 탓이다. 편안하지만 그것은 결국 자신을 가두는 가혹한 경계였다. 그는 그것을 뛰어넘고 싶었고 곧잘 시를 읽었다. 짧은 문장의 시들은 자신을 이리저리 넘겨주는 탄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철학자의 길을 걸으며 이론에 박학다식하고 철두철미해지기보다는 세계에 직접 닿아 보려 했다. 경계를 흘러 다양한 세계와 사유를 유랑하고 싶은 것이다. 세계에 직접 접촉해 문제를 만나고, 문제가 보이면 그때 필요한 이론을 얻어다 써 보려고 했을 뿐이다.
책은 우리 사회에 건네는 창의적 시선의 높이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독립적 사유를 시도하는 일은 사실은 처절한 고독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역설한다.
저자는 “경계에 서 있으면 과거에 붙잡히지 않고 미래로 몸이 기운다. 미래가 열리지 않는 것을 한탄하지 마라. 내가 그저 한쪽을 지키는 성실한 투사임을 한탄해라”며 “경계에 서 있는 상태를 자유롭고 독립적이라고 한다. 자유롭고 독립적이어야만 창의적이고 혁명적이다”고 말한다.
〈소나무·1만5000원〉
/ 박성천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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