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호남지 선사와 고고-박중환 국립나주 박물관장] (3) 선인들의 자취 '고인돌 시대'
고대문화의 찬란한 유물 고인돌 … 인류 자산으로 잘 가꿔야
2017년 02월 21일(화) 00:00

철쭉과 꽃잔디가 만발한 장성군 북일면 작은재에 수천년된 고인돌이 둥지를 틀어 눈길을 끌고 있다. 장성군은 도로확장 공사를 진행하면서 장성읍 우동마을에 있던 고인돌을 이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길이 3.5m, 무게 24톤에 이르는 거석으로 청동기시대에 만들어진 덮개돌형 지석묘다. <광주일보 자료사진>

영산강과 섬진강 등이 흐르는 광주·전남은 우리나라 대표적인 곡창지대로 불릴 만큼 농업에 적합한 지형과 기후를 갖고 있다. 특히 담양, 광주, 나주, 영암 일대의 영산강 유역 평야지대는 비옥하고 너른 농토가 펼쳐져 있어 이른 시기부터 천혜의 농사터였다.

또 갯벌과 섬이 많은 서남해안의 연안 생태계는 다양한 수자원을 품고 있어 사람들이 살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여수 돌산 송도나 해남 군곡리를 비롯해 서남해안과 도서지역 곳곳에서 확인된 선사시대 사람들의 생활흔적인 ‘조개무지’(패총 貝塚)들이 당시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자연환경 속에서 예로부터 이곳에서 사람들의 정착생활과 농경이 이뤄졌다. 또 바다를 통해 중국과 일본까지 이어지는 바닷길이 열려있어 다양한 문화가 이곳에서 교차했음을 볼 수 있다.

빙하기가 물러가고 온화한 기후의 후빙기가 도래하면서 생활환경이 바뀌고 선사시대 사람들의 생활에도 많은 변화가 생기게 된다. 약 8000년 전부터 사람들이 흙을 빚어 토기를 제작했으며 움집을 만들어 생활했던 것이다.

전남과 전북지역의 해안과 섬들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속하는 신석기시대 유적들이 발견되는 곳이다. 신안 흑산도와 가거도, 완도 여서도, 여수 돌산 송도와 안도, 군산 노래섬 등지가 그 대표적인 곳이다. 신석기시대 단계로부터 많이 나타나고 있는 조개무지에서는 낚시바늘을 비롯한 어로도구들이 많이 발굴되어 있어 당시 사람들이 식량을 강이나 바다에서의 고기잡이로부터 얻었음을 알 수 있다.

영산강 본류의 여러 지역과 함께 황룡강과 지석천, 함평천 등의 강과 하천에서 이와 관련된 유적이 발견되고 있다. 식량의 저장이나 조리에 쓰였던 토기그릇의 사용은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다.

우리 지역에서 발견되고 있는 신석기시대의 토기에는 덧무늬토기와 누른무늬토기, 그은무늬토기, 봉계리식토기, 겹아가리토기 등이 포함되어 있다. 물고기를 잡는 데 사용했던 어로도구로 그물추와 낚시바늘, 찌르개, 작살 등이 있는데 완도 여서도와 여수 안도, 여수 돌산 송도, 거문도와 신안 가거도의 조개무지로부터 이음낚시 바늘과 이음낚시 연결부분이 발굴된 바 있다. 또 작살과 찌르개를 사용한 고기잡이도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여수 안도의 조개무지에서 작살이 발굴된 바 있으며 특히 완도 여서도에서는 뼈로 만든 작살도 발견되었다.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를 지나 청동기시대에 접어들면 사람들의 삶의 모습에 커다란 변화가 나타난다. 그동안 사냥이나 고기잡이 열매따기와 같은 약탈적 방법의 식량획득에 의존했던 생활 양식에 크게 바뀌게 되는 것이다.

이 시대에 이르러 비로소 농사를 짓게 되면서 식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이를 통해 잉여생산물의 축적이 가능하게 되면서 사람들은 비로소 정착생활을 하게 된다. 또 잉여농산물이 쌓이면서 부를 축적한 소수의 지배계층이 나타나고 사회는 계층화되고 전문적인 기술자 집단이 출현하였다. 이 때문에 계층간 갈등과 분열의 모습이 나타나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농경지와 마을 공동체의 구성원을 보호하기 위해 마을 주위에 방어시설을 세우는 등 공동체가 보다 체계화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큰 변화는 당시 사람들이 처음으로 금속제 도구인 청동기를 만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자연석을 가공하던 기초적 도구제작 단계에서 주석과 구리와 같은 서로 다른 성질의 금속을 배합해 새로운 소재를 만들어내는 기술을 갖게 된 것이다. 신소재의 첨단 도구인 셈이다.

청동기시대에 전라도 지역에서 이뤄진 가장 큰 특징은 무엇보다 고인돌의 출현을 들 수 있다. 고인돌은 지석묘(支石墓)라고도 불리는 청동기 시대 사람들의 무덤이다. 광주 전남지역의 고인돌은 남해안지역과 섬진강의 지류인 보성강 중류역에서 그 밀집도가 높다.

영산강 유역의 고인돌은 영산강의 본류와 지류를 따라 비교적 넓은 범위에 분포하는데 주로 하류역과 인근의 지류역에 집중되고 있으며 상류로 올라갈수록 점차 밀집도가 낮아진다. 우리나라 전역에 분포하는 고인돌은 4만여개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지역에 대한 최초의 고인돌 조사는 일제강점기였던 1926년 나주 남평 노동리 지석묘 1기에 대한 것이다. 그 뒤 1961년 김원룡 교수에 의해서 담양 문학리 지석묘가 소개된 적이 있다. 이후 본격적인 조사는 1970년대로부터 80년대에 걸쳐 이뤄진 여러 곳의 댐 건설로 이루어졌다.

1996년에 이영문 교수 등에 의해 실시된 이 지역의 고인돌에 대한 분포 조사보고에서는 전남지역에만 2208개군 1만 9058기의 고인돌이 있다고 보고된 바 있다.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에 따르면 영산강 상류 유역에 해당하는 장성, 담양, 광주, 화순 지역에만 459개소 2644기의 고인돌이 분포한다. 하지만 이 지역에서 과거에 존재하고 있다고 보고되었던 고인돌 가운데 최근의 조사에서 사라지고 없어진 사실이 확인된 고인돌만 해도 422기였다.

한반도 내에서 발견되는 고인돌은 그 형태로 보아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진다. 탁자식과 개석식과 기반식 등이 그것이다. 탁자식은 4매의 편평한 돌을 세우고 다시 그 위에 뚜껑돌을 덮은 것으로 무덤의 주인공이 묻히게 되는 무덤방이 지표면 위에 있게 된다. 바둑판식이라고 불리는 기반식은 뚜껑돌 아래에 고임돌이 있고 그 밑 땅 속에 무덤방이 자리한다. 뚜껑돌식이라는 뜻의 개석식 역시 땅 속에 무덤방이 있고 그 위에 뚜껑돌을 덮었지만 고임돌이 없다.

최근에는 이와 달리 무덤방 주변에 원형 또는 장방형으로 돌을 깔거나 쌓는 새로운 무덤 형태인 묘역식 고인돌이 확인되고 있다. 광주 전남지역에는 기반식이 많지만 개석식과 탁자식도 있다. 서로 다른 유형의 고인돌이 혼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청동기시대 당시부터 이 지역이 한반도 내의 다양한 지역 혹은 주변의 중국 일본 등지와 교류를 활발하게 진행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고인돌의 크기는 다양하다. 수백t에 달하는 초대형의 고인돌로부터 10t 안팎의 소형 고인돌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규격화되어 있지 않다. 이 지역의 고인돌에 대한 조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것은 1970년대의 장성댐, 광주댐, 대초댐의 건설이나 1980년대와 1990년대의 동복댐, 주암댐 건설과정에서 진행된 발굴조사였다. 고인돌의 발굴과정에서 출토된 유물로는 무늬없는 토기와 붉은 간토기, 가지무늬토기, 검은간토기 등의 토기가 있고 돌로 만든 것으로는 간돌검, 돌화살촉, 돌도끼, 숫돌, 갈돌, 가락바퀴, 그물추 등의 석기가 나온다.

흔하지는 않지만 청동기들이 고인돌에서 출토되는 경우도 있다. 요령식동검과 요령식 청동투겁창, 청동화살촉, 한국식 동검 등이 대표적이다. 곱은 옥과 대롱옥을 비롯한 구슬류도 출토된다. 이 유물들은 대개 무덤방 안에 놓여 있었지만 무덤방 바깥 및 주변에서도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무덤을 만들면서 진행된 의례행위가 있었음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영산강 유역을 비롯한 광주와 전남지역에만 2만기 이상의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다. 한반도 고인돌의 절반 정도가 이 지역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이 가운데 약 1700기 정도의 고인돌이 발굴조사되었다. 지난 2000년 12월에는 화순의 고인돌과 전북 고창의 고인돌 밀집 유적이 경기 강화도의 고인돌들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세계 거석문화유적 가운데 주목되는 유적이 된 것이다.

고대문화의 찬란한 유물인 고인돌을 인류의 자산으로 잘 가꿔 전라도의 문화 경쟁력을 높이는 일은 곧 후대들의 책무다.

* 박중환 국립나주박물관 관장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

-국립광주,부여박물관 학예연구사

-국립중앙박물관회 학술상 금관상 수상

-백제학회 이사 (2010년∼현재)
오피니언더보기

기사 목록

광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