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굴욕 회담, 즉각 무효화해야
2016년 01월 05일(화) 00:00

[이국언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상임대표]

최일례(101) 할머니가 만주로 끌려간 것은 열여섯 살 때인 1932년이었다. 영암군 금정면 한대리에서 태어난 할머니는 어느 날 물동이를 이고 집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동네 우물에 나갔다가 군복을 입은 일본인에 붙잡혀 트럭에 실리고 말았다. 군인들은 거쳐 가는 길마다 여자들을 잡아왔고 그렇게 해서 모인 여자들이 30명 정도였다.

할머니는 그곳 만주에서 ‘하루코’라는 일본 이름으로 13년 동안 일본군의 성적 욕구를 해결하는 노예가 되어야 했다. 나중에는 아편중독자가 되었는데, 고통과 괴로움을 잊기에는 아편만 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비록 몸은 망가졌어도 뒤늦게 죽더라도 부모님 계시는 고향으로 가 묻혀야 하지 않느냐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아편 생각이 날 때마다 아편 대신 술을 대하게 됐고, 담배까지 배웠다고 한다.

해방 후 고향에 돌아와 보니 고모가 끌어안고 마냥 우시기만 하더란다. 그새 할머니는 돌아가셨고, 돌아가실 때까지 자기만 찾으셨다고 한다. 결혼 생각도 있었지만 병원에서 임신이 어렵다는 진단을 듣고 지금까지 혼자 살아온 할머니는 아무한테도 이런 일을 털어놓지 못하고 살아왔다고 말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을 엮은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2’(1997년·한울)에 소개된 최일례 할머니의 사연 중 일부다. 증언록은 집단적 광기 아래에서 일제와 일본군이 이 땅의 여성들을 파탄시켰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지난달 28일 한일 양국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합의안을 발표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정부가 책임을 통감한다는 내용과 아베 총리의 내각총리로서의 사과 표명, 한국정부가 설립하는 피해자 지원을 위한 재단에 일본정부가 10억엔의 정부예산을 지출한다는 것 등이 주요 내용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합의한 발표 직후 대국민 메시지를 통해 한일관계 개선과 대승적 견지에서 피해자와 국민에게 이해를 구했다. 최선을 다한 결과라는 것이다.

협상도 상대가 있는 것이라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원칙이 있다. 즉, 도의적 책임 정도면 되는 사안에 대해 법적 책임까지 부담하도록 해서도 안 되겠지만, 반대로 명백히 법적 책임을 져야 할 사안을 도의적 차원으로 끝내도록 한다면 이것 또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 면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누가 누구한테 이해를 구할 사안이 아니고, 명백히 법적 책임을 져야 할 사안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기시다 외무상은 “법적 책임은 한일청구권협정에 의해 마무리됐던 것”이라며 이번 합의는 “국가 배상이 아니다”고 딴 목소리를 내고 있다.

협상 결과는 극명하게 확인되고 있다. 한마디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울분을 못 이겨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고, 일본정부는 “우리가 잃은 것은 10억엔 뿐”이라며, 앓던 이를 뺀 표정이다. 일본정부는 한 발 더 나아가, 한국정부가 소녀상 이전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는지 지켜보겠다며 벌써 으름장이다.

특히, 일본정부가 밝힌 조치를 착실히 실시한다 것을 전제로 하긴 했지만, 이번 발표를 통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임을 확인’한데 이어, ‘향후 이 문제에 대한 상호 비난·비판을 자제’하는 것까지 약속한 것은 앞뒤가 바뀌어도 한참 바뀐 것이다.

무릇, 백번 사죄가 부족하다면 백 한번이라도 해야 하는 것이 진정한 사죄의 태도이다. 단적으로, 피해자의 입을 봉쇄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조건부 사죄’는 세상 어디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해괴망측한 짓이다. 사죄할 사람이 오히려 매를 들고 큰소리치고 있으니 이것이 굴욕외교 아니면 무엇인가. 한번 물어보자. 애초 피해 할머니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명예를 회복하자고 한 협상 아니었는가. 결국, 무효화 이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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