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 수출국 - 윤영기 정치·경제담당 에디터
2025년 12월 29일(월) 00:00
이승만 대통령은 1952년 “못 먹는 동포가 없도록 전 국민을 적극 보호하라”는 내용의 담화문을 발표했다. 골자는 ‘곤궁에 처한 아동의 실태를 조사해 국가 차원에서 해결방안을 적극 모색하라’는 것이었다. 한국전쟁 기간 급증한 고아와 혼혈아동을 보호할 대책을 마련하라는 주문이다. 보건사회부는 1954년 전국 혼혈아동의 현황을 조사하고 미국 입양 희망자를 모집했다. 1961년에는 해외 입양 절차를 간소화 하려고 ‘고아입양특례법’을 제정해 해외입양이 국가제도로 본격 시행됐다.

우리 정부는 애초 백인(白人) 혼혈아를 대상으로 입양 희망자를 모집했다. 미국에서 흑인 혼혈아동보다 백인 혼혈아동을 더 원했기 때문이다. 입양이 아동의 복리를 위한 사업임에도 차별적 시선과 관념에 기초한 셈이다. 1956년에는 소수에 그쳤던 해외입양이 집단입양으로 변화한다. 홀트아동복지회 창립자인 미국인 해리 홀트가 우리나라를 방문해 고아와 혼혈아동의 집단입양이 가능하도록 조치를 취해줄 것을 요구했다. 미국에서 입양 희망자가 500명에 달하니 아동 500명을 한꺼번에 데려가겠다고 주장했다. 지금까지 이런 과정을 통해 해외로 입양된 이들은 20만명에 달한다. 복지부 집계에 따르면 2005년 2000명대였던 해외입양 아동 수는 2020년 232명, 지난해 58명, 올해 24명으로 감소했다.

우리나라의 해외입양은 국제사회의 눈총을 받았다. 1976년 북한까지 나서 “해외입양은 남한의 새로운 수출품”이라고 비난했다. 88올림픽 기간에 국제 언론은 ‘아기 수출’, ‘인신매매’라고 비판했다. 현재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해외입양을 보내는 유일한 국가이자, 최장기 아동 송출국이다. 그동안 우리 정부가 혼혈아와 장애아를 제외한 모든 해외입양을 중단하려고 시도했으나 모두 흐지부지됐다.

정부가 최근 국내 아동의 해외입양을 단계적으로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2029년에는 해외 입양을 중단하는 게 목표다. 국내 입양 등 국내에서의 보호를 우선으로 하고 해외입양은 최대한 없애겠다는 취지다. 대한민국이 고아 수출국이라는 불명예를 벗을 날이 앞당겨지기를 고대한다.

/윤영기 정치·경제담당 에디터 penfoot@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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